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마스 한 달 전이 되면 집 안의 공기가 살짝 달라진다. 나날이 차가워지기만 하는 공기에 난로 하나를 들인 듯 훈풍이 든다. 아이들이 크리스마스를 불러오기 때문이다.
작은 고양이 말랑이, 안고 잘 수 있는 커다란 인형, 색색의 인스박스......, 아이들은 고민에 고민을 거듭한 후, 산타할아버지에게 커다란 글씨로 받고 싶은 선물 목록이 담긴 편지를 쓴다. 그리고 베란다 바깥쪽 창문에 꼭꼭 붙여둔다. 행여나 떨어질까, 그래서 못 보실까 싶어 테이프로 몇 번을 둘러 붙인다. 비바람에도 눈보라에도 떨어지지 않을 만큼 꼭꼭.
편지는 크리스마스를 알리는 신호이다. 뒤이어 남편이 실외기실 창고에 있던 크리스마스 트리 상자를 꺼내온다. 넷이 거실 바닥에 앉아, 접혀 있던 크리스마스를 꺼내 굽어진 가지를 하나씩 편다. 잎사귀마다 붙은 하얀 눈 장식이 바닥 소복이 쌓인다. 앞뒤 좌우의 균형을 살피며 양말 모양, 별 모양, 공 모양의 오너먼트를 고르게 달아준다. 꼬여 있는 전선을 풀어 트리에 두르고 마지막으로 불을 켜면 끝.
빛나는 트리를 처음 보는 아이들처럼, 우리 모두에게서 절로 박수가 나온다. 하루하루 깊어질 어둠 같은 건 아랑곳 않고, 크리스마스는 뭐든 반짝거리게 하는 재주가 있다.
그래서 크리스마스 이브만큼은 특별하게 요리와 상차림을 한다. 생일이나 어린이날보다도 더 신경이 쓰인다. 간 소고기와 돼지고기에 양파와 채소들을 다져 넣고, 밀가루와 계란을 섞은 후 간을 맞춰 함박 스테이크를 만든다. 반죽을 만드는 건 내 몫, 동그랗게 빚는 건 아이들 몫. 아이들 볼처럼 동그란 함박스테이크가 쟁반 가득 쌓이면, 그날 먹을 분량만 남기고는 냉동실에 넣어둔다. 크리스마스를 기억하며 먹을 기쁜 날들이 많이 남아 있으니까.
찬장 안에 1년 내 잠들어 있던 디너 접시도 오랜만에 빛을 본다. 빨간색 + 흰색 조합 접시에 야채 가니쉬와 밥과 함박 스테이크를 올리고 소스를 얹는다. 과일과 디저트도 빠질 수 없지. 초도 켜고, 꽃병도 가운데에 놓고, 식탁 매트와 컵 매트와 커트러리까지 꺼내본다.
별 거 없는 부엌살림을 죄다 꺼내 생일상보다도 유난스레 챙기는 건, 추운 계절의 유일한 기쁨을 더 기쁘게 누리고 싶어서이다. 이제부터는 정말 온통 겨울뿐이니까. 긴긴 겨울을 위해서라도 즐거운 선물을 하나 더 만들어 못 도망가게 꽁꽁 묶어두자는 마음으로.
그러나 작년 서른아홉 살의 크리스마스 이브에는, 아무 것도 해먹지 못했다. 함박스테이크나 수프나 가니쉬 같은 건 없었다. 디너 접시나 가랜드도 없었다. 덩그러니 거실 구석에 놓인 트리와, 아이들이 준비한 산타 할아버지 간식만이 크리스마스를 증명할 뿐이었다.
그날은 이삿날 고작 이틀 전. 32살부터 39살까지 8년 가까이 산 집을 비워야 하는 날이 코앞이었다. 결혼 이후 가장 오래 살았던 집이기에 버릴 것이 산더미였다. 크리스마스답지 않게 우리는 100L짜리 쓰레기봉투와 채 정리하지 못한 물건과 버릴 책 사이에 둘러싸여 있었다. 장롱에 처박혀 있던 유축기 부품과 신생아 아기띠까지 나올 때에는, 내가 이토록 물건을 못 버리는 사람이었구나 싶어 헛웃음이 났다.
이 와중에도 아이들은 쓰레기 더미 사이로 산타 할아버지가 오실 수 있을까 걱정하다 잠이 들었다. 그 와중에도 나는 창고에 숨겨두었던 선물을 포장하여 트리 아래 놓아주었다. 장하다 엄마여. 이것으로 너는 올해 할 일을 다 마치었도다........ 라고 하기엔 하루 전에도 남아 있는 이 수많은 짐들과 쓰레기를 어쩌지. 나 정말 이사 갈 수 있을까.
이사 준비를 하느라, 여름과 가을 내내 나를 잡아먹던 무기력은 강제로 벗어둘 수밖에 없었다. 강의를 마치고 어떻게든 쉬며 무기력의 원인을 짚어보고 싶었는데, 이사에 발목이 잡혔다. 몸이 바쁘니 별 일 없는 듯 살았지만 간간히 나도 모르게 멍해지는 순간이 왔다. 지금 괜찮은 걸까, 마음은 어디 가고 손만 바쁘게 움직이고 있는 이런 나는.
그럴 때마다 이삿짐 정리하는 내 손 위로 겨울 냄새가 물씬 나는 햇살이 포개어졌다. 일손이라도 거들어 주겠다는 듯, 다 끝나간다는 듯, 상냥하게.
거실 가득 들어오던 겨울 햇살
이사라는 마침표
이사 다음날 둘째를 어린이집에 데려다주고 우리 집에 혼자 올라가보았다. 계약자가 이사 들어올 날보다 하루 일찍 짐을 뺀 거라, 아직은 우리 집이다. 겨울의 말간 햇살이 텅 빈 거실 끝까지 들어와 있었다. 8년 전 처음 사전 점검 왔을 때처럼 가구 하나 없는 집. 그 때는 힘이 세지기 시작한 초여름 해가 집에 슬쩍 발을 걸치고 있었다. 흠집이나 얼룩이나 기스 하나 없던, 단정하고 환했던 새 집이었다.
정리정돈 못하는 성정에 어린 아이들, 어수선한 살림 때문에 처음의 단정한 집은 금세 사라졌다. 파스텔톤 매트가 깔린 거실에는 늘 블럭이나 종이 쪼가리가 흩어져 있었다. 식탁에는 반찬과 아이들 놀잇감과 내 노트북이 어지러이 섞여 있었고, 화장실 욕조에는 물놀이 장난감이 가득이었다. 책장을 들이다 못해 세로로 꽂은 책 위에 가로로 꽂아 넣고 앞부분 남은 공간에까지 책을 쌓아두었다. 호리호리했던 집이 8년 동안 살림살이를 먹으며 퉁퉁 부어올랐다.
그래도 집을 생각하면 좋은 냄새가 났다. 초봄 저녁에 냉이를 듬뿍 넣고 끓이던 된장찌개 냄새는 어린 시절부터 불어오는 봄바람이었다. 겨울날에는 밖에서 눈사람 만들다 들어와 손이 꽁꽁 언 아이들을 위해 타주던 핫초코 냄새였다. 여름날에는 한 솥씩 삶아 먹던 노랗고 뜨거운 옥수수 냄새였다. 없는 솜씨로 썰고 삶고 굽고 지지고 볶아, 가족들을 먹이던 냄새가 빠지지 않던 집이었다.
무엇보다도 아이들 살 냄새 젖 냄새가 가득하던 집이었다. 젖 토한 비린내나 기저귀 갈던 똥 냄새도 났지만, 집은 그런 냄새마저 넉넉하게 품어주었다. 집은 책상 위에 올라가 작은 창으로 셋이 바라보던 무지개 냄새였고, 아빠와 괴물 놀이를 하던 땀 냄새였다. 주말 아침마다 아빠가 해주던 프렌치토스트 냄새였고, 엄마가 밤마다 읽어주던 먼 나라의 이야기 냄새였다.
이삿짐이 빠지고 트리만 남은 집
“엄마, 트리가 왜 이렇게 작아졌지?”
이 집에 올 때 3살이던 첫째는 초등학교 고학년을 바라보게 되었고, 뱃속에 있던 둘째는 학교 갈 날을 앞두고 있었다. 거실 한 쪽 벽에 비스듬히 기대어, 트리 혼자 서 있는 풍경을 바라보았다. 신혼 때부터 쓰던 트리인데, 어느새 첫째 키는 트리를 훌쩍 넘었고 둘째는 트리와 키가 비슷해졌다. 집이 낡고 우리가 늙어가는 동안, 아이들은 낡거나 늙는 대신 쑥쑥 자랐다.
그날 오후에는 남편이 부동산 일을 처리한 후 집에 들러, 빈 집에 홀로 남아 있던 트리와 오너먼트를 전부 버리기로 했었다. 10년 쓴 트리를 버리는 날이 오는구나. 추억으로 딱 하나만 가져가자 싶어 빨강 하양 체크무늬 양말 모양 오너먼트를 빼냈다. 이건 내가 초등학생 때부터 쓰던 거니까 간직해야지. 다음번 트리에도 잊지 않고 걸어줘야지.
아, 그런데 이 하얀 별은 애들이랑 처음으로 골라 산 건데....... 이 공 모양 오너먼트들은 내가 무지 예뻐하던 건데. 무지개색이 세트라 하나만 가져갈 순 없는데. 이 눈사람 그림은 애들이 직접 그려 코팅해 단 건데....... 그렇게 핑계를 찾아가며 하나씩 빼기 시작한 오너먼트가 결국 손 한 가득 걸렸다. 8년 간 함께 모은 크리스마스의 기억을 단번에 버리기가 어려웠다. 물건 잘 못 버리며 질척거리는 성정이 마지막까지 발동되었다.
프랭크 애시의 <안녕, 우리 집>은 손안에 쏙 들어오는 보드북이다. 이사가는 아기 곰이 무언가 빠졌다면서 온 집을 돌아다닌다. 그러면서 집안 구석구석에 안녕, 이라고 인사를 건넨다. 이제껏 함께 해온 시간, 공간, 사물과의 이별에 존중을 표할 줄 아는 아기곰. 삶에서 한 시절이 저물 때 안녕이라고 충분히 이야기할 시간이 필요하지.
나는, 한 시절을 함께 보낸 집에게 안녕이라고 잘 말했던가. 뚝딱거리고 쿵쾅거리던 나의 30대에게 안녕이라고 제대로 인사를 건넸던가. 잘 버리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단정하게 정리해두지도 못한 채, 서랍 속에 대충 쑤셔넣어둔 기억들이 얼마나 많았던가.
프랭크 애시, <안녕, 우리 집>
집을 마지막으로 둘러보며 벽에 남은 흔적들을 하나씩 쓰다듬었다. 여긴 가족사진 걸었던 자리, 여긴 애들 너댓살 때 했던 색칠공부 붙였던 자리, 여긴 상 탄 그림 걸었던 자리, 여긴 책가방 걸던 자리. 가구와 물건은 다 빠지고 텅 비었어도, 환영처럼 하나하나 다 보이는 풍경.
그런 것들까지 다 가지고 갈 수는 없어, 집 안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며 인사를 건넸다. 안녕, 나를 재워줬던 안방. 안녕, 아가들을 키워줬던 작은방. 안녕, 우리를 먹여주었던 부엌. 안녕....... 거실로 나와 보니 트리가 옆얼굴로 햇빛을 받으며 구부정하게 허리를 숙이고 있었다. 잘 살아, 나도 잘 살게. 나도 집에게 허리를 숙였다.
2021년 12월 26일, 마흔을 코앞에 두고 이사라는 마침표를 찍었다. 육아와 성장과 인정이 전부였던 시절을 지나, 너는 이제 새로운 시절로 건너가는 거야. 40대가 열릴 거고, 일도 자리를 잡아가고, 아이들은 많이 자랐으니까. 새 집에서는 모든 게 새로워질 거야.
하지만 모든 게 새로워지기에는 문을 나선 손이 아직 무거웠다. 채 버리지 못한 크리스마스 오너먼트들이, 미처 인사를 건네지 못하고 서랍 안에 박아둔 30대의 기억들 마냥 손가락 가득 짤랑거렸다. 어떤 것은 무기력, 어떤 것은 외로움, 어떤 것은 자괴감. 이삿짐을 푼 후에도 얼마나 많은 마음들을 또 버리고 정리해야 할까. 모든 것이 새로워진 그 때부터가 진짜 정리가 아닐까. 이사온지 반년이 지난 아직까지도 내가 그 시절을 계속 되살려 쓰고 있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