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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개별 Oct 23. 2024

첫 출판사 미팅

긴장과 설렘의 팽팽한 줄다리기


예상과는 달리 당신의 일처럼 너무도 기뻐해주던 엄마의 모습에 잿빛이던 내 얼굴에 생기가 돌기 시작했다. 혹여라도 당신의 이야기가 세상 밖으로 나가 지탄을 받게 될까 그 점이 우려된다고 얘길 하니, 나에게 도움이 된다면 더한 것도 할 수 있다는 대답을 해왔다. 그간 쌓여왔던 엄마와 나 사이의 앙금은 이로서 종결이 되는 듯했다. 아니, 그간의 서로에 대한 미움이 화르르 타버렸다는 표현이 맞겠다. 어려웠던 그 시절, 매일이 고난이었고 고비였기에 딸아이의 꿈까지 응원하는 엄마가 되어주지 못했던 점을 후회한다고 했다. 그래서 지금이라도 기회가 왔다면 절대 놓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했다. 당신은 이미 늙고 별 볼일 없는 할머니가 되어버렸지만, 아직 살아갈 날이 더 많은 에겐 앞으로 무수한 기회가 찾아올지도 모르지 않냐는 말도 덧붙였다.


용기를 내보기로 했다.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에 대한 두려움으로 멈칫하며 뒷걸음질 치는 겁쟁이는 더는 되지 말아야 했다. 아이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당당한 엄마로 우뚝 서고 싶었다. 내 이름이 박힌 책 표지가 서점에 진열되는 상상만으로도 마음이 풍선처럼 부풀어 올랐다.




두 군데의 출판사 중 어디와 계약을 할지를 꽤 오랜 시간 고민했고, 마음을 정한 출판사와 첫 미팅 약속을 잡았다. 나의 연차는 언제나 가족들을 위해서만 사용할 수 있었다. 입사한지 얼마 되지 않은 회사였기에 연차가 몇 개 없었고, 아이가 둘이다 보니 챙겨야 할 행사나 사건, 사고들이 많았던 이유에서다. 초등학교 공개수업, 아이들 병원 진료 및 영유아 검진, 남편의 가게 보조, 시댁 행사 등 말이다. 그런 나에게 공식적으로 날 위해 사용할 수 있는 연차가 주어졌다. 오롯이 나를 위해 휴가를 사용하는 첫 경험이 생각보다 짜릿했다.


오랜만의 홍대 방문. 출판사와의 첫 미팅에 늦지 않기 위해 일찍 집을 나섰다. 로망을 실현하는 첫 단추부터 잘못 끼우기 시작할 수는 없지 않은가. 차가 막혀서라는 진부한 변명을 늘어놓기에는 내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다. 자차로 매일 용인에서 강남까지 출퇴근을 했었고, 간혹 마포와 영등포로 외근을 다녔던지라 어려움 없이 도착할 수 있었다. 무려 한 시간이나 일찍 도착해 버렸다는 점만 뺀다면 말이다.


한 시간쯤 자리를 차지하고 앉아 있어도 전혀 눈치 보지 않아도 되는 카페를 찾아야 했다. 운이 좋았다. 출판사 1층에 스타벅스가 있었기에 무더위에 땀 흘려가며 카페를 찾아 헤맬 필요가 없었다. 스타벅스로 들어가 커피 한 잔과 샌드위치를 결제, 이름이 불리고 주문한 메뉴들을 받아왔다. 점심시간이 한참이나 지난 시간이었음에도 스타벅스는 사람들로 가득 채워져 있었다. 오피스가 밀집한 상권도 아니었고, 아파트가 즐비한 곳도 아니었는데 말이다. 스벅은 역시 스벅이구나. 가방 속에서 책을 한 권 꺼냈다.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들고 왔던 소설책이 여기서 이렇게 빛을 발하는구나 싶다가도 뭔가가 아쉬웠다. 샌드위치를 다 먹었음에도 책에 온전히 집중을 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베스트셀러라는 수식어가 무색하게도 글자들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땐 알지 못했지만 곧 있을 미팅에 대한 긴장과 설렘이 나의 집중력을 흐트러뜨리지 않았을까 싶다. 그 둘은 팽팽하게도 줄다리기로 접전을 벌이고 있었다.




사업 본부장과 마케팅 담당자와의 미팅. 어색한 첫인사가 오갔다. 마침내 앞에 놓여지는 시원한 아이스커피 한 잔. 쿵쾅거리는 심장을 잠시나마 잠재울 수 있는 특효약이었다. 구수하면서도 쌉싸르한 커피의 맛과 향 덕에 긴장이 조금 사그라들었다. 설렘이 우위를 차지하기 시작한 것이다.


"글을 원래 쓰시던 분이세요? 술술 잘 읽히더라고요."


마케팅 담당자의 질문. 원고를 읽고 느꼈던 생각들을 조심스럽게 물어왔다. 처음이었다. 얼굴을 맞대고 내가 쓴 글에 대한 호감을 표현한 사람들 말이다. 묘한 기분을 느꼈다. 긴장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져 버렸다. 어느새 나는 미소를 띤 채 살아온 이야기를 두서없이 떠들기 시작했다. 묻지도 않은 내용까지도 신이 나서 떠들어대는 모습이 꼭 다섯 살배기 어린아이가 오늘 아침에 막 경험한 일을 늘어놓는 듯 보였을 것 같다. 가벼운 스몰 토크가 끝나고 본격적으로 출판에 관한 미팅이 시작되었다. 첫 경험인지라 어떤 걸 물어야 할지, 확인해야 할지도 몰랐기에 그냥 말해주는 대로 듣기만 했다. 계약 기간, 인세, 입점 서점, 마케팅까지 체계적인 프로세스를 가지고 적극적으로 출판에 임해줄 것이라 생각했다. 두 곳의 출판사 중 여길 선택했던 내 결정이 옳았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다행이었다. 앞으로 펼쳐질 출간의 단계들이 가져다 줄 희망적인 이야기와 그로 인해 가질 설렘으로 머릿속이 가득 채워졌다. 처음이라서 느껴야 했던 두려움과 떨림은 그야말로 풍비박산이 나버렸다. 설렘의 완전한 승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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