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전에 갔다가 봉은사에 들렀다. 불교 신자는 아니지만 절에 갈 기회가 있으면 대웅전에 들어가 삼배를 하고 온다. 부처님을 향해 방석을 깔고 짐을 내려놓고 두 손을 모은 후 천천히 내려간다. 무릎을 굽히고 머리를 숙여 온 몸을 납작하게 엎드린다. 양 손은 위로 받들듯 뒤집고, 양 발은 교차한다. 그런 채로 잠시 머물면 저절로 이런 말이 흘러나온다.
"내려놓습니다"
몸을 낮추어 세번 절을 하면, 무거워야 할 것들은 아래로 무겁게 흐르고 가벼워도 되는 것들은 위로 떠오르는 느낌이 든다. 산만하게 섞여 있던 구슬들이 제 자리를 찾아가는 느낌. 고작 세번의 움직임에 그런 느낌을 받는다는 게 신기하다. 화가 올라올 때 3번만 큰 숨을 쉬라던지 5초만 참아보라고 하는 것처럼, 헝클어진 마음을 제자리로 돌리는 데는 그리 긴 시간이 필요하지 않다. 모든 순간 그 3번, 그 5초가 쉽지 않아 문제지.
바람이 불면 풍경이 흔들리고 연등의 이름표가 흔들린다. 댕-댕- 토독-토도독- 그 소리를 한참 귀에 담아 돌아온다. 추울 때 듣는 모닥불 소리, 메마를 때 듣는 시냇물 소리처럼- 흔들릴 때는 풍경 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숨도 짐도 화도 고요히 내려놓고 싶을 때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