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다 보면 이따금씩 위로가 필요한 순간들이 있다. 고백조차 하지 못하고 첫사랑이 끝나버렸을 때, 나 자신만큼이나 믿었던 친구에게서 배신을 당했을 때, 투입했던 시간만큼 노력의 결과를 얻지 못했을 때. 홀로 견디고 감당하기엔 너무도 큰 시련이다. 그럴 땐 누군가의 위로와 응원이 절실하다.
어디 한 군데 다친 것도 아닌데, 마음이 긁히기라도 한 것처럼 저릿하게 아파온다. 그럼에도 아무 일 없는 얼굴로 살아가지만, 가슴속 어딘가는 여전히 벌겋게 젖어 있다.
깊은 상처는 쉽게 낫질 않는 법이다. 딱지가 앉고, 또 몇 번을 건드리지 않은 뒤에야 아주 느린 속도로 살이 오른다. 마음도 그렇게 천천히 아문다. 그렇기에 회복의 속도를 끌어올리기보다는 기다림을 택하는 수밖에.
친구 셋이 카페에 모였다. 셋은 둘도 없는 단짝이다. 무려 이십 년, 두 번의 강산이 바뀌는 동안 그들의 우정만큼은 한결같았다.
그중 누군가가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요즘 왜 이렇게 힘든 줄 모르겠어."
그러자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쭈욱 들이키던 친구가 빨대에서 입을 떼며 이렇게 말한다.
"너 그거 운동 부족이야. 나이 들잖아? 운동해야 돼."
그 말에 반박하듯 바로 옆자리에 있던 친구가 열을 올리며 끼어든다.
"어휴, 100% 수면 부족이야. 넌 술 좀 줄이고, 일찍 자. 그럼 다 해결돼."
이토록 가감 없이 사실만을 내던져 주는 친구가 있다는 건, 어쩌면 행복한 일일지도 모른다.
물론 다 맞는 말이다. 그들의 대답에는 틀린 점이 하나 없다. 보다 건강하게 살아가기 위해 운동이 필요하고, 술을 줄여 잠이라도 푹 자면 말갛게 갠 정신으로 하루를 보낼 수 있을 테니 말이다. 힘들어하는 친구를 위로하고자 최선을 다해 건넨 말이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말은 의도와는 전혀 다른 곳으로 흘러간다. 힘들다는 말을 꺼낸 친구는 대단한 솔루션을 기대해서가 아니라, 그저 버거운 마음을 어디에든, 누구에게든 잠시 내려놓고 싶었던 걸지도 모른다. 확신컨대, 화두를 던진 친구가 듣고 싶었던 건 '방법'이 아니라 '이해'였을 것이다.
"그랬구나. 요즘 네가 기운이 없더라."
"그럴 수 있어. 매 시간을 분 단위로 쪼개 가며 네가 얼마나 열심히 살았는데. 번아웃이 진작 오고도 남았어야지."
이 말들은 맞닥뜨린 문제를 해결하지도, 그럴싸한 해결 방법을 제시하지도 못한다. 그러나 신기하게도 마음이 차분해진다. 힘들었던 순간들이 잠시 잊혀지고, 가슴을 짓누르던 묵직한 통증과 무게로부터 해방됨을 느낀다.
공감의 언어는 그렇다. 그다지 특별할 것 없는 말이지만, 그 말이 가닿는 순간 마음의 온도가 완전히 바뀐다. 차갑고 딱딱한 마음을 풀어주고, 혼자라고 믿었던 시간을 함께하는 순간으로 바꾸어 놓는다.
말 한마디가 사람을 죽일 수도, 살릴 수도 있다는 사실을 기억했으면 좋겠다. 무심코 던진 말 하나가 누군가를 완전히 무너뜨릴 수도, 반대로 온전히 일으켜 세울 수도 있을 테니까.
"속상했겠다."
"혼자서 많이 애썼지."
"난 언제나 네 편이라는 거 잊지 마."
이 말들에 무언가를 바꿀 만큼 대단한 힘이 담겨있지는 않을지라도, 최소한 지금의 시간을 홀로 건너고 있지는 않다는 걸 분명하게 알려줄 수는 있을지도 모른다.
너무도 자주 아픈 우리에게,
오늘만큼은 조금 더 다정해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