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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개별 Nov 06. 2024

레터; 편지

진심 어린 마음의 전달


글쓰기의 진정한 힘을 느끼고 싶다면 이 방법이 가장 강력하지 않을까. 나의 진심을 상대에게 솔직하게 전하고 그로 인해 변화될 상대를 기대하게 만드는 힘 있는 무기가 있다. 편지는 나의 진심을 온전히 담을 수 있는 무기이자 방패가 되어 준다. 말을 잘하지 못하는 사람에게도, 쓰기를 잘  못하는 사람에게도 말이다. 편지는 쓰는 시간을 스스로가 정할 수 있다. 전달해야 하는 때를 계산하고 충분히 시간을 갖고 시작한다면 더욱 여유 있는 글쓰기가 가능하기에 완성도 높은 글을 만들어갈 수 있으며, 지니고 있던 마음을 세심하고 정교하게 표현할 수도 있다. 뛰어난 언변을 가진 사람들을 보면 극소수에 불과하다. 그렇기에 내가 아무리 노력한다고 쉽게 그들처럼 변할 거라는 기대를 갖기는 어렵다. 생각보다 많은 노력과 긴 시간이 투자가 되어야 하는 일이라는 걸 알기에 말이다.


다만 편지는 경우가 조금 다르다. 마음은 신기하게도 진심이 담기면 쉬이 열리기도 하고, 그 진심은 상대를 설득하거나 감동시키는데 탁월한 능력을 지녔기 때문이다. 소싯적 누군가와 사랑에 빠져 그 마음을 고스란히 다 전하고자 했던 연애편지를 쓰던 그때의 경험을 떠올려 보자. 입으로 전하기가 힘든 경우 또는 글을 통한 표현이 필요할 때 우리는 편지를 쓰곤 했다. 말이 주는 감동보다 글이 주는 감심의 깊이가 더 크다는 걸 모르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뿐만 아니라 쓰는데 들여야 하는 시간과 노력 대비 월등하게 높은 아웃풋을 창출할 수 있기에 우린 편지 쓰기를 종종 실천해 왔다. 정해진 틀도 없는 데다 떠오르는 생각을 자유로이 서걱서걱 소리를 내며 한 자 한 자 써 내려가면 그걸로 된다. 그래서 초등학교에서도 독후감 다음으로 편지 쓰기를 가르치고 있는 것이 아닐까.




나와 초등학교 2학년인 첫째 사이에도 편지가 제법 오간다. 한글을 제법 힘 있게 쓰기 시작한 작년부터다. 종종 서로의 감정을 상하게 하거나, 서로에게 서운함을 담아두게 만드는 말이 오간 다음날이면 어김없이 펜을 들고 백지를 가득 채워간다. 격앙된 목소리가 오가며 이미 서운할 대로 서운해버린 혹은 감정의 응어리가 더 커져가는 상황임을 인지한다면 우린 잠시 입을 닫는다. 그리고 각자 생각할 시간을 충분히 갖은 뒤 정리된 생각과 마음을 편지에 담아 본다. 이미 엎질러진 물을 다시금 담는 일은 절대로 쉬운 일은 아니기에 잠시 '쉼'을 갖는 셈이다. 부정적인 방향으로도 말의 힘이 어느 정도까지 세력을 키워갈 것인지를 잘 알고 있기에.


내용이 제대로 갖춰진, 전하고 싶은 마음이 제법 담긴 편지를 쓰기 시작한 건 2년 전 크리스마스였다. 픽했던 상품의 재고 이슈가 발생하지 않았던 3주 전에 장난감을 구매했고, 1주일 전부터 편지를 쓰기 시작했다. 그때의 난 산타 할아버지가 되어 있었고, 지난 1년간 아이의 잘했던 점들에 대한 칭찬과 아쉬움이 남았던 생활 습관이나 태도에 대한 글을 쓰며 내년에 새롭게 시작해 보자는 응원의 말로 마무리를 했었다. 마음이 통한 덕일까. 첫째는 산타의 편지를 1년 내내 꺼내봤다. 그 수를 센다면 대략 30~40번쯤 되는 것 같다. 스스로 다짐했던 산타와의 약속을 잊어버리지 않고자 계속 꺼내 봤고, 자신이 제법 괜찮은 아이라고 느낄 수 있게 만들어주는 마법 같은 응원의 문구들을 주기적으로 머리와 가슴에 담아두려는 목적인 듯 보였다. 첫째는 기특하게도 산타와의 약속을 지키고자 부단히도 노력하는 일 년을 살아냈다. 이는 글쓴이가 전혀 의도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부분이었다.




편지 쓰기의 순기능을 체감하고부터는 보다 적극적으로 편지를 우리의 삶에 녹여내기 시작했다. 한없이 높아져버린 자존감 탓인지 종종 동생을 무시하는 발언을 하는 아이를 혼도 내보고 살살 타일러도 봤지만 소용이 없었다. 또다시 편지를 써야 했다. 이번엔 엄마로서 말이다. 네 진심은 그게 아니었을 거라고, 엄만 널 믿고 기다리겠노라며 마음을 전했다. 참 웃기게도 첫째를 진정시키고 보다 나은 방향으로 삶을 일궈갈 수 있게 그녀의 마인드를 바꾸고자 쓴 편지였지만, 되려 내 마음에 작은 변화가 일었다. 각지고 모났던 내 마음이 살짝 펴지며 동그래지는 기분이 들었다. 아이로 인해 잔뜩 날이 섰던 내 마음에 평화가 찾아온 것이었다.


편지를 받은 첫째 또한 나 만큼이나 달라지기 시작했다. 자신의 모습을 다른 사람의 시선에서도 바라보려고 노력을 기울였으며 동생이 자신을 얼마나 좋아하는지, 엄마의 바람과 기대가 무엇인지를 파악할 수 있었다. 자신의 행동이 잘못되었다는 걸 제대로 인지했고, 앞으로의 계획을 구체화하며 각오를 다졌다. 단번에 바뀌지는 않았지만 서서히 좋아지는 모습을 보였고, 지금은 세상에서 가장 귀여운 아기가 자신의 동생이라며 동네방네 떠들고 다닌다. 사랑하는 동생을 더는 속상하게 만들지 않고자 지금도 부단히 노력을 기울인다.


편지의 위력은 실로 대단하다. 마음을 진실되게 전할 수 있는 커다란 무기가 되어 준다. 큰 고민 없이 쉽고 가볍게 시작할 수 있고, 적은 시간을 들여서도 아름답게 마무리할 수도 있다. 글쓰기 스킬이나 특정한 양식이 필요 없으니 자유롭게 펜을 움직여봐도 좋다. 전하고자 하는 솔직한 마음을 담기만 하면 된다. 이후 순차적으로 따라올 변화의 경험은 덤으로 기쁘게 받아볼 수 있다. 아마도 첫 경험은 굉장히 짜릿할 것이고, 이후 자신도 모르게 편지지를 찾고 있을 것이다. 또 한 번 진심 어린 마음을 전하기 위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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