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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개향 May 24. 2022

(5.24) 기대어, 씁시다

작은 봄바람이 되어주는 글쓰기

내 글쓰기 수업의 제목은 <기대어 씁니다>이다. 지난 월요일에 4기 수업이 끝났다. 글 피드백 원본과 따로 쓴 편지를 담아 금요일에 보냈고, 어제와 오늘 도착했다는 연락을 받았다. 수업이 없는 첫 월요일, 편지를 보며 조금은 위안이 되었을까?


이번 기수는 유난히도 좋았다. 겨울이라는 추운 시기를 공유한 사람들이 모여 앉아 오손도손 얘기 나누는 시간이었기에 그랬을 거다. 덕분에 나도 조금은 겨울에서 봄을 향해 앉아 있을 수 있었다. 얼음이 녹는 소리가 쩌엉, 씨앗이 깨어지는 소리가 따악- 희미하게 들려왔다.


처음에 너무 추상적인 감정 범벅으로 글을 써왔던 한 분은, 구체적인 장면을 보여달라는 주문에 한 주 한 주 글이 달라졌다. 마지막 글에 이르러서는 우리 모두 그녀의 20대로 돌아가 함께 어촌 냄새가 물씬 나는 시골 버스에 올라 바닷가까지 달려갔다. 바닷가에 앉아 있던 스물 몇 살의 그녀를 한참 바라보던 건 스물 몇 살의 나였다. 임용고시의 압박을 견디던 어린 그녀를, 자소서를 쓰다 하루를 보낸 어린 내가 바라보고 있었다. 언젠가는 어린 그녀가 어린 나를 보아주는 날도 올 것이다.


역시나 첫 글에서 어디까지 내보여야 할지 망설여져 희미한 감정만 드러냈던 한 분은, 마지막 글에 이르자 하고 싶은 말이 너무나 많아졌다. 얌전해 보이던 분 안에 얼마나 많은 이야기가 숨겨져 있던지! 이곳은 쓰기 모임이지만 결국 다른 사람의 삶을 보며 내 삶을 다시 읽어내려가는 곳이다. 그녀의 글 덕에 나는 나의 20대를 돌아볼 용기가 조금 생겼다.


60을 앞둔 한 분의 글은 담담하고 솔직하면서도 날카로웠다. 우리가 끝까지 숨기고 싶은 찌든 마음을, 원래 그런 얼룩쯤은 하나씩 다 있는 것 아니냐는 양 우리 앞에 슥 내밀곤 했다. 아픈 엄마가 안쓰럽지만 엄마에게 연락하고 싶지도 않은 모순, 불쑥 수십년 전 엄마에게 받은 상처가 올라올 때의 미움, 그런 나 자신을 마주하는 당혹스러움. 미묘하고 복잡한 감정들이 빠짐없이 담겨 있는 글 앞에서 우리도 마음 놓고 솔직해질 수 있었다.


수업에 재차 참여하신 세 분의 글과 삶도 이전과는 많이 달라져 있었다. 갈 수록 글의 완성도가 높아지는 분도 있었고, 그 사이 첫 책을 낸 분도 있었다. 글의 구성은 좀 더 다듬어야 하지만, 긴긴 겨울의 한파에서 벗어나 봄을 한껏 느끼고 계신 분도 있었다. 변화는 반가운 일이다. 내가 그 변화를 지켜볼 수 있는 사람이라는 건 더더욱 반가운 일이다.



수업이 끝나면 그간 피드백했던 글 원본을 모아 편지와 함께 보내드린다. 당신의 글을 이렇게 정성스럽게 읽고 있는 사람이 여기 있어요, 라는 걸 눈으로 보실 수 있도록. 그리고 혼자 글을 쓰러 길을 떠나는 글벗들에게 작은 손전등을 선물하고자 편지를 쓴다. 당신의 글과 함께 해서 행복했어요. 이 시간이 당신의 겨울에 작은 봄바람이 되었기를 희망해요. 그러니,


기대어, 씁시다.

나 역시 당신들이 내게 내어준 이야기를 조각배 삼아

나의 이야기 속으로 떠나볼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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