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겨울에 머무르는 사람

내 몸에 얼마나 많은 나뭇가지와 돌이 갇혀 있었나

by 안개향

겨울은

손부터 차가워질 때와

발부터 차가워질 때가 있다.


슬픔은 언제나 곧장 마음으로 다가온다.

- 다카미 준, <겨울은>



언 강에 미혹되었다는 작가가 있었다. 겨울을 무척 사랑하여, 그의 첫 책은 눈으로부터 시작된다. 추위는 여전히 질색이지만, 그의 글을 읽고 있자면 겨울을 작게나마 사랑하고 싶어졌다. 그 해 겨울에는 겨울만의 아름다움을 따로 찾아 다녔다. 털옷을 감싸입은 백목련의 겨울눈이나, 딱 하나 남은 주홍빛 까치밥이나, 땅에 포근한 이불 덮어준 갈색 잎새들이나, 하얀 눈 사이 볼 빨개져 옹기종기 모여 있는 남천 열매 같은 것. 완벽히 미혹될 수는 없어도 살포시 미소지을 수는 있었다.


'미혹'이라는 단어를 입술에서 떼어본다. 미. 혹. 마음이 흐려서 무엇에 홀린다, 혹은 정신이 헷갈려서 갈팡질피아 헤맨다는 뜻이다. 좋지 않은 뜻처럼 느껴지지만, 나는 잃어버린 이 단어를 참 좋아한다. 십 대부터 스무살 언저리에는 미혹의 문이 넓었다. 겨울날 호수에서 피어오르는 물안개에, 해가 넘어가는 푸른 시간에 걸려 있는 붉은 신호등에, 멈출 줄 모르고 달려가는 차들의 붉은 꼬리띠에. 한참을 머물러도 지치지 않고 미혹될 수 있는 풍경들이었다.


바라보다 미혹되어 꼼짝 없어지고 마는 건, 무조건 뛰어들어 즐겁게 노는 어린이는 모르는 순간이고 가치와 효용을 재는 사회인들에게는 허락되지 않는 시간이다. 아직 미혹될 수 있는 시인은 젊고 아름다울 것이다. 나는 그렇게 상상하고 만다.


운이 좋다면 언 강에서 겨울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 나와 그녀는 한참 강 앞에 머물다가 문득 심장을 내려앉히는 큰 울림을 들었다. 먼 산속에서부터 오는 짐승의 울음 같기도 했지만, 사실 그건 눈 앞의 강 깊숙한 곳에서 얼음이 녹아 부서지는 소리였다. 함부로 몸을 움직일 수 없게 두렵고도 아름다웠다. 눈에 보이지 않아 더 그랬을 것이다. 방금 들었던 소리가 환청으로 느껴질만큼, 언 강은 견고한 모습 그대로였다.

어쩌면 강도 영영 잃고 싶지 않은 것이 있어, 소리를 얼려두나 보다. 어느 때 산과 땅을 울리도록 그리운 소리가 터져나오기를 기다리며, 얼음 모자를 쓰고 있는지도.

- 한정원, <시와 산책> "추운 계절의 시작을 믿어보자" 중
한정원, <시와 산책>


작가처럼 나도 언 강에 고요히 미혹되고 싶었지만, 아이들은 꽝꽝 언 1월의 한강 앞에서도 먹이 찾은 겨울새처럼 분주히 재잘거렸다. 우리는 나란히 서서 있는 힘껏 강을 향해 돌멩이를 던졌다. 얼음 모자가 꽤나 두툼한지, 소리가 꽤나 깊이 숨어 있는지- 돌멩이는 얼음 표면에 약간의 흠집만 낼뿐 쭉 강변도로 저편 아래까지 쭉 미끄러져 갔다. 그만치에 커다란 돌들이 놓여 있는 걸 보니, 누군가 이미 있는 힘껏 큰 돌을 던져 보았던 모양이다. 소용이 없었던 게지.


얼만큼 충분히 두터워야 저만큼 큰 돌에도 꿈쩍하지 않을 수 있을까.


그 해 겨울, 그리고 그 다음해 겨울도, 나는 살얼음이었다. 돌을 던지는 족족 얼음이 깨졌다. 차라리 얼지 않고 다 녹아버리거나 꽝꽝 얼어버리면 그만이건만, 0도 언저리를 오가며 얇은 얼음으로 살았다. 11월부터 큰아이가 다니는 학교에서 확진자가 계속 나와, 아침마다 학교 알림이 뜨면 한 눈만 뜨고 알림을 눌렀다. 큰 숨을 들이쉬었다가 내쉬는 일들이 매일 아침 반복이었다. 12월에는 7년 간 살았던 집에서 이사를 나갔고, 원룸에서 새해를 맞이했으며, 6주간의 공사와 이사를 치뤄야 했다. 몇 마디로 퉁치기에 벅찬 사건과 사고와 날선 말들이 나를 계속 흔들어대면서, 완전히 얼지도 완전히 녹지도 못하게 했다.


공사 중 머물던 원룸에서, 늘 저녁 5시를 기다리는 마음으로 살았다. 그때면 공사가 끝나 원룸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더 이상 소음으로 다른 집에 민폐를 끼칠까 마음 졸이지 않아도 되는 시간. 그리고 이 원룸의 유일한 아름다움이었던 해넘이를 마음껏 볼 수 있던 시간. 해가 기운을 잃어가고, 스카이라인이 금빛으로 빛나고, 하늘은 푸른 빛에서 붉은 빛으로 낯빛을 바꾸고, 강물은 서서히 멈추어 갔다. 자동차 헤드라이트와 건물의 조명들만 남고 하늘과 강과 다리 모두가 어둠과 한 몸이 될 때까지- 저녁을 준비하다 말고 자주 뒤를 돌아 하늘을 보았다. 2021년은 저무는 해에 묶어 남김 없이 버리고 싶어, 중얼거리면서.


새벽마다 눈을 떠보면 심장이 감당하기 어렵도록 세차게 뛰었다. 머릿속으로는 온통 '오늘 공사장 가기 정말 싫다'는 생각 뿐이었다. 소음과 분진 속에 꿔다놓은 빗자루처럼 서 있는 일, 낯선 인부들 사이에서 공사가 잘 되는지 보고 원하는 걸 요구하는 일- 모두 내가 잘 못하는 일들이었다. 공사하는 집 사람이라는 걸 다른 주민들에게 들키기 싫어 윗윗층에서 내려 계단으로 걸어내려오던 날, 이건 좀 많이 이상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너 지금 이상해, 많이 이상해. 이 이상함을 혼자서는 더 견딜 수가 없어, 신경정신과에 예약을 했다. 기다리는 일주일 내내 너무 추워 자꾸만 이불 속으로 들어갔다.


1시간 여에 걸친 검사와 면담을 통해 의사가 내린 결론은, 우울증에 불안 증상이 극심하게 동반된 거란다. 불안이 아니라 우울이라고? 내가 우울증에 걸릴 수 있다고? 도무지 믿어지지가 않아 우울증이라는 단어를 입에 올리는 데도 며칠이 걸렸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우울증이 아닐 이유는 없었다. 코로나 3년 차, 나의 일과 아이들의 학업과 건강 모두 내가 통제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섰다. 계획을 세우고 준비를 해도, 급작스런 코로나 확산에 무산되어 버리는 경우를 몇 번씩 겪었다. 때로는 더 열심히 일하며 더 열심히 아이들을 돌봤고, 때로는 그저 눕고만 싶었다. 불안을 상쇄하기 위해 극단으로 나를 소진하거나 혹은 극단으로 무기력하거나. 그 사이에서 나는 평소보다 더 빠르게 소모되었다.


어릴 적부터 생각하긴 했다. 나는 심장 옆에 슬픔과 불안의 주머니가 하나 더 달려 있는게 분명하다고. 아무렇지 않은 일에 자꾸만 울고 싶어지고 걱정이 되어 찢어지는, 누구도 이해하지 못할 테니 보여주면 안 된다고 생각한, 그래서 누덕누덕 기워둔 주머니가. 봄바람에 나뭇잎이 흔들리는 걸 보면서도 울 수 있었고, 세수를 하다가도 세면대가 추락해 발등을 찧을까봐 움찔거렸다. 그래도 완전히 찢어지지는 않게 잘 데리고 살아왔다고 믿었는데....... 코로나와 이사와 공사 등 일련의 사건들에, 주머니가 찢어져 내 마음이 줄줄 새고 있었나 보다. 새는 마음이 눈앞에 보이자, 강이 얼려둔 울음처럼 커다란 울음이 터졌다.




진단을 받고 며칠이 지나니 차라리 마음이 나아졌다. 약의 효과도 있었겠지만, 도무지 알 수 없던 내 마음에 이름이 붙여지니 내가 미웠던 마음이 조금 풀렸다. 이런 별것도 아닌 일을 왜 이렇게 어렵게 생각해, 지금이 그럴 때니, 왜 너만 별나게 구니- 자꾸만 채찍질하고 있던 내 손을 슬그머니 내려놓았다. 너 지금 겨울이래. 지금 필요한 건 따뜻한 이불과 새콤한 귤과 뜨뜻한 전기장판이라고. 그렇게 나는 깊은 겨울 속으로 훌쩍 들어가버렸다.


아프다는 걸 인정하자 그제서야 소진도 무기력도 아닌, 나를 돌볼 생각이 들었다. 찾아간 한의원에서는 오랜 기간에 걸쳐 위가 상한 것이 문제라고 했다. 위가 상하면 심장에 무리를 주고, 심장이 빨리 뛰면서 불안을 느낀다는 설명이었다. 숏컷에 씩씩한 경상도 사투리를 쓰는 선생님께서, 어쩌다 이렇게 위가 상했냐며 혀를 쯧쯧 차셨다.

"저 위가 안 좋긴 했는데. 서른 다섯 이후로는 위가 아픈지 모르고 잘 지냈어요."

"만성이 되서 그래요. 지금 이게 아픈 거예요. 역치가 높아진 거지. 치료하다 보면 외려 더 잘 체한다고 느낄 수 있어요."


아이들 방학과 코로나를 핑계 삼아 사람도 거의 안 만나고 수업도 안 했다. 상한 위를 달래려 외식도 접고 야채와 죽 위주로 요리해 먹었다. 번역하고 읽고 쓰는 일도 오랜 시간을 들이지 않았다. 언 강의 밑바닥처럼 고요히 살았다. 얼음 아래 들어가 있으니 오히려 춥고 불안한지 모르고 안온했다. 겨울은 이렇게 겨울답게 보내야 하는 거구나 싶었다.


조용히 있으니 몸의 소리와 마음의 소리가 보다 선명하게 들렸다. 일기장에 몸 이야기가 늘어났다. 공복에 사과는 안 좋네. 감자를 삶아 먹으니 속이 편안하더라. 커피와 치즈케이크가 너무 먹고 싶다. 삶은 계란이 이렇게 맛있었나. 시금치와 청경채가 맛있기는 처음이네. 그렇게 내 몸에 좋고 좋지 않은 것들을 매일 분류했다. 먹고 싶은 걸 마음껏 못 먹으니 억울하고 분하기도 했지만, 오래도록 망가진 몸을 되돌리는 데에는 그보다 더 긴 시간과 노력이 필요할 터였다.


그러면서 코로나 시기 썼던 일기를 다시 읽고 다시 썼다. 몸의 문제는 앞으로 나아가면 될 일이었고, 마음의 문제는 왜 그랬는지 들여다 봐야 했다. 그때는 왜 일기장에마저 솔직하지 말하지 못했을까. 이 정도는 견딜만 해, 나만 겪는 일도 아니잖아, 어차피 누가 도와줄 수도 없잖아, 해야 하는 일이니까, 같은 힘 없는 말들이 일기장 가득 실려 있었다. 나는 손바닥으로 그 글을 문지르고, 솔직하게 그 시절을 다시 썼다. 사실은 힘들었다고, 아팠다고, 말할 곳이 없어 외로웠다고. 얼었다 녹았다 반복하며 내 몸에 갇혀 있던 많은 나뭇가지와 돌멩이들을 건져 올렸다.


힘껏 던져도 되지 않는 일이 있지만, 기다리면 되는 일이 있다. 얼음이 깨지는 것도 그런 일일 것이다. 조용히 가만히 봄을 기다리면 되는 일. 때로는 얼음을 지켜보며 기다리는 일이 더 힘이 세다고.

얼음이 붙잡아둔 겨울의 무늬


이제는 꽝꽝 언 얼음에 돌을 던질 때, 얼음이 붙잡아둔 무늬에 대해 궁금해한다. 냉동실에서 얼음 얼리듯 단숨에 얼어붙은 것이 아니라, 며칠의 한파 동안 얼다 흐르다 그 위로 다시 얼면서 마침내 만들어졌을 강의 등껍질을. 채 빠져나가지 못한 나뭇가지와 돌멩이들을 품에 가둔 채, 강물은 다시 돌아오지 않을 겨울날의 무늬를 제 몸에 새긴다. 결국은 모두 사라져버리겠지만, 그렇다고 없던 것이 될 수는 없는 어떤 무늬를.


옛 일기를 읽으며 나는 지난 몇 년 간 내게 새겨진 무늬를 헤아렸고, 새로운 일기를 쓰면서 그 무늬를 어루만졌다. 아팠던 나도 봄을 기다리고, 햇빛은 언제나 내 노트 위에 머무르고 있었다.


내일은 눈이 녹을 것이다. 눈은 올 때는 소리가 없지만, 갈 때는 물소리를 얻는다.

그 소리에 나는 울음을 조금 보탤지도 모르겠다.

괜찮다. 내 마음은 온 우주보다 더 크고, 거기에는 울음의 자리도 넉넉하다.

- 한정원, <시와 산책> "온 우주보다 더 큰"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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