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끄적거리다가 나왔다. 첫째의 첫 동시는 그렇게 만들어졌다. 학교에서 배운 시가 좋았기에 마음에 담고 입으로 흥얼거리며 집으로 돌아온 첫째를 현관에서 맞이했다. 그러더니 자신도 하나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줄칸 노트를 하나 쥐어줬더니 연필로 서걱서걱 끄적이다가 금세 내 앞으로 들고 왔다. 처음치고 꽤 괜찮은 동시였다. 초등학교에 입학한 지 얼마 되지 않았기에 글자는 삐뚤빼뚤, 맞춤법은 엉망이었지만 그녀의 마음이 고스란히 전해졌다. 학교에서 어떤 일이 있었고, 어떤 생각을 했었는지 그 동시가 나에게 말해주는 듯했다. 아이에게 인상 깊었던 그 시간을 함께하는 기분이 들었다. 우린 각자의 시간을 걷고 있었지만 그녀의 동시는 우리를 한데 모아 놓았다.
종종 자신의 기분에 대해 표현을 하긴 했으나 감정을 표현하는 데 있어 서툴었던 아이였기에 그 점이 언제나 아쉽게만 느껴졌다. 그랬던 그녀가 써 내려간 시 안에는 당시의 감정이 오롯이 담겨 있었다. 시를 읽다 보니 당시의 상황을 머릿속에 그려볼 수 있었고, 아이의 마음이 어떠했는지를 온전히 느낄 수 있어 참 좋았다. 기쁘기도 했고, 슬프기도 했고, 감동을 받기도 했고, 대견하기도 했고, 가슴이 벅차오르기도 했다. 시가 이렇게나 사람의 마음을 울릴 수가 있구나를 난생처음 알게 되었다.
난 리액션이 과하다 못해 흘러넘치는 엄마다. 난생처음 자신이 쓴 글로 엄마를 감동시켰으니 얼마나 크나큰 칭찬을 받았겠는가. 칭찬의 보상이 꽤 달콤하게 느껴졌을 것이 분명했다. 그랬던 이유일까. 첫째는 이후로도 꾸준하게 시간이 날 때마다 시를 썼다. 여전히 글씨는 삐뚤거렸지만 마음은 올바르고 제법 곧았다. 문득 떠오르는 자신의 생각에 대한 확신과 이제는 가져보고자 하는 듯 보이는 스스로에 대한 신념 또한 느껴지기 시작했다. 첫째는 시와 함께 매일 조금씩 성장했고 그 모습을 지켜보는 난 더없이 행복해졌다.
받은 것보다 언제나 더 돌려줘야 했다. 준 건 잊어버려도 받은 건 절대 잊지 말자는 확고한 철학을 가지고 살아왔기에 나도 뭔가를 해야 했다. 화답시로 받은 사랑을 돌려줘야 했다. 생전 시와는 담을 쌓고 지내 온 터라 참으로 어렵게만 느껴졌다. 첫째가 도서관에서 종종 빌려오는 동시집을 읽고 또 읽어가며 감을 익혔고, 그 덕에 한 자 한 자 써 내려갈 수 있었다. 처음에는 적절치 못한 어휘들의 사용, 과한 기교들로 인해 보기 불편한 시들이 탄생했다. 별로라고 말하는 첫째의 코칭을 받아가며 자연과 사물, 그리고 사람을 바라보는 눈에서 힘을 빼는 법을 배웠다. 현상을 바라보며 느낄 수 있는 마음을 스케치하듯 그려보라는 피드백이 통했다. 점차 보기에 편안해 쉽게 읽히고 공감이 가는 동시들이 탄생할 수 있었다. 그렇게 우린 편지가 오가듯 동시를 통해 서로의 안부를 묻고 각자의 마음을 전했다. 하루의 기억 중 가장 진했던 추억을 공유했고, 당시의 생각을 공감하며 서로를 더 많이 이해할 수 있었다.
서늘함이 제법 느껴지는 아침, 따스한 커피 한 잔에 느껴지는 기분 좋은 설렘과 위안을 알지 못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시가 그렇다. 기쁨을 배가 시켜 주고, 슬픔을 잠시 잊어버리게 만들고, 아픔을 치유하게 만드는 것이 우리가 시를 쓰고 서로에게 선물하는 이유가 아닐까. 심금을 울리는 무언가가 필요하다면 시가 그 답이 될 수 있을 거라 필자는 적잖이 확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