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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개향 May 17. 2024

[불안에 맞서는 말들] 내 방, 내 사람 같은 문장

프롤로그 


어릴 때부터 쫓기는 꿈을 그렇게나 많이 꾸었다. 때로는 경찰에게, 때로는 북한군에게, 때로는 이태리 마피아에게. 건물 사이를 뛰어다니고 미로를 헤매고 골목 사이에 숨어 있었다. 잡히기 직전, 가슴이 터질 것 같고 입에서 신음이 새어나올 것만 같은 순간, 항상 그 순간 꿈에서 깨곤 했다. 잡히지 않아 다행이긴 했지만, 이를 악물도록 힘이 들어간 턱이 얼얼하게 아프곤 했다. 


그 꿈은 10대를 지나 20대가 되도록 끝나지 않았다. 일주일에 적어도 두 번은 쫓기는 꿈을 꾸었다. 입시를 준비하면서, 연애의 끝을 예감하면서, 취직을 준비하면서, 혼자임을 실감하면서 늘 땀을 흘리게 뛰어다녔다. 도대체 언제쯤 나는 꿈의 손아귀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결혼하고 아이 낳고 쫓기는 꿈을 꾸는 날이 점점 줄어들었다. 정확히 말하면 꿈을 꾸는 날 자체가 줄었다. 깊이 잠을 자본 기억이 거의 없다. 아이가 잉 하는 작은 소리에도 눈이 번쩍 뜨였고, 몇 년이 지나 아이들이 잘 자게 된 이후에도 한번 예민해진 잠귀는 둔해질 줄을 몰랐다. 여전히 거센 빗소리나 천둥소리, 아이들 잠꼬대 소리나 쓰레기차 소리가 들리면 눈이 뜨였다. 다시 잠이 들 때까지는 한참의 시간이 걸렸다. 


쫓기는 마음은 꿈 대신 현실로 찾아들었다. 아이 둘을 낳고 서른넷에 새로운 일을 시작하려니 건전지 닳은 시계처럼 마음이 급했다. 얼른 자리를 잡아야 한다는 생각에 2015년 번역 공부를 할 때부터 잠을 줄였다. 번역 기획서를 쓰거나, 아마존을 뒤지며 기획서 쓸 만한 책들을 찾거나, 누가 찾아주지도 않는 그림책 관련 글을 쓰고 고쳤다. 빨리 나를 한 단어로 설명하고 싶었다. 번역 공부하고 있는 사람이 아니라 번역가라고 불리고 싶었다.


내일이 오늘과 똑같으면 어떡하지, 계속 아무 이름이 없는 채로 살면 어떡하지. 매일 글을 쓰며 나를 달랬지만, 다음 날이 되어도 불안이라는 감옥은 여전히 견고했다. 마음의 감옥에서 나갈 방법을 몰라, 그나마 몸뚱이를 밖으로 끄집어내 열심히 일을 다녔다. 자지 않고 멀리까지 다니며 일했다. 그게 몸을 상하게 하는 줄도 모르고. 




2017년 늦가을 대구에서 올라오던 기차 안, 잇몸이 쑤시기 시작했다. 치과가 무서워 진통제 먹고 버텨보려 했지만 도저히 그럴 수가 없었다. 염증이 심해져 사랑니를 뽑고 잇몸 치료를 받았다. 며칠 지나지 않아 턱과 목 주변이 하얗고 노랗게 곪으면서 주변이 붉게 변했다. 평소 나던 여드름과 달리 쓰리고 따가워 피부과에 가보니 지루성 피부염이라고 했다. 약을 먹으면 잠시 괜찮아졌지만, 약을 끊으면 이내 붉게 달아오르며 곪아 들었다. 


염증은 잇몸, 혀, 얼굴, 등, 방광, 엉덩이 등 온 몸을 돌아다니며 약을 올렸다. 하지만 염증이 총체적으로 고민해봐야 하는 건강 문제라는 생각은 하지 못했다. 그저 방광염은 산부인과에서, 피부염은 피부과에서, 치주염은 치과에서 해결해야 하는 단기 과제라고만 여겼다. 아픈 건 힘들다기보다 성가신 일이었다. 아픈 치료 과정도 싫지만, 예약을 잡고 병원에 오가는 일이 더 귀찮았다. 일하는 시간을 잡아먹으니까. 


증상이 완화되면 병원도 더 이상 다니지 않았다. 염증을 줄이기 위한 별다른 노력을 기울인 것도 아니었다. 일과 육아 사이 대충 먹을 것을 우겨 넣고 얕은 잠을 자고 숨쉬기와 약간의 걷기가 움직임의 전부였다. 그러지 않았다가는 따라잡히거나 쫓겨날까봐 겁이 났다. ‘원래 염증이 잘 생겨’라며 합리화를 한 채, 어지간히 아픈 일은 참고 정말 아플 때에만 빠르게 병원을 다녀오는 삶을 몇 년 간 지속했다. 


<내면소통>의 김주환 교수는 감정은 몸이라고 단언한다. 우리가 불안 자체를 느끼는 것이 아니라, 심장이 뛰고 장이 오그라들고 턱에 힘이 들어갈 때 뇌가 이 모든 신체 신호를 종합해 ‘불안하다’고 해석한다는 것이다. 몸은 그때 나에게 많은 신호를 보냈다. 너 지금 약 먹고 지나갈 때가 아니야, 몸을 좀 돌봐야 할 때야, 쉬어야 할 때야. 봐, 이렇게 염증이 많은 건 정상이 아니야.


그때 몸을 좀 돌보았다면 몇 년 후 우울증은 찾아오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별다른 위기감을 느끼지 못한 채 팬데믹이 시작되었다. 하고 싶은 일과 할 수 있는 일은 빠르게 사라졌고, 해야 하는 일은 더 많아졌다. 창고에 처박힌 연이 되어버린 기분이었다. 하늘을 날아야 하는데. 날아오를 날이 올까. 그 날이 오면 과연 날 수 있을까. 


답 없는 질문들이 낳은 불안이 스물스물 발밑으로 몰려와 신발 안 양말이 젖어들 때. 그때는 차라리 쫓기는 꿈이라도 꾸고 싶었다. 깨지 않고 확 잡혀버리고 싶었다. 그렇게 끝나버리고도 싶었다.



여전히 가끔은 새벽 4시에 숨을 헐떡이며 깨어난다. 명상과 글쓰기와 운동을 해도 그런 날이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는다. 어제 쓰다만 글이 걱정되는 것도, 욱신대는 잇몸이 걱정되는 것도, 남편의 불면증이 걱정되는 것도 아니다. 어쩌면 한글을 배워 혼자 책을 읽어야 했던 두 돌부터. 남동생이 생겼던 4살부터, 혼자 줄넘기를 못하던 초1 7살부터, 불안은 고치지 못한 오래된 습관이 되어 버렸는지도 모른다. 


아직 빛이 들지 않는 방이지만 이리저리 눈알을 굴려보면 어슴프레하게 사물들이 보인다. 왼쪽으로 책이 가득 꽂힌 서가도, 발치에 있는 협탁도, 반쯤 열려 있는 문도. 반대편으로 돌아누워 남편 팔에 손을 얹고 눈을 다시 감는다. 얼른 잠이 들지는 않지만 안도감이 느껴진다. 이곳, 내 방, 내 사람이 바로 곁에 있다. 아무 것도 달라진 것은 없다. 


이곳에 옮기는 문장들은 내 방, 내 사람 같은 문장들이다. 이 문장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나의 낡은 불안을 달래주고 이해해주고 보듬어주었다. 불안은 인류가 이야기를 지어내는 능력을 갖춘 그 순간부터 시작된 유물이라고, 세상은 네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크다고, 안 된다는 말을 믿지 말라고. 오려둔 문장을 지우개 삼아 불안의 자국들을 문질러 본다. 그러다 보면 지금 느끼는 감정이 진짜 불안이라기보다는 불안의 습관에 가깝다는 것을 알아차린다. 


습관은 힘이 세다. 안 그러려고 해도 자꾸 내 마음을 부정적인 쪽으로 구부려 기울인다. 그러지 않기 위해 내 방, 내 사람 같은 문장들에 마음을 묶어둔다. 문장을 고르고 의미를 찾는 과정에서 불안 대신 평안을 선택하는 습관을 연습한다. 당신도 이 문장들에서 불안의 습관을 이겨낼 힘을 얻어가기를. 언젠가는 당신이 모은 문장에 손수건처럼 마음을 묶어두기를. 불안주의자에서 평안주의자로 건너가기를. 바라는 모든 마음을 담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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