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 봄을 기다리며 겨울 딸기를 먹는다

생산하기가 아니라 존재하기

by 안개향

잔디밭에 유달리 흙이 드러나서 길이 된 부분이 있다. 돌아가는 길이 귀찮다는 이유로 사람들이 계속 다니다보면, 잔디가 밟혀 없어지면서 지름길 비슷한 게 생긴다. 그러면 사람들이 원래 있던 길인 줄 알고 그쪽으로 더 많이 다니면서 결국 새로운 길이 된다.


우울증도 꼭 그런 모양이었다. 나라는 존재가 덧없고 보잘것없다는 방향으로 생각이 쏠리기 시작하면, 그 생각들이 점차 새 길을 만들기 시작한다. 곧 거의 모든 생각이 이쪽 길을 통과하며 자기비하와 불안을 먹고 부풀어 오른다. 나에게도 장점이 있다는 생각, 다른 사람에게도 아픔이 있다는 생각, 이 시련은 곧 끝이 난다는 생각의 길은 차단되고 만다.


약국에서 받은 우울증 약에는 작은 알약 두 개가 들어 있었다. 하나는 항우울제, 하나는 항불안제. 약을 먹으면 사람에 따라 너무 졸리거나 멍해지기도 한다는 말을 주변에서 여럿 들었다. 걱정했던 정도는 아니지만 나도 그런 느낌을 받았다. 원래 육체적 피로가 쌓여서 그런 건지 약 부작용인지 모르겠지만 약간 졸린 감이 있었다.


그러자 언제나 과도하게 활성화되어 있던 뇌가 조용해졌다. 아침에 일어나면 스마트폰 전원을 켜듯이 생각이 순식간에 깨어나 뇌를 잠식했었다. 몇 시까지 무얼 해야 하는지, 어제 못한 게 뭐가 있는지, 이게 안 되면 그 다음엔 어떻게 해야 하는지. 같은 생각들이 한꺼번에 몰려드는 게 아침의 시작이었다.


그런데 약을 먹은 지 사흘도 안 되어, 건전지가 거의 다 닳은 장난감처럼 생각이 둔하고 느려졌다. 머리에 100개의 회로가 있던 사람이라면, 10개 정도만 남기고 나머지는 막아둔 느낌이었다. 과활성화되었던 자기비하와 불안의 길이 막히니 사람이 연두부처럼 순해졌다. 무척 편안하면서도 어쩐지 내가 아닌 것만 같아 이상했다. 나를 들들 볶던 내가 나에게 꼭 맞는 나 같던 모순에서 벗어나기가 쉽지 않았다.


진단을 받은 줄 모르는 친정 엄마가, 공사 지켜보느라 고생한다며 보약 한 재를 지어먹자고 한의원에 데려갔다. 숏컷에 씩씩한 경상도 사투리를 쓰는 한의사가 맥을 짚더니 신경정신과와는 전혀 다른 얘기를 해주었다. 오랜 기간에 걸쳐 위가 상한 것이 문제라고 했다. 위가 상하면 심장에 무리를 주고, 심장이 빨리 뛰면서 뇌가 불안을 느낀다는 설명이었다. 젊은 사람이 어쩌다 이렇게 위가 상했냐며 혀를 쯧쯧 찼다.


"저 예전에는 위가 안 좋긴 했는데. 오히려 35살 이후로는 위가 아픈지 모르고 잘 지냈어요."

"만성이 되서 그래요. 지금 이게 아픈 거예요. 역치가 높아진 거지. 치료하다 보면 외려 더 잘 체한다고 느낄 수 있어요."


너무 상해서 오히려 아픈 걸 몰랐다니. 몸도 마음도 똑같았구나. 어디서부터 어떻게 손을 대야 하는 걸까. 약을 먹더라도 몸을 돌보지 않으면 다시 원점으로 돌아갈 수도 있겠구나.


그래서 나는 아주 작은 일부터, 그러나 내가 잘 하지 않던 일부터 시작하기로 했다. 예를 들면, 내 몫으로 딸기 두 알을 남겨두는 일. 




내 기억 속 딸기는 분명 봄 과일이었다. 내 생일인 3월 말 겨울의 마지막 기침이 지나간 후 4월이 되어 따뜻한 바람이 불어올 무렵, 과일 가게 매대에 루비처럼 빨간 딸기들이 진열되었다. 어릴 때는 딸기가 달콤하기보다는 새콤한 맛이 강해 좋아하지 않았다. 그래도 따뜻한 바람 사이 은은하게 풍기는 딸기 향은 봄의 흙내음이나 냉이 된장찌개 향처럼 마음을 달뜨게 했다.


언제부턴가 딸기는 칼바람 한가운데 먹는 겨울 과일이 되었다. 대부분 비닐하우스에서 재배되어 계절을 타지 않게 되었기 때문이다. 딸기의 제철이 언제냐고 물었을 때 초여름이라고 하면 옛날 사람, 겨울이라고 하면 요즘 사람이라는 말도 있을 정도다. (원래 노지에서 키우는 딸기는 제철이 5-6월이라고 한다.) 최근 국내 딸기 시장 80% 이상을 차지하는 설향 품종의 경우 아예 겨울에만 재배할 수 있다. 이름부터 눈 설 향기 향이니, 겨울 딸기에 꼭 맞는 이름이다. 혹한기인 1-2월이 제철이고, 4월만 되도 금세 무르고 당도가 떨어져 인기가 시들해진다.



새콤하고 단단해서 딸기를 잘 안 먹던 예전과 달리, 요즘 딸기는 참 달고 부드럽다. 입 안에서 뭉그러지자마자 맛과 향이 분홍빛으로 퍼진다. 그래도 여전히 딸기를 잘 안 먹던 이유는, 다름아닌 가격 때문이다. 둘째가 딸기를 좋아해서 겨울에 가끔 사곤 하지만, 한 팩에 몇 알 안 들어 있으니 차마 내 입에까지 넣지 못했다. 쓰고 보니 이상하네, 뭐 그렇게까지 궁상이었담.


돌이켜보면 먹는 일부터 늘 가족 우선이었다. 넷이 가서 메뉴 네 개를 시키면 너무 많으니, 세 개를 시킨 후 아이들 메뉴 중 남는 것을 내가 먹었다. 식구들이 어느 정도 먹은 걸 보고 난 후에야 먹기 시작하니, 맛이나 양이나 썩 차지 않았다. 음식 남기는 걸 싫어하는 남편은 내가 잘 안 먹으니 음식이 남는 줄 오해해서 계속 먹고, 나는 남편이 배가 안 찬 줄 오해해서 잘 안 먹고. 그러다 배가 덜 차면 주전부리를 폭식했다.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나 혼자 늘 그렇게 살았다.


한의원에 다녀온 올해 1월에는, 딸기 한 팩을 사면 두 알 정도는 내 몫으로 남겨두었다. 나를 위한 딸기는 내가 아니면 아무도 챙겨주지 않으니까. 그 겨울 나를, 내 몸을, 내 입을 챙겨주는 일을 가장 열심히 하기로 마음먹었다. 상한 위를 잘 돌봐줘야 한다는 한의원의 말에 외식을 접었다. 카페인, 신 음식, 날채소, 달디단 디저트 금지. 하얀 쌀죽을 끓이고 시금치를 데치고 청경채를 볶아 먹는 날들이 이어졌다.


일기장에 몸 이야기가 늘어났다. 공복에 사과는 안 맞네. 감자를 삶아 먹으니 속이 편안하더라. 커피와 치즈케이크가 너무 먹고 싶다. 삶은 계란이 이렇게 맛있었나. 그렇게 내 몸에 좋고 좋지 않은 것들을 매일 분류했다. 먹고 싶은 걸 마음껏 못 먹으니 억울하고 분하기도 했지만, 오래도록 망가진 몸을 되돌리는 데에는 그보다 더 긴 시간과 노력이 필요할 터였다.


아이들 겨울 방학과 코로나를 핑계 삼아 사람도 거의 안 만나고 수업도 안 했다. 번역하고 읽고 쓰는 일도 오랜 시간을 들이지 않았다. 언 강의 밑바닥처럼 고요히 살았다. 얼음 아래 들어가 있으니 오히려 춥고 불안한지 모르고 안온했다. 대신 밥을 다 먹고 남겨둔 딸기 두 알을 먹으면 입에서부터 온 몸으로 행복감이 가득 차올랐다. 하얀색과 초록색의 슴슴한 음식들 가운데 딸기는 생일 케이크 같은 기쁨이었다.


겨울 과일이 된 딸기를 꼭꼭 씹어먹으면서, 여전히 내게는 딸기의 제철인 봄을 떠올렸다. 얼음 아래서 딸기를 먹고 있다니 얼마나 큰 행운이야. 곧 봄이 올 거야. 땅에서도 내 마음에서도 얼음이 스르르 녹는 날이 오고 말거야.


땅심을 기르는 시간


서울 농협가락공판장에서 설향 딸기로 최고 경락가를 기록한 전남 담양 한 농부의 인터뷰를 읽었다. 20년 가까운 농사 경험 중 첫 5년 동안 시행착오를 거듭하며 배운 비법은, '2년 경작, 1년 휴경'이라고 말했다. 비닐하우스 6동을 2동씩 나눠 2동에는 설향, 2동에는 죽향을 재배하고 남은 2동은 농사를 짓지 않고 땅을 놀린다.


이때 쉬는 비닐하우스는 비닐을 모두 벗긴 후, 객토(농지에 흙을 넣어 성질을 개선하고 생산성을 높이는 일)하고 좋은 퇴비도 뿌려둔다. 비바람을 맞히며 얼었다 녹기를 반복하면 땅심, 즉 농작물을 길러낼 수 있는 땅의 힘이 올라온다. 땅심이 회복되어야 다음 농사를 기대할 수 있다.


"농사에서 욕심은 금물입니다. 면적을 무리하게 늘려봤자 딸기 품위만 떨어집니다. 인건비도 만만치 않죠. 연소득으로 따져보면 오히려 손해더라고요. 좋은 농산물을 첫째도, 둘째도 땅심에서 나온다는 걸 꼭 기억해야 합니다."

- 정병운 농민 인터뷰, 농민신문. 2018.2.9


딸기에 품위라는 단어를 쓴 게 눈에 들어왔다. 비싸고 맛있고 잘 팔리는 딸기란 말 대신 품위 있는 딸기라는 말. 농부가 땅과 딸기를 어떻게 대하고 있는지가 잘 드러나는 단어였다. 이문을 남기는 상품이기 이전에, 생명이자 존재로 보아주는 눈. 그렇기에 딸기를 낳는 땅에게도 쉴 시간을 충분히 줄 수 있을 테다. 그 다정한 눈길이 오히려 딸기를 잘 자라게 했을 테고.


어릴 때만 해도 주변 모든 땅이 일하지 않았다. 시골은 물론이거니와 도시에조차 개발되지 않은 공터와 흙산이 있었다. 누구의 땅도 아닌 곳에서 아이들은 뛰어놀고 어른들은 삼삼오오 모였다. 이제는 일하지 않는 땅을 찾아보기 힘들다. 땅은 농산물을, 월세를, 주차료를 계속해서 생산해야 한다. 생산하지 않고 그저 존재하는 땅이란 현대의 셈에 맞지 않는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그저 존재할 수 있는, 느끼고 머물고 조용해질 여유가 없다. 어린 아이들조차도 더 빨리 더 많은 것은 생산하기 위해 이 학원에서 저 학원으로 쉴 새 없이 오간다. 사계절 중 봄 여름 가을만 있는 것처럼 내달리다 보면, 땅심을 잃는 순간이 온다. 아무리 무언가를 더 생산해내려 해도 할 수 없는 순간. 번아웃, 불안, 우울은 그럴 때 해충처럼 온다.


내 몸에 비료 주고 그저 내버려두는 시간 하나 없던 동안- 소소하게 병원 갈 일이 많아지고 짜증이 늘고 갈피를 못 잡던 나를 떠올려본다. 쉼없는 농사로 품위가 떨어지고 비용이 늘어나는 건 딸기만이 아니다. 사람 농사도 매한가지다.


20대 우울증 환자 수가 최근 5년간 127%나 급증(건강보험심사평가원 '2017-2021년 우울증, 불안장애 진료 통계 분석 결과) 한 건 그 세대의 정신력이 특별히 약해서가 아니라, 쉬지 않고 생산하라는 사회의 속삭임 때문이다. 일개 개인이 쉬어가겠다고 용기를 내어도, 그 시간은 실패이고 낙오라고 낙인이 찍히고 마니까.


어떤 사람도 오직 생산만을 위해 살 수는 없다. 그리고 생산하지 않아도 우리는 존재할 수 있다. 먹을 수 있고 잘 수 있고 느낄 수 있다. 목적 없이 그저 존재하는 시간이야말로 우리를 웃고 울게 한다. 땅심을 북돋고 사람을 일으켜 세운다. 다시 봄과 여름과 가을을 지낼 준비를 하게 해준다.


내가 쉬고 있는 이 겨울도 땅심을 기르는 시간이라고, 하루 식사의 마지막에 딸기 두 알을 챙겨먹으며 생각했다. 내가 지금 할 중요한 일은 딸기를 꼭꼭 씹어먹는 일. 겨울을 그저 나며, 봄을 그저 기다리는 일. 그 일보다 더 중요한 일은 없다고. 내년 겨울에도 꼭 딸기 두 알씩을 챙겨먹을 거라고 그렇게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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