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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개별 Oct 21. 2024

행복에 겨운 한숨

당선, 그냥 취소해 달라고 할까


두 군데의 에세이 공모전에 원고를 냈고, 운이 좋게도 모든 출판사로부터 당선 소식을 들을 수 있었다. 그러나 숨 막히는 기쁨의 순간은 순간이었고, 오만가지 걱정이 내 머릿속 곳곳에 뿌리를 내리기 시작했다. 허구가 가미된 동화나 소설이라면 모를까 에세이는 오롯이 나만 알고 있던 이야기들을 짠 하고 내보이는 것이었기에, 세상으로 발을 내딛을 용기가 필요했다. 가물가물한 기억 탓에 제출했던 원고를 확인하고자, 퇴근 아이들을 재우고 노트북을 열었다.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름을 느꼈던 부분도 있었고, 가슴 시린 기억으로 눈물이 왈칵 차올랐던 부분도 있었다. 화려한 이력을 내세워 나만이 가진 노하우를 전수하는 플롯의 자기 계발서가 아니라 당시에 느꼈던 감정이나 생각을 위주로 글을 써 내려갔다 보니, 독자들에게 어떻게 비칠까에 대한 걱정도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일기를 모아 놓고 책이라고 내놓은 거야?"

"내가 발로 써도 이보다 낫겠네."

"그래서 작가가 하고 싶은 말은 뭔데?"


언제나 그렇게 살아왔다. 내 기분과 마음 상태를 확인하고 돌아보는 일에 무뎠고, 무신경했다. 내가 다른 사람들에게 어떻게 보이는가가 더욱 중요했던지라 항상 타인의 눈치를 보고 살아왔던 인생이었다. 그래서 책을 마주할 부모님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잊어버리고 살아온 지난 세월에 대한 아픔을 다시금 꺼내어 그들의 맑고 평온하던 마음을 뒤집고 엎어 흙탕물로 만들어버리지는 않을까 하는 걱정을 떨쳐버릴 수가 없었다.




다음 영혼의 단짝에게 전화를 걸어 고민을 털어놨다. 위와 같은 이유로 책을 내는 게 맞는지 잘 모르겠다고 말이다. 학창 시절 마음속에 깊게 품던 소중한 나의 꿈을 이룰 있는 좋은 기회라는 알지만, 혼자의 이기심만 채우기에는 내가 제법 어른이 되어버린 탓에 쉽게 결정을 내리지 못하겠다고. 내 이야기를 충분히 다 들은 그녀는 나에게 명쾌한 답을 찾아주었다.


"맞아. 우리의 부모님 세대는 그랬어. 그런 일들은 창피한 일이라며 꽁꽁 숨겨두려고 했지. 근데 있잖아, 내가 엄마라면 괜찮다며 딸의 꿈을 응원한다고 말해줄 것 같아. 그동안 크게 해 준 것도 없는데, 그렇게라도 내가 쓰임이 다할 수 있다면 꽤 행복하게 느껴질 것 같거든. 하지만 이건 나만의 생각일 수 있어. 그러니 엄마랑 대화를 해봐. 솔직하게 네 생각을 전하고 얘기를 나누면, 네가 원하는 답을 들을 수 있을 것 같아."


전화를 끊고도 한참을 친구와의 대화를 곱씹어 보아야 했다. 틀린 말 하나 없이 맞는 말만 골라했던 그녀의 현명한 솔루션에 늦게서야 감탄사가 연달아 터져 나왔다. 이어 행복에 겨운 한숨을 푹푹 쉬고 있는 내가 한심하게도 느껴졌다. 당선을 취소해 달라고 전화를 걸어볼까 하는 비겁한 해결책을 떠올렸던 내가 참으로 실망스러웠다. 부딪쳐 보지도 않고 지레 겁을 먹고 도전하지 않았던 그 많은 세월 속 경험들이 머릿속을 빠르게 스쳐 지나갔다. 용기가 나지 않았던 나에게 두려움은 시작도 전에 실패를 떠올리게 했고, 도전 없는 포기가 더 나은 선택이었다며 잘했다고 스스로를 토닥이던 그때를 말이다. 반복되었던 그 패턴은 지루하기 짝이 없었고, 때문에 경험의 폭이 상당히 좁았음을 부모를 탓했던 난 정말이지 치졸하고 비겁했다.




성인이 되기만 하면 제법 '어른'이 된다고 생각하고 살아왔다. 하지만 아이를 낳고 키우며 온갖 어렵고 힘든 일들을 겪고 나니, 여전히 난 멋진 어른이고 싶어 갈망하는 지극히도 '평범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직 미완성된, 완성을 위해 달려가는 그런 그냥 사람 말이다. 아직 어른이 되지 못했음에 대한 후회는 가질 수 있겠지만 부끄러움을 가질 필요는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모든 인간은 끊임없는 학습과 반복된 연습을 통해 조금씩 앞으로 더 나아가고 있기에, 우리 모두가 완성형일 수 없음을 생각한다면 말이다. 엄마와의 진솔한 대화를 통해, 그리고 딸아이의 격한 응원을 받으며 세상 밖으로 나의 이야기를 꺼내보기로 결심했다. 멍청했던 지난 시절의 한결같음과 작별하기로 선언했다. 그렇게 난 한결 가벼워진 마음으로 퇴고를 마무리할 수 있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 <꽃>, 김춘수


읽히길 바란다. 내 마음이 누구에게든 닿기를, 글의 향기가 누구에게든 스치기를 간절히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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