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게 시작이었다. 불을 끄고 침대에 누워 내 입에서 나오는 이야기만을 마냥 기다리는 아이들을 위해 매일 밤 나는 스토리텔러로 변신했다. 입을 벌리고 앉아 벌레를 넣어주기만을 학수고대하는 그런 아기 새와 같이, 아이들은 귀를 쫑긋 세웠고 눈을 반짝 빛내곤 했다. 집이 떠나가라 시끄럽게 떠들고 놀다가도 스토리텔링이 시작되면 이불을 덮고 제 자리에 곧게 누워 내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어둠 속에서도 그들의 눈에 담긴 별은 총총히도 빛나고 있었다. 크고 밝게 빛나는 북극성처럼 말이다. 그 별들 덕에 난 길을 잃지 않을 수 있었고, 올바른 방향으로 계속 나아갈 수 있었다.
처음에는 그냥 생각나는 대로 내뱉기 바빴다. 앞뒤가 제대로 연결되지 않은 대충 만들어 낸 스토리였지만, 무서울 정도로 집중하는 아이들의 모습에 종종 현타가 찾아왔다. 그들의 기대와는 달리 현저히 수준 낮은 이야기 전개에 현실 자각 타임이 찾아오는 횟수가 늘어갔다. 매일 이야기를 이어가는 것은 절대로 쉬운 일은 아니었다. 소재가 떨어지기라도 하는 날에는 거즈를 비틀어 즙을 짜내 듯 힘을 주며 뇌를 이리저리 비틀어 어거지로 이야기를 만들어 갔다. 피로 물질들이 온몸 구석구석 퍼지기라도 하는 날에는 머릿속에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았고, 예민함을 참아내기 위한 감정 노동이 시작되었다.
"오늘은 엄마가 너무 피곤하네. 내일 대신 두 편 들려줄게. 괜찮지?"
그러나 아이들에게 조삼모사가 통할 리가 있나. 오늘만 사는 그들에게 내일은 없었다. 한 놈은 서럽게도 엉엉 울기 시작했고, 또 한 놈은 어마어마한 애교 폭탄을 투하하며 내 마음을 흔들었다. 성향에 따른 각자의 방식으로 그들은 결국 원하는 걸 쟁취하고야 만다. 난 그저 생각나는 대로 내뱉었을 뿐이었지만 그들에게는 더 큰 의미가 담겨 있었나 보다. 새로운 방식의 잠자리 독서라는 점, 난생처음 들어보는 이야기라는 점, 엄마가 자신들만을 위해 만들어 낸 이야기라는 점이 남다르게 느껴졌다고 했다. 그렇게 우린 평범하게도 다가올 그 특별한 밤을 매일 기다렸다.
지나고 보니 그게 나의 글쓰기의 시작이었다. 펜을 들고 끄적거리지도 않았고, 노트북 앞에 앉아 타자를 친 것도 아니었으나 분명 그건 창작의 과정이었다. 첫째의 유치원 시절 내내 이런 밤을 맞이했으니 최소 2년, 많게는 3년간의 시간이었다. 동화 만들기는 주로 즉흥적으로 이루어졌으나, 더 재미있는 동화를 들려주고자 간혹 아이들이 등원한 낮 시간이면 머릿속에 장면들을 미리 그려보기도 했다. 반찬을 만들다가도, 화장실을 청소하다가도, 둘째를 등원시키고 집으로 들어오는 길에도 말이다. 머릿속에 그려본 상상 탓에 간혹 혼자 피식거리기도 했고, 눈물이 가득 차오르기도 했다. 지극히도 일상적인 나의 삶에서 작은 시간을 쪼개가며 난 글을 쓰고 있었던 것이다. 그 시간들이 참 좋았다. 아이들의 진한 웃음소리와 감탄의 리액션을 기대하며 두근두근 설레었기에 그 시간들은 내가 마치 소녀가 된 것 같은 착각에 빠지게 만들었다. 작가라는 꿈을 포기하기 전인 중학생 시절로 다시 되돌아간 것 같은 기분이 들기도 했다. 그래서일까, 치열하고 격한 창작의 고통이 아니라 여유 있고 생기 넘치는 창작의 기쁨을 난 분명 느끼고 있었다.
그 시간들은 나에게뿐 아니라 아이들에게도 소중했고 충분히 값어치가 있었다. 밤이면 밤마다 이야기꾼으로 변신하는 엄마를 보고 자란 덕일까. 첫째는 무언가를 창작하는 일에 크게 흥미를 가졌다. 장난감을 잘 사주지 않았으니 스스로 장난감을 만들어 놀았고, 미술 학원을 보내주지 않았으니 그냥 무작정 하얀 종이만 보면 그려댔다. 그리고 엄마에게 들려주겠다며 1학년 말부터는 동시를 쓰기 시작했다. 그리고 6개월 만에 백일장 대회에서 수상, 무려 10만 원이라는 상금도 거머쥘 수 있었다. 2학년이 된 지금은 동화를 쓰겠다며 끼적이고 있고 그 결과물이 제법 괜찮다는 점에서 그때의 시간들이 결코 그냥 흘러가지만은 않았구나 라는 생각이 든다.
둘째는 말과 행동이 많이 늦은 아이였다. 언어 지연으로 아이도 나도 꽤 오랜 시간 고생을 해야 했다. 어린이집 반 친구들 중 말도 제일 늦게 터졌고, 기저귀도 제일 늦게 뗐다. 정말이지 선생님들의 걱정이 어마어마했다. 말도 하지 못하는 데다가 소심하고 내성적이라 아이의 마음까지 걱정해 주던 고마운 선생님들이 많이 계셨다. 그랬던 아이가 지금은 수다쟁이가 되어 쉴 새 없이 떠들어 대고 있으니, 이처럼 기쁠 일이 또 어디 있겠나 싶다. 책을 쳐다도 보지 않던 아이가 언제부턴가 읽어달라며 책을 하나둘씩 가져오기 시작했다. 그러다 책과 사랑에 빠져버린 녀석은 생후 40개월 무렵 한글을 띄엄띄엄 읽기 시작하더니, 5살인 지금은 혼자서도 책을 소리 내서 읽고 있다. 내가 읽어주는 대로 눈을 움직이며 글밥을 따라갔고, 들으며 보다 보니 자연스럽게 문자를 통으로 외워버렸다. 시작이 언제부터인가를 돌아보니 그 시점부터였다. 매일 밤마다 엄마가 스토리텔러가 되어 실감 나게 동화를 들려주던 그때 말이다.
글쓰기를 시작하려거든 즐겁게 시작해 볼 것을 권하고 싶다. 원하는 어떤 방식으로든 괜찮다. 굳이 종이에 쓰지 않아도 좋다는 말이다. 글을 쓰는 게 두렵다면 더욱이 생각을 넓혀가며 쓰기 위한 바탕을 닦아 가는 단계를 오래 거치는 걸 추천한다. 머릿속으로 일단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쓰기의 방향이 잡히고, 시놉시스가 구체화되는 계기가 되어줄 테니 말이다.
창의력이나 사고력은 나이가 들어갈수록 저하될 텐데 상상하며 이야기를 꾸려 나가는 게 가능할까를 의심하는 이가 있다면 자신 있게 그렇다고 말해주고 싶다. 상상하는 걸 해보지 않았다면 쉬운 일은 아닐 수 있으나, 확실한 건 하면 할수록 늘어간다는 사실이다. 게다가 그렇게 노력하는 와중에 독창성이 발휘가 되는 것이니, 일단 자신이 즐겁게 시작할 수 있는 방법으로 시도하는 것이 좋겠다. 누군가를 위한 이야기꾼이 되고 스토리텔링을 통해 온몸 가득 행복이 차오르는 즐거운 상상을 해 볼 수 있기를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