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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개향 Sep 02. 2020

3. 직면의 두려움

서툰 나 그대로 고개를 끄덕여줄 때

8일째 되는 날, 처음으로 거실에서 춤을 출 수 있었다. 매번 안방에 갇혀 애들 몰래 남편 몰래 가구를 피해가며 췄는데, 아이들이 놀이터 간 틈을 타 거실을 차지할 수 있었다. 넓다! 거슬리는 게 없으니 동작과 보폭을 크게 해도 되는구나!


전면 거울이 있으면 참 좋으련만. 스튜디오에 가서 춤을 추고 싶은 건 넓은 공간 때문이기도 하지만, 거울로 내 춤추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집에서는 창문이나 텔레비전에 언뜻언뜻 비치는 모습 밖에는 볼 수가 없어 답답하다. 그마저도 낮에는 확인이 어렵다.

출처: unsplash

대체 내가 어떤 모양으로 춤을 추고 있는 걸까, 문득 궁금해진 나는 나를 한 번 찍어보기로 했다. 책장에 핸드폰을 올려두고 1분 남짓 찍어보았다. 첫번째 시도는 상체만 나와서 실패. 좀 더 멀리 거리를 두고 동영상을 찍었다. 흔들흔들 살랑살랑, 서툴게 춤추는 내모습이 고스란히 찍혀 나왔다.


영상 속에서 본 내 모습은 정말로 웃.겼.다. 스텝을 안 틀리고 밟는 것만으로도 마치 잘 추는 것처럼 우쭐한 마음이 있었는데, 하이고야. 스텝이 완전히 몸에 익지 않았으니, 거기 집중하느라 움직임이 무척 둔하다. 상체는 완전히 굳어 있고, 특히 오른팔은 거의 못 움직인다. 어색하게 접혀져 있는 팔이 갈 곳을 못 찾고 덜렁거린다.


직면한다는 건 이런 거다. 내가 못하는 것, 어색해하는 것을 제대로 보게 한다. 처음 보는 내 모습에 창피해진다. 지금이야 혼자 추고 혼자 보니 망정이니, 사람들 앞이라면 벌써 도망가고 싶었을 것이다.


하지만 직면은, 지금의 서툰 나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게 해준다. 아, 내가 지금 이런 상태구나. 여기가 어색하구나, 이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모르겠다. 나를 부끄러워하거나 면박주는 것이 아니라, 그냥 그대로 고개 끄덕여주게 되는 것이다.


직면, 서툴고 어색한 나를 있는 그대로 끌어안기



9일째인 다음날은 일부러 오른팔을 더 움직이면서 춰봤다. 두 세곡의 스텝은 어느 정도 익숙해져서, 팔도 더 움직여보고. 표정도 신경 써보았다. 익숙한 스텝이 나오는 구간에서는 저절로 웃음이 나기도 했다. 어깨와 허리도 더 펴려고 애써보았다. 구부정한 몸을 고쳐보고 싶단 생각이 들었다.


하나의 움직임이 다른 다짐들로 이어지는 것이 신기하다. 나의 서툰 모습을 제대로 보지 않았다면, 서툼 그대로를 받아들여주지 않았다면 불가능한 일이다. 그래도 직면은 여전히 어렵고 여전히 두렵다. 8일째에 영상을 찍어보고 아직껏 다시 찍어보지 못한 걸 보면, 얼마나 어렵고 두려운지 알만한 일이다.


내일은, 혹은 모레는 한번 다시 영상을 찍어볼 수 있을까? 지금의 나는 어떤 모습으로 춤을 추고 있는지. 조금은 나아졌는지, 여전히 얼마나 서툰지, 그렇지만 얼마나 즐겁게 추고 있는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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