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방공책으로 들어가는 길은 꼭 앨리스가 찾은 토끼굴 같았다 어릴 적 수원에서 살던 아파트 상가로 들어가는 기분이었다.(그 상가는 나와 동갑이었지.)
여름에도 찬기가 올라오던 돌계단과 녹슨 철창, 군데군데 벗겨진 벽을 지나자 아기자기 엽서가 붙어 있는 미닫이 문이 보였다. 드르륵 소리 너머 모습을 드러낸 공간에는 책 요정들이 옹기종기 모여 앉아 있을 것만 같았다.
층고가 높고 뷰가 근사한 곳에서도 나오지 않던 감탄사가 흘러나왔다. 사물들이 저마다의 주파수로 수군거리다가도, 내가 근처에 가면 가을 풀벌레처럼 입을 딱 다물었다. 그게 재밌어서 책장과 소품 사이를 한참 구경하며 다녔다. 예쁘기만 한 게 아니라 온도가 잘 맞는 곳이었다. 온도가 맞는 공간은 귀하다.
창문을 두드리는 빗소리, 커피 내리는 소리, 기타 소리를 들으며 좋아하는 사람과 사는 얘기를 했다. 완전하지 않은 사람이 완전하지 않은 관계를 이루며 살지만, 또 그런 대로 절뚝대며 살아가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나는 요즘 그렇게 생각한다.
그러니 당신도 나도 이만하면 다 괜찮다고 생각하며 다시 지하철에 올랐다. 그 힘으로 또 괜찮은 내일을 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