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 둘째는 조용한 아이였다. 꽤 오랫동안 말을 하지 못했다. 그래서 눈을 깜빡이며 표정으로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곤 했다. 생각해 보면 귀여움이 폭발하던 시기였던 것 같다. 다시 돌아간다면 아이를 더 많이 안아주고, 사랑으로 품어줄 텐데. 그때의 나는 그러지 못했다. 기다려주지 못했다. 자신만의 속도로 자라고 있던 아이를 다그치기 바빴다.
불편하다는 배변 팬티를 억지로 입혔고, 아이의 다급한 요청에도 알아듣지 못한 척 돌아보지 않았다. 무슨 말이라도 입 밖으로 내뱉을 때까지 무작정 기다렸다. 그게 둘째를 위한 일이라 믿었다. 어린아이라도 각자의 스타일과 템포가 있는 법인데, 미련했던 그때의 나는 그걸 간과해 버렸다. 아이를 둘이나 키워봤건만 여전히 나는 초보 엄마였던 걸까.
둘째는 5살에 어린이집을 옮겼다. 전에 다니던 어린이집이 만 2세 반까지 밖에 운영하지 않았기에 했던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예상과는 달리, 어린이집에 잘 적응해 나갔다. 친구들과 원활하게 소통하며 함께 놀이하지는 못했지만, 그들을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즐거움이 가득했던 모양이었다. 새롭게 옮긴 어린이집이 썩 마음에 든다고 했다.
그러나 담임 선생님 생각은 달랐다. 부끄러움을 많이 타는 탓에 매사에 소극적이라고 했다. 그래서 주목을 받을까 봐 감정들을 가슴에 꾹꾹 눌러 담았고, 억울한 일이 있어도 펑펑 울지도 못하는 것 같다며 안타까워했다. 친구들과의 놀이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의사소통이 원만하게 이루어지지 않는 이유로 친구들이 답답해한다고 했다. 어른에게도 타인을 배려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닐 테지. 하물며 그들은 한없이 어리기만 한 5살이었으니, 이해를 바랄 수는 없었다.
어린이집 체육 대회를 며칠 앞둔 어느 날이었다. 남편과 나는 굳은 결의를 다졌다. 활동적이고 적극적인 모습을 아이에게 보여주자고. 그런 우리를 보면 둘째도 느끼는 게 분명 있을 거라고, 변화가 있을 거라 생각했다.
체육대회 당일, 아이의 손을 꼭 잡고 운동장에 들어섰다. 햇살이 뜨겁게 내리쬐고 있었지만 더운 줄도 몰랐다. 아마도 남편과 나의 열정이 더 뜨겁게 불타올랐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학부모를 필요로 하는 종목이 있다면 무작정 손을 들고 참여했다. 학창 시절 체육부장을 놓치지 않고 역임했던 나였던지라, 대표로 나서서 무언가를 하는 건 크게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다만 체력이 받쳐주지를 못했다. 마음과는 달리 손과 발이 날렵하게 움직이지 않았고, 따사로운 햇빛 탓에 앞도 잘 보이지 않았다.
계주 선수로 달리고 있을 때였다. 트랙을 제대로 보지 못하고 코스를 이탈, 역전을 기회를 날려버렸다. 응원석에서 짧은 탄식의 소리가 들려왔다. 그럼에도 정말 다행스러웠던 건, 아이가 그런 나를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었다는 점이었다. 주어진 상황에 최선을 다하는,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엄마의 모습을.
체육대회의 꽃, 댄스 대회가 열렸다. 남편은 무슨 배짱이었는지 무대 중앙으로 저벅저벅 걸어갔다. 평소의 수줍은 모습은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 웃음 대신 당당하고 자신감 있는 얼굴로 운동장 한가운데에 섰다. 그 모습은 ⟪삼국지연의⟫에서의 장비를 떠올리게 했다. 큰 키에 풍채까지 좋은 장비 말이다. 당연하게도 이 전투에서 승리를 거두겠다는 비장함이 느껴졌다.
음악이 나오기 시작했다. 남편은 운동장을 넓게 써가며 무대를 제대로 장악해 버렸다. 결혼 전에 비해 20kg 이상 불어버린 몸이었지만, 골반과 허리가 제법 유연하게 돌아갔다. 아이들은 들어본 적 없을 90년대 노래에 맞춰 박수를 쳤고, 어른들은 큰 소리로 환호하며 응원을 보탰다.
그날의 댄스 대회에서 1등을 차지한 건 '승기 아빠'였다. 사회자가 1등 상을 줘도 되겠냐고 물었다. 많은 학부모들이 끄덕이며 뜨거운 박수를 보내왔다. 큰 용기를 내어준 남편이 참으로 고마웠다.
체육대회가 끝나고 그날의 MVP를 뽑는 시간. 난 설마 하면서도 내심 기대했다. 호명을 위해 시간을 끄는 사회자, 그리고 떨리는 순간이 이어졌다. 결국 남편에게 MVP 상이 돌아갔다. 우리 가족은 다양한 종목들을 참여하며 치약, 칫솔, 비누 등 생필품을 받았고, 남편 덕에 와인까지 얻을 수 있었다. 그날의 선물 덕에 두 손이 가득했다.
주차장으로 돌아가는 길, 선생님들이 우리 옆을 지나며 큰 소리로 외쳤다.
“승기 아빠, 진짜 최고!”
“어쩜 춤을 그렇게 잘 추세요?"
"승기는 좋겠다. 이렇게 멋진 아빠가 있어서."
선생님들은 둘째 앞에서 남편을 한껏 치켜세워주었다. 아마도 둘째의 성격을 알고 있었기에, 아이 앞에서 더 호들갑을 떨며 칭찬을 건넸을지도 모르겠다. 그런 선생님들 옆에서 둘째는 히죽 웃고 있었다. 부끄러워하면서도 기쁨의 감정을 솔직하게 드러내는 그런 표정이었다. 그 모습을 보며 나도 따라 웃었다. 방긋이.
'아이는 부모의 거울'이라는 말이 있다. 아이를 향해 한 번 웃어주면, 아이는 두 번 웃어준다. 부모가 용기를 내면, 아이는 또 한 발짝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부모가 길잡이 역할을 자처해야만 미성숙한 아이들이 올곧게 자라날 수 있다.
부모가 된다는 건, 크게 거창할 일은 아니다. 부모이기에 무언가를 대단하게 해내야 되는 건 아닐 것이다. 진심을 다해, 최선을 다해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준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하지 않을까. 넘어지기도 하고, 실패도 해보고, 좌절도 경험하며 다시 일어서는 모습을 보여주는 일. 그런 부모의 뒷모습을 따라 아이는 자란다.
잠시 눈을 감고, 스스로에게 물었다. 오늘의 나는 아이 앞에서 어떤 엄마였던가. 퇴근 후 잠깐의 만남 동안 어떤 표정을 지었고, 얼마만큼의 스킨십을 하였으며, 무슨 말을 건넸었는지를. 지난 기억들을 끄집어내며 오늘의 나를 차분히 되짚어 본다.
아이들에게 어떤 모습으로 기억되고 싶은 걸까. 어떤 엄마로 각인되고 싶은 걸까. 완벽할 순 없겠지만, 햇살 같은 사람이고 싶다고 생각해 봤다. 조급해하며 다그치기보다, 싱긋 웃으며 그저 옆에 있어주는 사람. 말하지 않아도 마음으로 이해하고 안아주는 사람. 여전히 서툴고 실수 투성이지만, 그마저도 진심으로 느낄 수 있는 그런 사람이자 엄마로 남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