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에 실패하지 않는 사람도 있을까

by 안개별


사랑에 실패하지 않는 사람도 있을까. 단 한 번의 상처 없이 사랑을 온전히 주고받으며 행복한 순간들로 가득 채워내는, 그런 사랑이 과연 존재할 수 있을까.


사랑만 하기에도 부족한 시간이다. 평균 수명이 계속해서 높아지고 있다고는 하지만, 어쩌면 태어남과 동시에 죽는 날이 결정되어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즉 어제보다 오늘, 오늘보다 내일, 서로가 서로에게 마음으로 다가갈 수 있는 날들이 줄어든다는 의미일 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많은 순간들을 그저 의미 없이 흘려보내곤 한다. 상처받지 않기 위해 서로를 헐뜯고, 갉아먹고, 짓밟고, 할퀴어가며 각자의 유한한 시간을 허비해 버리고 만다. 상처받지 않고자 했던 행동들이 결국 자신을 찌르게 된다는 걸 알지 못한 채.



그녀의 말은 무척이나 뜻밖이었다.

"난 너무 힘들고 불행한데, 넌 그저 잘한다는 칭찬만 들으며 행복하게 웃고 있잖아. 그게 너무 미웠어. 정말이지 꼴 보기가 싫었어."


원 팀은 아니었지만 은 부서였고, 자리도 근처였기에 급속도로 친해졌다. 살아온 과정도, 현재의 환경도 매우 달랐지만 좋아하는 것들이 비슷했기에 공감대를 차곡차곡 쌓아갈 수 있었다. 대화를 하면 할수록 좋은 사람이라 느껴졌다. 그랬기에 진심을 다했고, 그 진심은 마음의 문을 활짝 열게 만들었다.

우린 둘도 없는 단짝이 되었다. 함께 있을 때 더 크게 웃을 수 있었고, 힘들 때 서로의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주었다. 그렇게 오늘보다 찬란할 내일을 꿈꾸었다.


그랬던 우리였지만 그녀는 하루아침에 얼굴빛을 싹 거둬들였다. 웃음기 하나 없는 표정과 드리운 그늘만으로도 알아차릴 수 있었다. 내게 화가 잔뜩 나 있다는 걸.

아무리 생각해 봐도 내가 잘못한 건 없었다. 차라리 속 시원하게 말해주면 좋을 텐데. 그녀는 입가에 지퍼라도 채운 듯, 아무런 말도 입 밖으로 꺼내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을 계속 두드렸다. 서운하고 속상했지만 어떤 이유로든 나로 인해 상처받았을 그녀 입장을 먼저 생각하기로 했다. 매일 아침 건네는 인사에 고개를 휙 돌려버렸고, 점심 먹으러 가자는 말에도 생각 없다며 퉁명스레 답해 왔지만 계속 두드렸다. 걸어 잠근 문을 활짝 열어줄 날을 기다리며.



혼자 있고 싶어서, 혹은 생각의 정리가 필요해서라고 여겼다. 그랬던 몇몇 친구들을 경험해 왔기에 그녀도 그런 부류일 거라 생각했다. 어려울 것도 없었다. 기다리는 건 내가 가장 잘하는 일이었으니까.

일주일쯤 지났을 무렵, 내가 먼저 조심스레 얘기를 꺼냈다. 서운한 게 있느냐고, 혹여 있다면 솔직하게 말해달라고.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그녀는 입을 열었다. 다양한 이유들이 있었지만 가장 당황스러웠던 건 다음의 답변이었다. 화기애애한 우리 팀도, 그 사이에서 웃고 떠드는 나도 견디기가 힘들다고 했다.

그 말을 곧이곧대로 이해할 수 없었지만, 진심을 다해 마음을 건넸던 사람이었기에 받아들일 수 있었다. 사람마다 처한 환경과 사고의 방식이 다를 수 있으니 충분히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다.


차마 나도 행복하지만은 않다고, 외적으로 보이는 것과는 달리 아주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고, 여전히 극복의 과정 속에 있다고 말하고 싶었지만 그러지 못했다. 서로가 짊어지고 있는 고통의 무게를 굳이 저울 위에 올려 재고 따지고 싶지는 않았다. 이것 보라며, 내 것이 더 무겁지 않으냐고.

당시의 순간에는 그 또한 이기적인 발언이 될 수도 있겠다 싶어 그녀의 말을 그저 듣기만 했다. 자신을 이해해 줘서 고맙다고 말하는 그녀 앞에서 공감과 위로의 말 외에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오래 지나지 않아 비슷한 상황이 다시금 발생했다. 그때와는 달리, 곧바로 서로의 감정을 솔직하게 털어놓을 수 있었지만 덕분에 깨달았다. 우린 생각보다 많은 부분에서 맞지 않았고, 시간이 지나도 결코 서로를 이해할 수 없을 거라는 걸.

진정으로 아끼는 사람이 주변으로부터 인정을 받고, 행복해하는 모습을 본다면 난 어땠을까. 맹세코 내가 어떤 상황에 처해 있든, 미움의 마음을 품고 시기 가득한 표정을 드러내진 못했을 것이다. 없던 에너지마저 끌어내 최선을 다해 함께 기뻐하고 슬퍼해 주는, 나는 그런 사람이었으니까.


몇 번이고 호되게 당했던 순간들이 하나둘 떠오르기 시작했다. 절대로 끄집어내고 싶지 않았기에 기억의 저편 너머로 던져두다시피 했건만, 불이 난 뒤 연기가 공간을 잠식해 버리듯 잊었다고 생각했던 기억들이 머릿속을 가득 메웠다. 생각만으로도 심장이 쿵쾅거리며 가슴이 미어지듯 아파왔다. 평온하게 이어지던 호흡에도 이상이 생겨버렸다.

그런 아픔을 겪고 난 뒤에는 나만의 철칙을 세우곤 했다. 회사 사람은 그저 동료로만 대해야 한다는 다짐 말이다. 그러나 좋은 사람들을 만나게 되면 그걸 깡그리 잊어버렸다. 그렇게 매번 마음을 몽땅 줘버린 탓에 아픔도, 상처도 더욱 크게 입어야 했다.



누군가에게 마음을 내어 준다는 건, 훗날의 상처까지도 기꺼이 감수하겠다는 뜻이다. 이를 잘 알면서도 우리는 또다시 사랑에 빠지고, 사랑하는 이에게 온 마음을 건네고 만다. 그렇게 사람을 순식간에 무장해제시키고, 먹구름처럼 드리워진 두려움마저 거두어 간다. 그리고 다시 걸어갈 용기를 건넨다. 사랑은 바로 그런 것이다.


사랑에 실패하지 않는 사람이 있을까. 세상 어디에도,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을 것이다. 실패란 어쩌면 노력의 결과인지도 모른다. 누군가를 미치도록 사랑해 본 일, 가진 마음을 몽땅 쏟아붓고도 더 주고 싶어 안달 났던 경험, 나 자신보다 타인을 더 아꼈던 순간들이 차곡히 쌓여 나라는 사람을 만들어 간다.


사람은 사랑을 통해서 비로소 완벽해진다고 했다. 그러니 상처받을까 두려워 머뭇거리고 멈춰 설 이유는 없다. 다시 다치고, 아파하고, 흉이 지더라도 또다시 사랑을 향해 나직이 나아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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