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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개별 Nov 18. 2024

페어리 테일; 동화

몸과 마음의 편안함


마음껏 상상할 수 있어 좋았고, 생각하는 대로 그릴 수 있어 좋았다. 동화책을 보는 걸 참 좋아했었지만 오래 지속하지는 못했다. 너무 빨리 힘든 일들을 겪으며 또래보다 조금 성숙해 버린 탓이었을까. 스스로를 더는 순수하지 않다고 되뇌었던 같다. 세상의 때가 묻을 대로 묻어버렸기에 타락한 동화와는 어울리지 않다고 말이다. 더는 동화처럼 살아갈 없다고 생각했다. 그렇기에 꿈속에서 빠져나와야 했다. 빠르게 현실로 돌아와야 했고, 현실과 타협해 가는 자신의 모습에 만족해야 했다. 40살을 바라보는 어른이 지금, 그때를 되돌아보니 절대 그렇지만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런 사고를 가지고 있었을까.


"꿈을 꾸며 살아가도 괜찮아."


이 한마디면 충분했다. 나이에 맞게 꿈꾸고 상상해도 된다는 그 말이 듣고 싶었다. 먼 훗날 내가 가질 직업을 걱정하는 대신 모든 가능성을 열어 두었어야 했고, 돈 없는 서러움을 두려워하는 대신 밝은 미래를 상상하며 청사진을 그려야 했다. 그랬다면 기억 속 나의 소녀 시절은 조금 더 행복할 수 있지 않았을까, 혹은 조금 덜 불행할 수 있지 않았을까. 눈을 감고 상상하는 시간을 즐겼기에 낮잠을 꼭 한두 번은 챙겨 자던 그 시절 말이다.


그랬던 내가 어른들을 위해 쓰인 소설이나 에세이보다 동화를 더 많이 보는 어른으로 성장했다. 두 아이의 육아를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동화를 많이 읽기 시작했던 이유가 가장 컸다. 아이 둘에게 책만 읽어줬을 뿐인데 4살, 5살에 알아서들 한글을 뗐다. 생후 32개월부터 한 글자씩 띄엄띄엄 읽기 시작하다 소리 내서 책을 읽는 단계로 자연스럽게 넘어갔다. 그때의 영상을 다시 돌려봐도 놀랍기만 하다. 앉혀 놓고 한글을 가르친 적이 없었으나 그림처럼 문자를 통으로 외워버린 듯했다. 아이 성장 단계에 맞추어 주기적으로 책을 바꿔주고, 도서관을 밥 먹듯 다녔던 경험이 아이에게 유익하게 작용한 듯 보였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아이들은 같은 책을 반복해 보는 걸 즐겼다. 50번 이상 봤던 책들이 즐비했고, 아이들은 전날도 보았던 책을 꺼내왔지만 지루한 기색 없이 언제나 밝고 경쾌한 목소리로 책을 읽어주고자 노력했다.


내가 동화를 많이 보게 된 두 번째 이유는 얇고 읽기 쉬웠기 때문이다. 뒷 이야기가 궁금하면 도통 잠자리에 들 수 없었다. 궁금함을 참기 힘들었던 탓에 두꺼운 소설책을 쉽게 선택하지는 못했다. 결말의 반전을 꼭 오늘 보고 자야 직성이 풀렸다. 1시간이 넘게 소요되는 퇴근길 이후에도 아이들과 지지고 볶이야 했고, 이들을 재우고 나서야 온전히 나를 위한 시간을 가질 수가 있었다. 그렇기에 나의 독서 시간은 하루 평균 30~60분 정도였고, 이마저도 최대치를 따졌을 때의 경우다. 동화는 시간적 여유가 많지 않았던 나에게 보기에 가장 적합한 장르가 되어주었다.


동화책은 짧은 편이다. 다 읽는데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게다가 읽기가 편하다. 서사가 그리 복잡하지 않을뿐더러 머릿속에서 치열하게 뇌를 굴려가며 문제를 풀어가고자 노력하지 않아도 된다. 편안한 자세와 호흡으로 책장을 넘기면 그걸로 된다. 스토리 라인으로 인한 지나친 감정 낭비를 하지 않아도 되고,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직관적으로 이해하고 느낄 수 있으니 몸과 마음이 편안할 수밖에.


많이 보다 보니 나도 그 이야기들이 쓰고 싶어졌다. 동화를 다 보고 나면 조금의 상상을 덧대어 종종 나만의 스토리를 만들어 보기도 했는데, 그걸 또 첫째가 재미있게 들어주었다. 그래서 쓰기 시작했다. 아이들에게 들려주고픈 나만의 스토리를 일단 머릿속에 그렸고, 노트북 앞에서 몇 날 며칠을 정성을 다해가며 완성시킨 원고를 책으로 만들어 보았다. 초등학교에 입학한 첫째의 생일에 이전과는 다른 특별함을 담고 싶었다. 문학이라는 분야에 발을 처음 담그게 된 그때가 내 창작 활동의 시작점이 되어주었다. 내 창작물을 보며 기뻐할 두 아이들이 있었기에 그냥 쓸 수 있었다. 막힘 없이 술술 쓰였다. 아무런 배경지식도 없었기에 용감할 수 있었고 넘치는 자신감으로 결말까지 완성할 수 있었다.


엄마가 만든 책이 정말로 서점에서 판매되면 좋겠다는 첫째 아이의 말에 더욱 용기가 났다. 폭풍 검색을 통해 '원고 투고'를 통해서도 출간 작가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접하게 되었다.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했던가. 퇴고도 거치지 않은 엉망진창인 원고를 좋은 시선으로 바라볼 출판사는 어디에도 없었다. 세 번의 거절 메일을 받고서야 내가 쓴 동화를 다시 들여다보게 되었다. 지금까지 봐왔던 동화책, 어린이 소설책들과의 비교 분석을 통해 어떤 점들이 부족했는지를 비로소 깨달을 수 있었다. 더 치열하게 고민했어야 했고, 더 촘촘하게 구성했어야 했다. 그래서 오늘도 난 동화를 읽고 쓴다. 딸아이의 소망과 내 소싯적 꿈을 이루기 위해, 그리고 언젠가 제법 높이 날아오를 그날을 만끽하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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