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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개향 Jun 02. 2022

(6.1) 작가 대신 편집자의 눈을 갖기

각지지만 말랑한 두부의 마음으로

<편집자가 안내하는 에세이 쓰기>라는 수업을 듣기 시작했다. 휴머니스트 '자기만의 방' 시리즈를 만들어왔던 김보희 편집자님의 수업이다. '이것저것 쓰고 있지만, 이 글들을 엮을 주제/컨셉을 찾지 못한 분들'에게 추천한다는 문장을 보고, 나를 위한 수업이다 싶었다. '겨울은 길고 봄은 먼 사람에게'라고 두루뭉술하게 쓰고 있는 글이 딱 그런 모양이라서.

오늘 첫 수업이 있었다. 미리 자기 소개글을 공유하기는 했지만, 얼굴을 마주보고 자기 소개하는 일은 더 떨리고 설렜다. 자기 소개글에서 수업 동안 불릴 이름을 정하라고 해서 '바온'이라고 적어 냈었다. 갖고 있는 다른 필명 중 하나다. 그런데 오늘 수업에서 '편집자로 관점을 전환해야 한다'는 말을 듣자, 불쑥 이름을 바꾸고 싶어졌다. 바온은 쓰는 사람이지, 편집하는 눈을 가진 사람은 아니기 때문이다.

좀 더 구체적인 사물로 처음 떠오른 게 두부였다. 쓰는 나는 한없이 펼쳐져 나가 형태가 없다. 혹은 사라지고 싶다. 안개향도 그렇고 바람의 온도도 그렇고, 손에 잡히는 구체적인 사물이 없는 단어들이다. 하지만 편집하는 나는 보다 구체적이고 현실적이고 싶다. 각진 형태가 있지만 말랑말랑하고 부드러운 두부. 틀이 있지만 꽉 막히지만은 않은 두부 같은 사람이 되어 내 삶을 편집해보고 싶었다. 두부, 새로 만든 이름이 퍽 보드랍다.


오늘 이야기 중 가장 마음에 남았던 건 나를 한 권에 다 담지 않고 잘게 소분하여 여러 권의 책으로 담아도 된다는 말이었다. 두 권의 책을 그림책과 관련하여 쓰다 보니, 계속 그림책에 대한 이야기를 써야 하나 하는 고민이 있었다. 하지만 내가 가진 면면을, 겪은 시간을, 좋아하는 것을 잘게 쪼갤 수록 글감이 많아지니 얼마든지 나를 쪼개도 된다는 말이 기쁘게 다가왔다. 더 많은 나를 보여줘도 된다는 응원처럼 들렸다.

글감 찾기 숙제를 잔뜩 받았다. 하얗고 말랑하고 따끈한 두부 같은 마음으로 책상에 앉아 봐야지. 매일 아침 고소한 맛이 나면 좋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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