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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개향 May 25. 2022

(5.25) 자글자글 빗소리

너와 나누어 먹은 바삭한 빗소리

6:40분에 첫째 수영장 셔틀 버스를 태우러 나갈 때만 해도 비가 떨어지지는 않았다. 8시 조금 넘어 하원 셔틀 버스를 마중나가려고 보니 비가 아주 조금씩 떨어진다. 우산을 들기는 귀찮아서 그냥 나갔다. 오늘도 둘째를 업고 걷는데 비가 토독토독 떨어지기 시작한다. 아, 우산을 들고 나왔어야 하나.......

그래도 커다란 나무 아래 서 있으니 나무가 우산이 되어주었다. 어쩌다 떨어지는 빗방울이 볼이나 손등 위로 작은 입맞춤을 남겼다. 아이를 업고 있지만, 누군가의 엄마가 아니라 나무나 비의 아이가 된듯 따뜻했다.

셔틀 버스가 오기를 기다리는 동안 둘째는 계속 휘파람 연습을 했다. 집에서 자기만 휘파람을 못 분다는 데 골이 나있다. 휘익, 휘이익. 바람 빠지는 소리만 연이어 나다가 희미하게 휘파람 비슷한 소리가 나면, 나는 아주 큰 소리로 칭찬을 해준다. "연습하니까 되네, 잘 하네!" 아이는 휘파람으로 연주곡이라도 불 줄 알게 된양 의기양양해진다.

일순간 아이가 휘파람을 멈추자, 차 소리와 사람들 소리 사이로 작게 자글자글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게 무슨 소리인가 가만 귀 기울여 보니, 나뭇잎 위로 보슬비가 잘게 떨어지는 소리다. 나뭇잎에 비 부딪히는 소리는 언제나 투둑투둑이나 토독토독인줄 알았는데, 자글자글이라니!

이렇게 귀여운 소리를 40년 만에 처음 들어본단 말이야?! 분하다. 이 소리를 모르고 산 지난 날들이.

얼마 전 아이들과 함께 읽었던 <우리는 조구만 존재야>에서 내가 제일 좋아하는 에피소드가 떠올랐다. 주인공 브라키오가 바다에서 배영을 하다 비가 오면 빗방울이 바다 표면에 부딪히는 소리가 귓가에 들리는데, 그때 마치 노릇노릇 바삭바삭한 새우튀김이 되는 기분이란 것이다. 어쩜 이런 생각을 해! 하며 셋이서 크게 웃었던 장면이다.


"비가 오는 소리가 자글자글일 줄은 몰랐어."

"그러게, 이 소리 귀여워."

"엄마는 이왕이면 가장 맛있는 새우튀김이 되고 싶어."

"ㅋㅋㅋㅋ 맛있겠다 엄마."


아이와 튀김 얘기를 하며 빗속에서 입맛을 다셨다. 이제 우리는 비 내리는 나무 아래서 새우 튀김 얘기를 할 거고, 새우 튀김을 먹을 때면 빗소리 얘기를 하겠지. 너랑 나랑은 오늘의 빗소리를 냠냠 나누어 먹은 거야. 군침이 돌도록, 바삭하고 맛있는 소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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