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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개향 May 28. 2022

(5.28) 브래지어 없이 삽니다, 거의

내 가슴과, 내 몸과, 내 자신과 친하게 살기

사진관이다
단체 사진을 찍어야 했다
총 여섯 명이다

결혼은 안 했지만 이혼을 세 번 한 사람 A
목덜미에 분화구 문신을 한 사람 B
알고 보면 좋은 사람 C
우산살에 쉽게 위축되는 사람 D
숨을 참는 얼굴과 참지 않는 얼굴이 같은 사람 E
브래지어가 없는 사람 F

사진이 잘 나오기 위해
사람 A는 운동을 하고 있었고
사람 B는 숙면을 취했으며
사람 C와 D는 포옹을 했고
사람 E는 긍정적인 경험을 반복적으로 떠올렸다

F도 노력을 해야 했다 그러나
브래지어가 없었다 헐렁한
하얀 면티를 입고 있었으므로
허리를 펴면 젖꼭지가 비쳤다
허리를 굽혀야 했다 고개를
숙이고 의자에 앉아 있었다

노력이란 건 브래지어 없이 불가능했다

사람 A, 사람 B, 사람 C, 사람 D, 사람 E가 다가왔다
왜 허리를 굽히고 있니
왜 허리를 펴지 못하니
도와줄까?

브래지어가 없어서 F는 고개를 들 수 없었다
고개를 숙인 채 다른 이들의 가슴을 곁눈질했다

감쪽같이 숨기고 있었다

브래지어가 어디 있다는 걸까 아무리
생각해도 그것은
F에게만 없고 모두에게 허락된 무엇이었다

사진사가 셔터를 눌렀다
허리가 굽은 F는 고개만 쑤욱 내밀었다

A B C D E F 중 얼굴이 가장 크게 나왔다

- "얼굴 큰 사람", <책기둥> 중, 문보영




이번 달 호시탐탐에서 읽은 시집은 문보영 시인의 <책기둥>이었다. 그 중 "얼굴 큰 사람"을 어제 줌 모임에서 함께 읽었다. 추천하신 분은 그려지는 풍경이 재미있었다고 하셨고, 다섯 남자 사이에서 홀로 전전긍긍하고 있는 여성의 모습이 연상되었다는 분도 있었다. 의식하지 않아도 되는데 나만 의식하는 어떤 것에 대한 생각을 떠올린 분도 있었고, 기본조차 갖추지 못해 움츠러든 사람을 떠올린 분도 있었다.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그런 의문이 들더라. 모두가 얼굴 작아보이려고 안달할 때, 젖꼭지를 감추기 위해 얼굴 크기를 포기하는 상황의 우스꽝스러움. 젖꼭지가 드러나는 건 이토록 용인되지 않는 일일까? 우리는 왜 이렇게 젖꼭지를 감추려고만 드는 걸까? 비단 여성뿐만 아니라 남성조차도?




브래지어를 하지 않은지 2년 반 정도 되어간다. 탈코르셋 운동 같은 거창한 이즘으로 시작한 것은 아니었다. 워낙에 답답해한 걸 못 견뎌 집에 오면 일단 모든 옷을 훌렁 벗어던지고 잠옷으로 갈아 입던 사람이었다. 겨울옷이 두꺼워 티가 잘 나지 않으니, 브래지어 없이 집 근처에 외출하던 게 탈브라의 시작이었다.


날이 따뜻해지며 옷이 얇아지자 고민이 들었지만, 한번 자유로워진 몸에 다시 브래지어를 하는 게 쉽지 않았다. 와이어가 없는 브래지어조차도 답답하게 느껴졌고, 여름날 가슴골에 땀이 차는 것도 싫었다. 그래서 조끼를 입기도 하고, 브라렛도 입어보고, 패드가 부착된 티셔츠도 사보고, 니플 패치도 붙여 봤다.


요즘은 조끼와 니플 패치를 가장 많이 활용한다. 니플 패치도 안 하고는 못 나가겠더라. 아직도 강의가 있거나 공적인 행사가 있는 날만큼은 브래지어를 챙겨 입는다. 남의 시선이 영 신경 쓰이지 않는 건 아니다. 옷이 얇거나 굴곡이 드러나는 원피스를 입을 때는 어쩐지 등이 약간 구부정해진다. 내 안에서 아직 완전한 해방에 이르지는 못한 것이다.


그래도 이 편안함과 자유로움을 포기할 수 없어 올해도 니플 패치로 여름을 난다. (가끔 궁금은 하다. 젖꼭지를 가리는 건 최소한의 예의라고들 하고 나도 부끄러워 니플 패치만큼은 꼭 챙겨 하게 되는데, 이게 왜 예의일까...?) 아마 앞으로는 쭉 이렇게 살 것 같다.


브래지어 없이 나간 날 찍은 사진들이다


올 초부터 4학년 큰애의 가슴 몽울이 잡히기 시작했다. 아직은 티셔츠 위로 크게 티가 날 정도는 아니다. 이번 여름은 어찌어찌 나겠지만, 그리고 겨울이야 옷이 두꺼워 잘 모르고 지나가겠지만- 다음 여름이 되면 제법 티가 날 것이다. 키 큰 친구들 중에는 벌써 주니어 브라를 하는 아이들도 종종 보인다.


4월부터 땀을 줄줄 흘려 12월에도 조금만 뛰면 땀을 흘리는 아이이다. 조금만 불편하거나 까슬한 옷도 안 입으려는 아이는, 앞으로 어떤 마음으로 브래지어를 만나게 될까? 내가 어릴 때만 해도 '브래지어를 하지 않는다'라는 선택지라는 게 아예 없었지만 이제는 나조차 브래지어를 하지 않는데, 나는 어떤 말로 아이에게 브래지어를 권해야 할까? 성장기이고 친구들의 시선에 더 민감할 때니 군소리 없이 받아들일까? 혹은 답답해서 죽어도 못하겠다고 거부할까?


아이의 세상에서는 또 어떤 선택지들이 생겨날지 궁금해진다. 그리고 어떤 선택도 지지해주고 싶고. 자기 가슴과, 자기 몸과, 나아가 자기와 친하게 지낼 수 있는 사람으로 커나갔으면 좋겠다. 나도 그런 사람이 되기 위해 더 노력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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