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 두텁게 얼었다 와르르 녹기 위하여

믿을 수 없지만, 우울증이랍니다.

by 안개향

언 강에 미혹되었다는 작가가 있었다. 겨울을 무척 사랑하여, 그의 첫 책은 눈으로부터 시작된다. 추위는 여전히 질색이지만, 그의 글을 읽고 있자면 겨울을 작게나마 사랑하고 싶어졌다. 그래서 그 해 겨울에는 겨울만의 아름다움을 따로 찾아 다녔다. 털옷을 감싸입은 백목련의 겨울눈이나, 딱 하나 남은 주홍빛 까치밥이나, 땅에 포근한 이불 덮어준 갈색 잎새들이나, 하얀 눈 사이 볼 빨개져 옹기종기 모여 있는 남천 열매 같은 것. 완벽히 미혹될 수는 없어도 살포시 미소 지을 수는 있었다.


'미혹'이라는 단어를 입술에서 떼어본다. 미. 혹. 마음이 흐려서 무엇에 홀린다, 혹은 정신이 헷갈려서 갈팡질팡 헤맨다는 뜻이다. 좋지 않은 뜻처럼 느껴지지만, 나는 이 단어를 참 좋아한다. 십 대부터 스무살 언저리에는 미혹의 문이 넓었다. 겨울날 호수에서 피어오르는 물안개에, 해가 넘어가는 푸른 시간에 걸려 있는 붉은 신호등에, 멈출 줄 모르고 달려가는 차들의 붉은 꼬리띠에. 한참을 머물러도 지치지 않고 미혹될 수 있는 풍경들이었다.


바라보다 미혹되어 꼼짝없어지고 마는 건, 무조건 뛰어들어 즐겁게 노는 어린이는 모르는 순간이고 가치와 효용을 재는 사회인들에게는 허락되지 않는 시간이다. 아직 미혹될 수 있는 시인은 젊고 아름다울 것이다. 나는 그렇게 상상하고 만다.

운이 좋다면 언 강에서 겨울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 나와 그녀는 한참 강 앞에 머물다가 문득 심장을 내려앉히는 큰 울림을 들었다. 먼 산속에서부터 오는 짐승의 울음 같기도 했지만, 사실 그건 눈 앞의 강 깊숙한 곳에서 얼음이 녹아 부서지는 소리였다. 함부로 몸을 움직일 수 없게 두렵고도 아름다웠다. 눈에 보이지 않아 더 그랬을 것이다. 방금 들었던 소리가 환청으로 느껴질만큼, 언 강은 견고한 모습 그대로였다.

어쩌면 강도 영영 잃고 싶지 않은 것이 있어, 소리를 얼려두나 보다. 어느 때 산과 땅을 울리도록 그리운 소리가 터져나오기를 기다리며, 얼음 모자를 쓰고 있는지도.

- 한정원, <시와 산책> "추운 계절의 시작을 믿어보자" 중

한정원, <시와 산책>


작가처럼 나도 언 강에 고요히 미혹되고 싶었지만, 아이들은 꽝꽝 언 1월의 한강 앞에서도 먹이 찾은 겨울새처럼 분주히 재잘거렸다. 우리는 나란히 서서 있는 힘껏 강을 향해 돌멩이를 던졌다. 얼음 모자가 꽤나 두툼한지, 소리가 꽤나 깊이 숨어 있는지- 돌멩이는 얼음 표면에 약간의 흠집만 낼뿐 쭉 강변도로 저편 아래까지 쭉 미끄러져 갔다. 그만치에 커다란 돌들이 놓여 있는 걸 보니, 누군가 이미 있는 힘껏 큰 돌을 던져 보았던 모양이다. 소용이 없었던 게지.


얼만큼 충분히 두터워야 저만큼 큰 돌에도 꿈쩍하지 않을 수 있을까.



30대의 마지막 몇 번의 겨울 동안, 나는 살얼음이었다. 돌을 던지는 족족 얼음이 깨졌다. 차라리 얼지 않고 다 녹아버리거나 꽝꽝 얼어버리길 바랐건만, 0도 언저리를 오가며 얇은 얼음으로 살았다. 11월부터 큰아이가 다니는 학교에서 확진자가 계속 나와, 아침마다 학교 알림이 뜨면 한 눈만 가늘게 뜨고 알림을 눌렀다. 우리 반 오늘 등교할 수 있나 없나. 큰 숨을 들이쉬었다가 내쉬는 시간이 매일 아침 반복이었다.


대면 강의 취소는 이제 일상이었다. 코로나 뿐만이 아니었다. 8년 간 살았던 집에서 이사를 나가고, 원룸에서 새해를 맞이했으며, 이사갈 집 공사 때문에 이웃집에 인사를 다녔다. 몇 마디로 압축하기 벅찬 사건과 사고와 날선 말들이 나를 계속 흔들어댔다. 완전히 얼 수도 완전히 녹을 수도 없었다.


매일 공사 현장에 들락대야 하는 일은 그 중에서도 가장 얇은 살얼음이었다. 꼼꼼한 남편은 내가 현장에 가서 하나하나 공정을 살피길 원했다. 나도 그게 옳다는 건 알지만, 마음이 도무지 움직여주질 않았다. 귀가 멍해지는 소음과 분진 속에 들어서기도, 바쁜 인부들 사이 꿔다 놓은 빗자루처럼 서 있기도 괴로웠다. 공사 진행을 살피며 낯선 인부들에게 원하는 걸 요구하기는 더더욱 어려웠다. 하나같이 내가 잘 못하는 일이었다.


6주 동안 늘 저녁 5시를 기다리는 마음으로 살았다. 그때면 공사가 끝나 원룸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더 이상 소음으로 다른 집에 민폐를 끼칠까 마음 졸이지 않아도 되는 시간. 그리고 이 원룸의 유일한 아름다움인 해넘이를 마음껏 볼 수 있던 시간.


해가 기운을 잃어가고, 스카이라인이 금빛으로 빛나고, 하늘은 푸른빛에서 붉은 빛으로 낯빛을 바꾸고, 강물은 서서히 멈추어 갔다. 자동차 헤드라이트와 건물의 조명들만 남고 하늘과 강과 다리 모두가 어둠과 한 몸이 될 때까지- 저녁을 준비하다 말고 자주 뒤를 돌아 하늘을 보았다. 2021년은 저무는 해에 묶어 남김없이 버리고 싶어, 중얼거리면서.


새벽마다 눈을 뜨면 심장이 감당하기 어렵도록 세차게 뛰었다. 머릿속으로는 온통 '오늘 공사장 가기 정말 싫다'는 생각뿐이었다. 이렇게 싫어서야, 나중에 이 집에 어떻게 들어가서 살 수 있을까 싶을 정도였다. 무거운 발을 이끌고 엘리베이터 앞에 서면 다리가 후들후들 떨렸다. 우리 집 층수를 누르면, 공사하는 집 사람이라는 걸 들켜 이웃들에게 한소리를 들을 것만 같아서. 그래서 윗윗층을 누른 후 계단으로 내려왔다.


계단을 걸어 내려오며 이건 좀 많이 이상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벌어지지도 않는 일을 상상하고 초조해하고 불안해하고. 이 이상함을 혼자서는 더 견딜 수가 없어, 이전에 신경정신과에 가본 적이 있는 지인들에게 도움을 구했다. 모두들 일단 네 상태를 알아본다 생각하라며 예약을 권했다.


심장이 비정상적으로 뛰면서 호흡이 힘들어지는 걸 보면 불안장애일까. 그렇다고 불안장애의 양상들을 찾아보면 꼭 맞아떨어지지는 않았다. 공사하는 아파트로 갈 때마다 심장이 조이는 증상 자체도 힘들었지만, 원인을 알 수 없다는 사실이 더 불안했다. 일주일 후 내원 예약을 잡고 기다리는 내내 너무 추워 자꾸만 이불 속으로 들어갔다.



겨울의 문을 활짝 열기


남편에게는 병원 예약했다는 말을 하지 못했다. 예약 전화를 거는 데만도 이미 내가 가진 용기를 다 끌어올려 쓴 탓이었다.


그러나 며칠 후 애써 묶어놨던 마음이 터졌다. 출근 준비를 하는 남편 뒷모습을 보면서 펑펑 눈물을 쏟았다. 무슨 일이냐는 질문에 대답할 수가 없었다. 공사장 가기 싫어, 오늘 하루만 오빠가 대신 가줘, 마음이 내 마음대로 안 돼, 나 좀 도와줘....... 그런 말들 중 한 마디도 꺼낼 수가 없었다. 옷자락을 붙들고 울기만 하는 내게 남편이 “회사 가지 말까?”라고 열 번은 물어본 끝에, 간신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날은 아무 데도 가지 않고 얼빠진 사람처럼 침대에 가만히 앉아 있었다.


처음 가본 신경정신과는 생각보다 편안한 분위기였다. 대기실에는 녹색 푹신한 벨벳 의자와 소파가 놓여 있고, 아담한 원목 책상이 놓여 있었다. 나와 비슷한 얼굴의 평범한 사람들이 순서를 기다리고 있었다. 의사를 만나기 전 해야 하는 검사지를 한가득 받아들었다. 이렇게 솔직하게 답해도 되나 싶은 불안을 떨치며, 검사 문항 하나하나에 펜을 들었다. 여기서조차 솔직하지 못하면 갈 곳이 없었다.


마침내 이름이 불렸다. 진료실 의자에 앉으니 두 손을 가만히 둘 수가 없었다. 동그란 안경을 쓴 의사가 추가적으로 몇 가지 질문을 던지는 내내, 손등을 비비고 손가락을 꼼지락거렸다. 의사는 상냥하지만 단호하게, 우울증으로 판단된다고 말했다. 내가 뭘 잘못 들었나? 불안장애가 아니냐고 되물으니, 검사지 결과를 보여주었다. 우울증에 불안 증상이 심하게 동반되었다고 보는 편이 맞다고 했다.


불안이 아니라 우울이라고? 내가 우울증에 걸릴 수 있다고? 우울증이라고 하면 일도 육아도 못하고 집에만 박혀 있어야 하는 거 아니야? 무기력하긴 해도 사람들 앞에서 강의도 하고 애들 밥도 차려줬는데. 자주 울긴 해도 어떻게든 또 몸을 일으켜 움직였는데. 이런 것도 우울증이라고 부른다고?


실감이 나지 않았다. 병원을 나와 남편에게 전화를 걸고도 “우울증이래.”이라는 진단명이 입에서 떨어지지 않아, “우울이 있대.”라고밖에 말하지 못했다. 우울증이라는 단어를 입에 올리는 데는 그로부터 몇 주가 걸렸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우울증이 아닐 이유는 없었다. 코로나 3년 차, 나의 일과 아이들의 학업과 건강 모두 내가 통제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섰다. 계획을 세우고 준비를 해도, 급작스런 코로나 확산에 무산되어 버리는 경우를 몇 번씩 겪었다. 때로는 더 열심히 일하며 더 열심히 아이들을 돌봤고, 때로는 그저 눕고만 싶었다. 불안을 상쇄하기 위해 극단으로 나를 소진하거나 혹은 극단으로 무기력하거나. 그 사이에서 나는 평소보다 더 빠르게 소모되었다.


어릴 적부터 생각했다. 나는 심장 옆에 슬픔과 불안의 주머니가 하나 더 달려 있는 게 분명하다고. 아무렇지 않은 일에 자꾸만 울고 싶어지고 걱정이 되어 찢어지는, 누구도 이해하지 못할 테니 보여주면 안 된다고 생각한, 그래서 누덕누덕 기워둔 주머니가.


그 주머니 때문에 봄바람에 나뭇잎이 흔들리는 걸 보다 울곤 했다. 세수를 하다가도 세면대가 추락해 발등을 찧을까봐 움찔거렸고, 언제나 일이 잘 되지 않을 가능성을 먼저 생각했다. 그래도 완전히 찢어지지는 않게 잘 데리고 살아왔다고 믿었는데....... 코로나와 이사와 공사 등 일련의 사건들에, 주머니가 찢어져 내 마음이 줄줄 새고 있었나 보다. 새는 마음이 눈앞에 보이자, 강이 얼려둔 울음처럼 커다란 울음이 터졌다.

진단을 받고 며칠이 지나니 차라리 마음이 나아졌다. 약의 효과도 조금 있었겠지만, 도무지 알 수 없던 내 마음에 이름이 붙여지니 내가 미웠던 마음이 조금 풀렸다. 이런 별것도 아닌 일을 왜 이렇게 어렵게 생각해, 지금이 그럴 때니, 왜 너만 별나게 구니- 자꾸만 채찍질하고 있던 내 손을 슬그머니 내려놓았다. 너 지금 겨울이래. 지금 필요한 건 따뜻한 이불과 새콤한 귤과 뜨뜻한 전기장판이라고.


힘껏 던져도 되지 않는 일이 있지만, 기다리면 되는 일도 있다. 겨울을 겪지 않으려 살얼음으로 버티는 것보다는, 깊은 겨울 속으로 훌쩍 들어가 꽁꽁 얼어보는 편이 낫다고. 그리고 얼음이 깨지는 봄이 오기를 조용히 가만히 기다리면 되는 일.


그렇게 나는 겨울의 문을 활짝 열었다. 두텁게 얼었다가 와르르 녹아보기 위하여. 녹는 자리에 울음이 가득하더라도 괜찮다. 강이 나와 함께 울어줄 테니까. 함께 울어줄 문장도 있으니, 더할 나위 없는 계절이었다.

내일은 눈이 녹을 것이다. 눈은 올 때는 소리가 없지만, 갈 때는 물소리를 얻는다.
그 소리에 나는 울음을 조금 보탤지도 모르겠다.
괜찮다. 내 마음은 온 우주보다 더 크고, 거기에는 울음의 자리도 넉넉하다.

- 한정원, <시와 산책> "온 우주보다 더 큰"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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