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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개향 May 29. 2022

(5.29) 다름을 받아들이는 사회

우리는 서로의 삶을 얼마나 더 알려고 노력하는가


신순규 애널리스트의 유퀴즈 출연분을 보았다. 신순규 씨는 한국에서 피아노를 치다가 유학의 기회를 얻어 미국으로 건너갔으며, 특수학교에서 일반학교로 옮겨 공부를 하게 되었다. 하버드에서 심리학을 공부하고 장애인법 연구 도중 월가에서 인턴을 하다가 애널리스트라는 직업에 매력을 느껴 공부를 시작했다. 시각장애인으로는 처음 CFA 자격증을 땄으며, 미국의 브라운 브라더스 해리먼에서 애널리스트로 일하고 있다.



역경을 딛고 성공을 이뤄낸 장애인의 이야기는 감동적이다. 할 수 없다고 좌절하고 안주하지 않고, 공부에서도 일에서도 남들보다 더 열심히 노력을 해온 사람의 이야기가 어떻게 감동적이지 않을 수 있을까. 나라는 사람은 아픈 곳도 없이 뭐 그리 힘들다고 징징대나, 반성도 하게 되고 숙연한 마음이 차오른다. 블로그를 찾아봐도 대부분 신순규씨의 노력에 대한 감동이 주를 이룬다. 


하지만 이번만큼은 다른 포인트에서 더 깊은 인상을 받았다. 바로 신순규 씨가 고등학교 시절 공부할 때와 CFA 시험을 보러 갔을 때 미국 사회가 이 사람을 받아들이는 방식이었다. 아무 조건 없이 신순규 씨를 품어준 미국인 후원 가족, "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자"며 시각 자료를 만질 수 있는 모형 교구로 변환시켜 주신 학교의 선생님들. 앞이 안 보이는 학생에게 방법을 찾아보면 할 수 있다며 양궁을 가르쳐준 선생님도 계셨다고 한다.  


CFA 시험 당시에도 보안 문제 때문에 점자 시험지를 만들어줄 수 없다고 하자, 신순규 씨는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조건 하에서 시험을 볼 수 있는 방법을 주최측과 협상한다. 


시험 문제를 읽어주고 답을 써줄 사람을 주최측에서 고용해달라
타인을 방해하지 않기 위한 분리된 공간을 마련해달라
말로 듣고만 풀어야 하니 시간을 조금만 더 달라


주최측은 그의 요구를 들어주었고, 신순규씨는 금융 계산기의 자리를 다 외워가는 노력을 더 해 자격증을 땄다. 한 사람의 성공에는 개인의 노력 뿐만 아니라 사회의 시스템이 뒷받침되어야 한다는 점을 여실하게 보여준 일화이다. 신체적, 정신적 특성이 다른 사람들의 특수성을 고려해 그에 맞는 새로운 기준을 제시할 수 있는 사회. 


이동권 투쟁을 위한 이들에게 30분도 내어주지 못하는 우리 사회였다면 아마 '공정하지 못하다'는 이유로, 혹은 아직 선례가 없다는 이유로 위와 같은 기준은 배제되지 않았을까? 우리가 그렇게도 강조하는 '공정'은 누구를 위한 공정인가? 그리고 선례는 대체 언제 만들어지는가? 



"'합리적 편의 제공'이라 함은, 다른 사람과 동등하게 장애인에게 모든 인권과 기본적인 자유의 향유 또는 행사를 보장하기 위하여, 그것이 요구되는 특별한 경우, 불균형하거나 부당한 부담을 지우지 아니하는 필요하고 적절한 변경과 조정을 의미한다." (제 2조) 예를 들어, 어떤 장애인이 식당에 가려 하는데 식당 앞에 두 개의 계단이 있다면, 그 계단 앞에 간단한 슬로프(경사로)를 설치하거나 장애인이 올라갈 수 있도록 직접 도움을 제공하는 것이다. 시각장애인이 시험을 볼 때 점자로 된 시험지를 제공하거나, 컴퓨터를 통해 음성으로 시험 문제를 파악할 수 있도록 하는 것도 '합리적 편의 제공'에 해당한다. 편의를 제공하는 사람에게 '부당한 부담'까지 지우지 않는다면, 편의 제공의 책임이 있는 사람은 합리적 편의를 제공해야 하고 그렇게 하지 않으면 장애인에 대한 차별이 성립할 수 있다. 

- <실격당한 자들을 위한 변론> 중, 김원영



김원영 작가의 <실격당한 자들을 위한 변론>에서는 1990년 제정된 미국 <장애인차별금지법>의 '합리적 편의 제공 reasonable accommodation' 개념을 소개한다. 신순규 씨는 자신과 사회 사이의 간극에 굴복하지 않고, 사회에 자신의 다름을 받아들일 수 있는 방법을 찾으라고 요구했다. 그리고 사회는 그 요구에 기꺼이 응답했다. 


어제는 큰아이 과제를 위해 서대문 형무소에 다녀왔다. 여러 건물의 위아래 층을 오가며 관람하던 중, 휠체어를 탄 한 남성 분이 지하에는 내려갈 수 없어 가족들에게 다녀오라고 하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물론 이곳이 오래된 감옥 건물이라는 것을 감안할 필요는 있겠다. 하지만 장애인 입장료 할인이 있고 유모차, 휠체어 보관 장소가 있으면 무엇하나. 실제로 내부 콘텐츠를 감상할 방법이 없는데. 이곳이 일제 강점기의 역사를 잊기 위해 누구에게나 열린 장소이며 특히 학생들이 역사를 배울 때 꼭 들르는 장소 중 하나라는 것을 감안한다면, 이런 소외의 경험에 대해 우리가 좀 더 진지하게 생각할 필요가 있다. 


장애를 극복해야 하는 개인의 문제로 환원한 채, 개개인의 치열한 분투에 감동하는 사회를 넘어서고 싶다. 애초부터 다수 위주로만 설계되어 있는 사회의 기준들에 의문을 갖는 사람이 되고 싶다. 왜냐하면 나는 때로는 다수이며 때로는 소수이기 때문에. 그리고 나를 둘러싼 많은 사람들이 또한 때로는 다수이며 또 다른 곳에서는 소수이기 때문에. 다수 위주의 삶에서 개개인이 위축되지 않는 삶을 살아가기를 바란다.


그러나 나는 아직 많은 것을 모른다. 너무 많이 모른다. 내가 아는 것은 내가 살아온 삶뿐이다. 그래서 배우고 싶고 듣고 싶고 알고 싶다. 다 알지는 못해도, 조금이라도 알려고 노력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알게 되면 이전과 같을 수는 없을 테니까. 그렇게 서로의 삶을 좀 더 알려고 노력하는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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