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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개향 Sep 26. 2022

(2) 대망의 첫 날

하다 보면 된다

막상 에어로빅을 하겠다고 결심하고 나니 입을 옷이 고민이었다. 설마 그 옛날 보았던 에어로빅 복장을 갖춰야 하나? 그건 도저히 못 입을 거 같은데......


“그런데 옷은 뭘 입으면 되나요?”

"편하게 입고 오시면 돼요. 레깅스에 티 입고 오시는 분도 있고, 편하게 트레이닝복으로 입는 분도 있어요.”


휴우. 다행히 형형색색의 타이즈를 살 필요는 없는 모양이다. 문제는 집에 운동복이 한 벌도 없었다. 운동을 제대로 해본 적이 있어야지. 가뭄에 콩 나듯 헬스장 가거나 달리기 할 때는, 늘어나서 잘 안 입는 면 티셔츠에 반바지를 주워 입고 갔다. 사람은 좋아하지 않는 일에는 돈을 잘 쓰지 않는다. 운동복에 돈을 왜 써, 아깝게? 그러니 브랜드가 뭐가 있는지, 어떤 종류를 사야 하는지, 감이 없었다.


그래도 처음 가는데 너무 추레하게 갈 수는 없지. 게다가 동네인데 오며가며 아는 사람을 만날 수도 있잖아. 난생 처음 근처 쇼핑몰로 가 운동복을 골라보기로 했다. 유명한 브랜드들에 들어가 요가복과 트레이닝복을 살펴보니 누가 봐도 "나 운동 오래 했어요. 운동 잘 해요." 느낌이었다. 운동 초짜인 내 몸에 걸치기에는 너무 고수의 옷 같아 보였다. 게다가 가격도 만만치 않았다.


첫 운동복을 사는 거면 돈 좀 써도 되는데. 그 와중에도 아줌마 기질을 못 버리고 운동복 아울렛에 들어갔다. 매대에 걸려 있는 옷 중에서 고르고 골라 엉덩이를 가리는 보라색 반팔티 하나와 진회색 레깅스 하나를 샀다. 이 정도면 적어도 챙피하지는 않겠지. 일단은 이렇게 입고 가서 분위기를 좀 살펴보자.  

    



드디어 4월의 첫날. 한주의 마무리인 금요일이었다. 폭풍 같던 3월이 지나가고 아이 둘의 시간표도 제법 정리가 되었다. 보라색 반팔티와 진회색 레깅스에 검은 바람막이를 둘러 입은 후, 8시 45분 아이와 함께 집을 나섰다. 학교 후문에서 아이에게 커다랗게 인사를 해준 후, 30초 거리 체육관으로 걸어갔다.


그 짧은 30초 사이에도 별의별 생각이 다 들었다. 오늘 하루 무사히 넘길 수 있을까. 하루만에 그만 두는 건 아닌가. 아는 사람이 있으면 어쩌지.     

    

눈도 못 마주친 채 꾸벅꾸벅 소리 없는 인사만 하다가 사람들을 따라 우르르 체육관으로 들어갔다. 자리가 다 정해져 있는듯 착착 자기 자리를 찾아가길래, 맨 뒷줄 문 가까운 곳에 다. 차라리 뭐라도 빨리 시작하면 겠는데, 나만 '노바디' 인 어색함 속에 서 있자니 어쩔 줄을 모르겠다. 아무 노래라도 틀어주세요 제발.......      


쿵딱쿵딱 리듬이 울려퍼지면서 마침내 몸풀기가 시작되었다. 목부터 까딱까딱, 팔 돌리기, 옆구리 늘리기, 허리 숙이기. 스트레칭 동작이 쭉 이어졌다. 으악, 허리를 늘리고 팔다리를 늘리는데 굳어있던 근육들이 놀라서 사방팔방으로 비명을 지른다. 마스크 속에서 으아아아 소리가 절로 흘러나왔다. 큰 소리로 울려 퍼지는 음악이 아니었으면, 다들 내 비명 소리를 들었을 것이다.


스트레칭 뒤로 쉴 새 없이 음악이 몰아쳤다. 원더걸스, 영탁, 클론, 블랙핑크, 씨앤블루, 장윤정- 세대도 장르도 완전 짬뽕이다. 에어로빅과 방송 댄스 중간쯤의 동작이 이어졌다. 새 수강생이 왔다고 인사를 시키거나 찬찬히 동작을 알려주거나 하는 분위기는 아니었다. 그냥 앞에 사람 보고 알아서 눈치껏 따라해야 한다.


문제는 알아서 따라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다. 오른쪽으로 가길래 한 박자 늦게 오른쪽으로 쫓아면 어느새 왼쪽으로 가고 있고, 팔 동작 따라하고 있는데 갑자기 웨이브가 들어간다. 팔만 비슷하게 허우적거리며 다른 방향으로 오다가다. 거울 속 나 혼자 우당탕탕 소리가 나는 것 같다.


그래도 춤(이라고 할 수 없는 몇 개의 동작)을 따라 추는 건 나았다. 일단 신이 나니까. 하지만 수업 마지막에 선생님은 큰 소리로 외치셨다.


“오늘은 스쿼트 할 거예요!”


스쿼트 몇 개나? 20개? 30개? 스쿼트도 숫자를 세며 하는 게 아니다. 무조건 제일 큰 음량의 음악에 맞춰 한다. 다리를 벌리고 엉덩이를 내렸다가 그대로 올라오면서 하나. 다시 내려갔다 올라오면서 둘. 열다섯이 넘어가니 엉덩이가 뻐근하고 허벅지가 불타오르기 시작하는데 노래는 끝날 줄을 모른다. 어, 언제까지 계속 해야 하나요? 앞줄의 수강생들은 흔들림이 없다. 리듬에 맞춰 꿋꿋하게 다시 하나, 둘, 셋!


1절이 끝나고 나서야 선생님이 잠깐 쉬는 시간을 주었다. 기둥에 기대어 헉헉거리는 시간도 잠시, 2절이 시작하자 바로 스쿼트에 들어간다. 설마 노래 한곡을 완주하는 거야? 하루에 스쿼트 30개 이상은 사기 아닌가? 게다가 난 만년 근육 부족에 오늘이 에어로빅 수강 첫날이라고!

헉헉 숨을 몰아쉬며 기진맥진한 나와 달리, 앞줄 수강생들은 힘들어도 개운한 표정이다. 내일은 계단 못 내려가겠구나. 움직이지 않는 허벅지를 끌고 나와 로비 의자에 흐물흐물 녹아내려 있는 내게, 50대로 보이는 한 분이 말을 걸어왔다.      

   

“힘들어요?”

“네, 죽는 줄 알았어요.”

“오늘 처음 왔지? 처음이라 그래. 하다 보면 다 돼요.”

“다 돼요? 정말요?”

“그럼.”      


다 된다. 그 말이 구원처럼 들려왔다. 그래, 하다 보면 다 되는 그 세계 나도 한번 맛보고 싶다. 멈추지 않고 하다 보면 언젠가는 스쿼트 한 곡 완주도 되겠지. 엉망진창 동작도 다 맞는 날이 오겠지. 찐하게, 신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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