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앞 도서관에서 2021년의 마지막 대면 수업을 무사히 마치자 홀가분함이 밀려왔다. 이제 아이들 방학까지 남은 3주는 쉴 거야, 무조건 쉴 거야, 중얼거리며 집으로 돌아왔다.
아침에 먹통이 된 핸드폰 때문에 늦게서야 컴퓨터로 메신저를 확인하니, 동네가 온통 난리였다. 큰아이 초등학교에서 확진자가 나왔다는 알림이었다. 아침에 4분이 급작스레 수업을 취소한 이유가 이거였구나. 둘째 어린이집 친구들 중 셋이나 검사를 받으러 가야 할 정도로, 근처 초등학교 중학교 학원에서 동시다발적으로 확진자가 나온 날이었다.
둘째의 피아노 학원 스케줄을 취소하고 하원하며, 함께 빵집에서 빵을 골랐다. 큰아이는 초코소라빵, 작은아이는 베이비슈, 나는 연유크림빵. 같이 빵을 골라 먹는 것만으로도 딱딱하게 굳었던 몸이 식빵처럼 말랑해졌다. 발빠르게 근처 코로나 확진자 소식을 옮기는 톡방은 한동안 보고 싶지 않았다.
참 야속하다, 코로나. 당장 내일 주변의 누가 양성 판정을 받을지 모르니, 아이들 학교 가면 올 한 해 지친 마음을 쉬게 하려던 계획이 내일 깨질지 모레 깨질지 알 수 없는 판이다. 자가격리 들어가면 어떻게 되는 거지. 빵을 베어물며 얻는 오늘의 얄팍한 평화가 몇 시간이나 갈까, 전전긍긍하다가.
우리가 할 수 있는 가장 단단한 것을 하자. 일주일에 한 번, 식탁에 모여 각자 읽거나 그리거나 쓰는 시간. 그날 큰연꽃은 이사 준비를 주제로 일기를 쓰겠다 했고, 작은연꽃은 책 속 주인공들을 그려보겠단다. 우유를 따르고 찻물을 끓이고 초에 불을 켜고 물소리 ASMR을 켤게. 각자의 일기장을 들고 만나자, 우리의 마음을 정박시킬 수 있는 단단한 책상 위에서.
준비를 하고 자리에 앉아도 한동안은 똑같이 시끄럽다. 엄마 우유 더 줘, 엄마 지우개가 안 보여, 엄마 쉬하고 올게. 일기 하나 쓰러 자리 앉기가 이렇게 힘들단 말이냐! 그림과 글의 문을 힘있게 밀고 젖히고 들어가기 시작해야 비로소 식탁은 조용해진다. 작은 불꽃이 잠자리 날개처럼 얇게 흔들리고 졸졸졸졸 물소리만이 흘러가면서, 빈 종이 위에 글자 하나 선 하나가 채워진다. 그 시간은 일주일 중 내가 손에 꼽게 사랑하는 시간이다.
“(.......) 이사 준비하는 것이 쉬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쉬운 것은 아니었다. 다 소중한 추억이 담긴 것들인데. 잘 안 가지고 노는 것도 다 버려야 될지 안 버려야 될지, 그런 고민은 정말 내 인생 최대의 고민이다. 나에게 다 소중한 것인데 버려야 된다니 ㅜㅠ”
일기나 그림 일기 쓰는 아이들
우리 집 여자 셋의 당시 최대 고민은 “도대체 뭘 버려야 하는가”였다. 나닥나닥 해진 인형, 잘 가지고 놀지도 않는 옛 블럭들, 어린이집에서 만든 작은 쪼가리들. 제발 버리자고 하는 데도 아이들은 요지부동이었다. 앞으로는 인형 안 사준다 으름장도 놓고 아이들 자는 새 몰래 갖다 버린 적도 있다.
그렇게 아이들 물건은 어떻게든 버리려 들면서, 막상 내 물건들 앞에서는 손이 쪼그라들었다. 입사 선물로 엄마가 사준 가방, 옛 회사 명함과 명패, 돌아가신 이모한테 받았던 손가방. 안 쓴지 몇 년이 넘었지만 쉽게 버릴 수가 없었다. 물건들마다 그 시절의 내가 있었고, 어떤 사람이 있었다. 아이가 머리를 쥐어뜯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어지간해서는 버리지 않는 사람도 있다. 초등 시절부터 쓴 내 일기장은 친정에 고스란히 남아 있다. 무엇이든 모아두는 엄마 덕이다. 어릴 적에는 학기 중에도 방학에도 일기가 필수 숙제였다. 매일까지는 못 되더라도 일주일에 4-5일은 썼고, 독서록을 따로 쓰게한 선생님도 계셨다. 성실하게 일기를 썼던 학생과 성실하게 일기장을 모아둔 학부모 덕에 일기장들은 몇 번의 이사에도 굳건히 살아남았다.
초등 시절 일기에는 그저 그런 일과의 나열과 뻔한 다짐들도 많았지만, 30년 전 어린이의 일기를 읽는다는 것만으로도 너무 웃기고 가끔은 퍽 찡했다. 전원교향곡을 듣다 '즐겁기고 하고 또 울고도 싶었다'던 8살. 화가가 되어 이름을 남기고 싶다던 8살. 내 꿈을 안고 미래의 문 앞에 올라가고 있다던 12살. 나 같기도 하고 나 같지 않기도 한, 다락 속에서 놀고 있던 여자 아이가 문득문득 고개를 내밀곤 했다.
"난 누굴까? 왜 이 모양일까? 왜 이렇게 내 마음 속에 내가 싫은 생각이 들어 있는지 잘 모르겟다. 지금의 나도 내가 원하는 진실한 내가 아닌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앞으로는 내가 내 자신을 미워하는 생각을 버렸으면 좋겠다." (92.4.23일의 일기)
10살 때의 일기를 읽다가 이 대목에서 그만 멈추고 말았다. 10살 큰아이를 보고 있으면 마냥 어린 것만 같은데, 10살이 이런 생각을 하는 나이였던가? 고작 10살에 저런 생각을 했다는 게 황당하면서도, 어쩐지 뒤통수를 쓰다듬어주고 싶어졌다. 여전히 자주 내가 미워지는 마음, 내가 원하는 나와는 달라 속상해지는 마음, 나를 있는 그대로 예뻐해주고 싶은 마음. 그건 마흔 살이 되어도 어쩔 수 없이 튀어나오는 마음인데.
마흔 살의 나는 어쩌면 열 살 때 투박하게나마 그 꼴을 다 갖췄겠구나 싶고.
그러고 보면 큰연꽃의 고민은 허투른 데가 없었다. 인형이나 책 중 무얼 골라 버려야 할지 눈살 찌푸리며 고민하던 시간은 결국 지나가겠지만. 무얼 취하고 무얼 버려야 할지는 인생 내내의 고민이니까. 그건 마흔 살이 되어도 도무지 익숙해지지 않는 일이었다.
그때 이 일기를 본다면 너는 어떤 느낌이 들까? 뭘 이런 걸 가지고 고민했니 싶을까 혹은 여전히 여러 선택지 사이에서 갈팡질팡하고 있는 자신과 동질감을 느끼게 될까. 일기는 자신의 미성숙함을 확인하는 부끄러움의 장터였다가, 돌이킬 수 없이 떠나간 아름다운 배를 바라보는 항구이기도 하다가.......
그러나 훗날의 그리움이나 부끄러움은 지금 걱정할 것이 아니고, 우리는 오늘 하루의 문을 단단히 걸어잠그기 위해 일기를 쓴다. 어떤 상황 어떤 시절에도 선택할 수 있는 단 하나의 글쓰기가 일기이니까. 암 선고를 받고 하루하루 스러져가며 <아침의 피아노>를 쓰듯, 전쟁으로 집 안에 갇혀 지내며 한 소녀는 <안네의 일기>를 쓰고 훗날의 언어학자는 <전쟁 일기>를 쓰듯, 어머니를 잃고 슬픔을 견디려 <애도 일기>를 쓰듯.
팩트는 엄혹한 칼이다. 정확하고 용서가 없다. 이 칼의 무심함에 나는 기록으로 맞선다. 기록은 사랑이다. 사랑은 희망이다.
- <아침의 피아노>, 김진영
2년째 코로나 터널을 지나고 있는 우리의 일기는 어떤 제목으로 남을지 모르겠지만. 우리는 펜을 들고 우리의 일기를 쓰자. 방향 없는 불안이나 쇳덩이 같은 무기력이 난데없이 대문을 쾅쾅 두드려도. 자물쇠 걸어잠근 집 안에서 우리는 차를 끓여 마시고 다 쓴 초를 조용히 끈 후 나직하게 자장가를 부를 수 있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