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빛과 그림자

칭찬의 역설

by 안개별


아마도 아이들에게로 향하던 나의 과한 리액션은, 유년기 시절 갖지 못했던 인정에 대한 로망과 아쉬움 탓이 아니었을까. 그래서인지 그들의 작은 노력의 과정과 시원치 못한 결과 앞에서도 나는 쉽게 기뻐하고, 행복해하는 엄마였다. 오버스럽다는 주변의 핀잔과 걱정에도 괜찮다며 웃으며 넘겼다. 그것은 나의 육아 신념이자 사랑의 방식이었다. 그런 점들이 아이들에게 높은 자존감을 부여했고, 도전을 두려워하지 않는 아이들로 자랄 수 있는 토대가 되었다.

잘못한 것에 그렇다고 무조건적인 칭찬만 늘어놓는 엄마는 아니었다. 잘못한 일에 대해서는 따끔하게 혼을 낼 줄 아는 엄마였다. 그러니 내 리액션은 그저 달콤한 위로가 아닌 마음을 다해 내비치는 진정성 있는 응원이었고, 아이들도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


우리 집 첫째는 8살 여름방학부터 동시를 쓰기 시작했다. 단 한 번도 글쓰기를 가르쳐 준 적이 없는데도, 제법 괜찮은 시를 써 내려갔다. 수없이 많은 책을 읽으며 머리와 마음에 새겨둔 문장들이 자신만의 언어로 표현된 것이 아닐까 싶었다.

이후로도 첫째는 문예 창작 활동을 계속 이어갔다. 동시뿐 아니라 동화, 에세이, 기행문, 독서감상문 등을 꾸준히 써왔다. 작품 활동이라기보다 감각을 기르고 기본기를 다지는 연습이랄까. 마음에 와닿는 동시와 노래 가사를 필사하고, 어린이들을 위한 작법서를 사서 읽고 따라 쓰며 공부하기도 했다.


그녀의 모든 작품들이 높은 완성도를 지녔던 건 아니었지만, 꽤 근사한 작품이 나올 때가 있다. 그럴 때면 엄마표 칭찬 폭격이 시작된다.

"어떻게 이런 생각을 했어?"

"반전이 기가 막혀!"

"이건 어른들도 쓰기 힘든 표현인데?"

그럼 아이는 어깨를 으쓱이며 말하곤 했다.

"내 머릿속에는 슈퍼컴퓨터가 있어. 거기서 단어와 문장들을 꺼내서 잘 조합하는 거야."


목욕 후 아이들을 먼저 내보낸 뒤, 뒷정리를 마치고 거실로 나왔다. 책상에 노트 하나가 올려져 있었다. 무심코 펼쳐 한 장씩 넘겨보았다. 그곳엔 사람, 괴물, 귀신 그림이 있었다. 짬날 때마다 끄적였던 상상의 파편들이었다. 그리고 가장 마지막 장에는 동시가 하나 쓰여 있었다. 섬세한 표현과 잘 맞는 라임, 무엇보다 아이가 전하고자 한 메시지가 분명히 느껴졌다. 동요로 만들어도 좋을 만큼 완성도 높은 작품이었다. 아이가 썼다고 믿기 힘들만큼 생경한 느낌이 들었다. 어디서 런 영감을 받았느냐고 물었다. 아이는 잠시 우물쭈물하더니, 학교 가는 길에 마주한 담쟁이덩굴에서 시상을 떠올렸다고 했다.

가슴이 벅차올랐다. 좋은 시 덕분이 아니라, 세상을 바라보는 아이의 시선과 생각을 엿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등하굣길에 곤충을 보며, 나무를 보며, 사람들을 바라보며 떠오르는 생각의 조각들을 놓치지 않고, 자신만의 언어로 표현해 둔 것에 큰 감동을 받았다. 아이를 꼭 껴안았다. 세상에서 가장 포근하고 따스한 이불이 되어 첫째의 마음까지 감싸 안았다. 그리고 작게 속삭였다. 네가 정말 자랑스럽다고.


그로부터 이틀쯤 지났을 무렵, 이제 막 퇴근하여 집에 도착한 내 손을 붙들고 첫째는 자신의 방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우린 서로를 마주 보고 앉았다. 금방이라도 넘쳐흐를 듯한 눈물이 그렁그렁 고여있었다. 학교에서 무슨 일이라도 있었나 싶어 걱정이 앞섰다. 심장이 작은 새라도 된 듯 파닥거리기 시작했다. 어떤 일이라도 괜찮으니 얘기해 보라고 했다. 엄만 언제나 네 편이라는 말을 덧붙이며.

"엄마, 미안해. 사실 그 시, 내가 쓴 게 아니야."

아이의 입에선 생각지도 못했던 말이 불쑥 튀어나왔다. 실은 얼마 전 도서관에서 빌려온 책을 읽다가 마음에 드는 시가 있어 이를 옮겨 적었다고 했다. 엄마를 속일 생각은 아니었는데, 너무나 기뻐하는 엄마의 모습에 차마 사실을 말하지 못했다고 했다.

마음 한편이 찌르르하게 일렁이었지만. 이내 곧 중심을 잡았다. 그리고 처음의 실수를 너그러이 감싸주기로 했다. 그리고 약속했다. 다시는 다른 사람의 작품을 자신의 것처럼 포장하지 않기로. 더 괜찮은 사람이 될 수 있는 기회를 자신에게서 앗아가는, 그런 바보 같은 행동은 하지 않기로 했다.


말은 약이 될 수도, 독이 될 수도 있다.
그것은 누군가를 치유할 수도, 죽일 수도 있다.
-
이사엘모어 아이비버
(Israelmore Ayivor)


그날 저녁, 책을 넘기는 손은 분주했지만 책 내용은 하나도 머리에 들어오지 않았다. 아이의 거짓말이 어쩌면 나로부터 비롯된 것만 같아 마음이 무거웠다. 아이의 거짓말이 마치 내가 만들어 낸 결과인 것 같았다. 첫째에게 다신 그러지 말라고 단호하게 얘기했지만, 그 말은 어쩌면 나 자신을 향한 호통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칭찬은 언제나 달콤하다. 언제 받아먹어도 질리지가 않는다. 입바른 소리라는 걸 알면서도, 괜스레 기분이 좋아지곤 한다. 상황과 이유를 불문하고 언제 들어도 좋은 게 칭찬 아니겠는가. 돈 드는 것도 아닌 것이 행복 도파민을 마구 방출하니, 이건 뭐... 가성비도 참 좋다는 생각이 든다. 아이 역시도 그랬을 터였다. 칭찬이라는 달콤한 그 빛을 온전히 받아내고자, 드리워진 그림자를 감추고 거짓말을 내던졌던 게 아니었을까.


가나 출신의 리더십 강연자이자 작가인 이사엘모어 아이비버는 "말은 약이 될 수도, 독이 될 수도 있다. 그건 누군가를 치유하거나, 죽일 수도 있다."라고 말했다. 칭찬은 어쩌면 양날의 검과 같을지도 모르겠다. 적절하게 사용하면 아이를 성장시키는 따사로운 빛이 되겠지만, 지나치게 쏟아내면 아이의 마음밭이 바짝 마르고 쩍쩍 갈라질지도.

그날 이후, 아이에게 향하는 칭찬의 무게와 부피를 먼저 떠올려보는 버릇이 생겼다. 입 밖으로 꺼내기 전에 그로 인한 파급력을 상상해 보는 일이라고나 할까. 내가 건네는 말이 아이를 올곧게 품을 수 있도록, 가감 없이 있는 그대로를 비출 수 있도록, 서두르지 않고 신중하게 말하는 습관 말이다.


첫째는 여전히 동시를 쓰고 있다. 서투르더라도 정직할 수 있는, 특별한 기교는 없지만 순수함을 담아 노트에 한 자 한 자 꾹꾹 눌러쓴다. 그리고 나는 그런 아이의 마음을 읽고 느끼며 가슴이 뭉클해진다. 매일 커져가는 키만큼 생각의 크기도 자라나고 있었구나.

진정한 칭찬은 성과나 결과가 아니라, 아이의 용기를 향해 뻗어나가야 한다. 그리고 그 말이 빛이 되길 바란다면 그림자까지도 따뜻하게 품어줄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을. 나는 여전히 나아가는 중이다. 칭찬의 빛과 그림자 사이에서 썩 괜찮은 엄마가 되기 위해. 오늘도 한 걸음.


첫째의 동시 ; 동시 대회 수상작


keyword
목요일 연재
이전 09화부모가 된다는 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