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들이 돌 무렵 돌 치레를 하더니, 나도 마흔 치레를 고약하게 했다. 서른아홉에서 마흔으로 넘어가는 길목이 남들도 이렇게 다 지독했나 싶다. 남들이 보기에는 별 일이 없었을 것이다. 멀쩡히 아이들 키우고 일하고 SNS에 글도 쓰며 살았으니까. 그 시절 힘들었다고 털어놓으면 주변에서 다들 “네가?”라며 의아하게 바라보았다.
육아 10년차, 프리랜서 5년차, 코로나 2년차. 서른아홉의 여름부터 내가 고장 나 있음을 조금씩 느꼈다. 아무것도 하기 싫다는 무기력감과 일어나지도 않은 일을 상상하는 불안에 시달리다 마흔의 첫 달, 우울증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그럴 수도 있겠구나 생각하니 차라리 마음이 편해졌다. 마흔의 첫 겨울은 혹독하게 찾아왔지만 얼음 밑에서 두꺼운 이불을 덮고 조용히 견디다보니, 얼음 깨지는 소리가 조금씩 들렸다.
3월에는 둘째가 어린이집을 졸업하고 학교에 갔다. 이제 한 아이는 고학년, 한 아이는 저학년, 내가 어떤 계절을 보내는지 상관없이 아이들은 어느새 둘 다 초등학생이 되었다. 1학년 입학 시즌 엄마는 정신이 없다. 아침밥 먹여 등교시키고 집에 두어 시간 있다 보면 어느새 데리러 갈 시간. 너무 빨리 돌아와 아쉬웠지만, 처음 학교생활하며 신난 아이의 이야기를 듣고 있자면 하나도 남김없이 꼭꼭 삼켜 듣고 싶었다.
아이 손을 잡고 학교를 오가는 사이 봄은 조금씩 왔다. 종알거리는 목소리 곁에서 내 몸도 봄처럼 조금씩 움트고 싶어졌다. 물을 많이 먹고 햇볕도 많이 먹고 연두색으로 순하고 연하게. 겨우내, 코로나 시절 내, 어른이 된 이래 딱딱하게 굳은 어깨와 등과 골반은 좀 내려놓고.
돈을 내고 운동을 제대로 해본 적이 없다. 에어로빅은 스무 살 때 딱 한 달, 요가와 헬스는 시도해봤지만 결국 두 달도 못 채우고 돈만 날렸다. 운동을 하면 상쾌해진다는데, 돈 내고 몸을 혹사시키는 기분이었다. 날린 돈이 아까워 혼자 할 수 있는 홈트나 달리기도 도전해봤다. 하지만 홈트는 매번 작심삼일이었고 달리기는 정말 재미가 없었다.
초등학교 옆에는 구에서 운영하는 생활체육관이 있다. 아이 둘 다 9시에 등교하면 바로 갈 수 있는 데다, 이사 온 집에서 엎어지면 코 닿을 거리였다. 구에서 운영하니 좀 저렴하지 않을까? 요가나 필라테스 말고 다른 운동도 있지 않을까?
체육시설에 들어갈 때는 언제나 쭈뼛거린다. 살면서 친해본 적이 없는 공간이라 그렇다. 카운터에 꾸벅 인사를 하고 시간표를 살펴보니 라인댄스가 눈에 띈다. 오, 라인댄스는 좀 재밌지 않을까? 20대 때 8개월이라는 짧은 시간이지만 살사 댄스를 배운 적이 있었다. 몇 곡 연달아 추면 숨차고 힘들지만, 음악도 좋고 재미있어서 내 인생에서는 가장 길게 배운 운동이었다.
이건 도망가지 않고 해볼 수 있을 것 같은데. 가격도 싸네, 일주일에 3번인데 월 3만원이라니.
“저, 라인댄스 수업 신청하려고 하는데요......”
“아, 라인댄스 수업 들으시는 분들은 연령대가 너무 높아요.”
앗, 처음부터 허들이다. 생각지 못한 나이 공격.
“아....... 그래요? 그럼 어쩌지......”
“줌바나 에어로빅 해보세요. 엄청 재밌어 하세요.”
“줌바요....... 재밌을 거 같은데 시간이 안 맞아서요. 그땐 애들이 오거든요.”
“그러면 에어로빅 재밌어요. 춤도 배우고 운동 많이 돼요.”
에어로빅이라니. 필라테스, 요가, 줌바하면우아하거나 활력 있거나 트렌디한 느낌이 있지만 에어로빅은 좀, 옛스럽지 않나? 약간 극성스럽고 소위 아줌마스럽게 느껴져 영 끌리지 않았다. 생각해보면 애 엄마 된지가 10년인데 아직도 이런 생각을 한다는 게 우습다. 아줌마면서 아줌마스러운 건 싫다니! 미디어에서 에어로빅이라는 종목을 우스꽝스럽고 우악스럽게 소비한 적이 많아 더 그렇게 느끼는 것 같다.
무한도전 에어로빅 특집 중
사실 스무 살 때 에어로빅을 배우러 가본 적이 딱 한 번 있다. 신나는 걸 배우고 싶었는데, 마침 집 앞 스포츠센터에 에어로빅 수업이 있길래 쭈뼛거리며 가보았다. 수업 자체는 재미있었다. 하지만 한 달 후 재수강을 하지는 못했다. 엄마보다도 연세가 많은 분들이 대부분이었고, 엄청난 기합 소리에 기가 팍 눌렸다.
무엇보다도 어머님들의 그 화려한 에어로빅 복장 앞에서 눈 둘 곳을 찾을 수가 없었다. 몸에 빈틈없이 딱 달라붙는 쫄쫄이 옷은 형광 연두색, 파란색, 핑크색의 알록달록 조합이 압권이었다. 화룡점정으로 머리띠까지. 나 혼자 티셔츠에 헐렁한 바지를 입고 맨 뒷줄에서 파닥거리다 결국 그만두었다.
20년 전의 기억이 떠올라 선택을 못하고 망설이고 있으니, 한 달만 우선 해보라고 재차 권한다. 3개월 이상이면 10% 할인도 해준단다. 20일에 4만 5천원이라니 정말 싸긴 싸네. 필라테스는 그룹 수업 암만 할인받아도 월 15만원이던데. 아, 그런데 에어로빅을 하려던 건 아닌데. 옛날에 에어로빅을 딱 한 달 가본 적이 있는데.......
그래 정 안 되면 5만원 버리는 셈 치자. 아무 것도 안 해보는 것보다는 나을테니까. 곧 봄이 오니까.
그렇게 나는 어쩌다, 정말 어쩌다 에어로빅 수강생이 되었다. 3일 후면 에어로빅을 배우러 가다니. 설레서 두근두근. 떨려서 두근두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