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 가계부

by 안개별


행복을 돈으로도 살 수 있을까.


떠올려보면 학창 시절에는 비빌 구석이 꽤 많았다. 용돈이 떨어지면 갖은 애교를 부려 어렵지 않게 지갑을 채울 수 있었고, 사고 싶은 게 있으면 가족 행사 일정을 기다리면 됐다. 서울과 인천 친척집을 투어하듯 돌아다니다 보면, 용돈이 제법 두둑하게 모였으니 말이다.

그땐 그랬다. 수중에 돈이 없어도 충분히 일상 속에서 만족과 기쁨을 누릴 수 있었다. 부모라는 든든한 우산 아래에서 비 한 번 맞아본 적 없는 아이는 행복이란 값을 매길 수 없는 것이라 믿었다. 돈이 없어도 환하게 웃을 수 있었고, 부족해도 초조하거나 걱정하지 않아도 됐다. 마치 요술을 항아리처럼 필요한 것들은 계속해서 채워져만 갔으니까.

어른이 되고 나서야 알았다. 그 어렸던 아이가 풍족한 삶을 누릴 수 있었던 부모의 크나큰 사랑과 희생 덕이었다. 아이는 그저 아이답게 커야 한다는 것을, 어쩌면 나의 부모는 잘 알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행복을 품기 위한 최소한의 비용이 발생한다. 자, 아래와 같이 예를 들어보겠다.

고소고소한 붕어빵 냄새가 피어오르면, 즉각 혀 밑에 침이 고이기 마련이다. 따끈한 달달구리 팥소가 들어있는 풀빵은 겨울철에만 만날 수 있는 귀한 손님과도 같아, 붕어빵 가게를 쉬이 지나칠 수가 없다.

손끝이 얼어붙어 감각마저 희미해질 즈음, 우연히 마주한 붕어빵 가게는 사막 위 오아시스와도 같을 것이다. 절대로 그냥 지나칠 수가 없다. 상상해 보라. 붕어빵을 한입 베어 물고 찬바람을 입속으로 쉭 들이마셔 뜨거움을 달래는 그 순간을. 행복은 지금, 당신의 입 안에 있다.

행복이라는 건 그리 멀리 있지가 않다. 다만 그 행복은 계산 없이는 가질 수가 없다. 단돈 천 원일뿐이지만 지불하지 않으면 그건 당신의 것이 되지 못한다.


* 참새가 방앗간을 그냥 지나치랴, 퇴근길 붕어빵 두 개 - 2,000원

* 스트레스 가득한 날, 달달한 커피 한 잔 - 2,500원

* 뼛속까지 파고드는 한파를 이겨내기 위한 핫팩 30개 - 11,000원

* 장바구니에 넣어두고 며칠을 고심하다 결국 주문한 책 한 권 - 14,000원


지난 일주일간 행복을 위해 결제한 금액은 총 29,500원. 게다가 핫팩은 한 달 내내 두고두고 쓸 수 있으니, 일주일치를 따져 다시 계산한다면 총 21,000원인 셈이다.

나의 행복을 위해 지불한 금액은 이만 원 초반. 행복의 비용은 언제나 가벼웠다. 계산기를 꺼낼 필요조차 없을 정도로.



행복 가계부를 가만히 들여다본다. 붕어빵 두 개, 커피 한 잔, 핫팩 한 박스, 책 한 권. 오늘의 만족과 내일의 기쁨을 위한 지출이었다.

어쩌면 행복이란 특별한 순간이 아니라, 나를 돌보기 위해 기꺼이 허락한 작은 사치일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그 사치는 늘 감당할 수 있을 만큼의 가격표를 달고 있었다. 결제 영수증은 오늘의 내가 나 자신을 존중하고 있다는 흔적이 되어준다.



행복을 돈으로 살 수 있느냐는 질문에 이렇게 대답하고 싶다.

행복은 요란한 잔칫상이 아니라, 적당히 배를 채운 저녁이라고.


행복은 분명 비용이 든다. 하지만 그 비용은 절대로 크지 않다. 오히려 너무 작아서 아끼다 놓쳐버리기 쉬울 뿐이다. 행복은 급한 것들에 밀려 가장 나중이 된다. 그래서 늘 지나친 뒤에야 비로소 알아차린다.

그러니 행복을 위해 쓰는 일에 너무 오래 망설이지는 말았으면 좋겠다. 어차피 그 비용은 늘 감당할 수 있는 만큼이었으니까. 생각보다 가벼운 금액으로, 오늘을 살아낼 만큼이면 더없이 충분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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