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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개별 Nov 25. 2024

꿈같은 12월 그리고 희망

제9회 청년이야기대상 수상


한 해를 마무리하는 마지막 달이 얼마 남지 않았다. 벌써 삼십여 년을 경험했지만 12월은 언제나 아쉽기만 하다. 아직은 떠나보내고 싶지가 않은, 조금은 더 붙잡고 있고 싶은... 하지만 그럴 수 없다는 걸 깨닫는 데는 그리 오래 걸리지가 않는다. 눈 깜짝할 사이 1월이 찾아오기에 말이다. 12월은 그런 달이다. 1년을 제대로 살아냈는지에 대한 혹독한 비판과 꽤 쓰라린 채찍질이 오가는 가혹한 평가의 달이었다. 항상 엄격한 잣대를 들이밀어 불완전한 스스로를 만들어 냈고, 목표를 달성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실패한 인생을 살고 있는 볼품없는 인간으로 전락시켰다. 좌절의 맛은 언제나 쓰디썼다. 그러나 절망의 순간 희망의 빛을 품을 수 있었던 건 또다시 찾아올 새로운 미래가 나를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또 살아낼 내년이 있었기에 새롭게 출발하면 된다는 그 마음이 나를 계속해서 숨 쉴 수 있게 만들었다. 그랬던 나에게도 꿈같은 12월이 찾아왔다. 고생하며 애쓰던 지난 시간들과 단 한순간도 식지 않았던 열정에 고마움을 표현하며 나를 인정하고 칭찬하는 그런 날 말이다. 


무더위와 사투를 벌이던 여름의 중간쯤이었다. 고단했지만 행복이 차고 넘치던 하루를 보낸 뒤 아이들과 잠자리에 들었다. 피로했던 우린 빠르게 꿈나라행 열차에 탑승했다. 아이들이 새근거리는 숨결이 하도 따스했던 탓일까, 눈이 번쩍 뜨였다. 예민한 오감을 가진 덕에 온도와 습도를 보지 않고도 알 수 있었다. 습기 가득 머금은 공기와 후덥지근한 열기가 고단했던 나를 깨운 것이었다. 아이들의 목 뒷덜미에 손을 넣어보니 땀이 흥건했다. 그들은 꿈속에서마저 더위와 사투를 벌이고 있는 게 분명했다. 야심한 밤까지 찾아와 아이들을 괴롭히고 있었으니 참으로 야속한 여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가장 약한 세기와 그리 낮지 않은 온도로 에어컨을 가동했고, 침대 발아래 코너까지 밀려나 버린 홑이불을 각자의 배 위에 살포시 얹어주었다. 


한층 편안해진 아이들의 얼굴을 확인하고서야 까치발을 들고 나만의 공간으로 이동했다. 안방 중문을 열고 나면 보이는 화장대가 야간에는 작업 데스크로 사용되었다. 공모전 마감 기한은 한참이나 남았지만 원고가 언제 완성이 될지는 미지수였기에 서둘러야 했다. 게다가 아이들이 한두 번 아프기라도 한다면 길다고 느꼈던 그 기한을 지키지 못할 수도 있었기에 말이다.


노트북을 열고 한 자 한 자 써 내려갔던 그 밤들이 모여 하나의 이야기가 탄생했다. 힘들어하는 나 자신을 위로하고자 택한 주제였다. 지독하게도 강한 폭풍우 속에서도 결코 흔들리지 않겠다는 의지를 다잡기 위함이었고, 나보다 더 많이 힘들어하고 있을 남편에게 위로와 응원이 되어주고 싶었다. 그만을 위한 등대가 되고 싶었다. 같은 자리에서 매시간 당신을 위해 불을 켜두겠다는 마음이 그에게 전해지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지나간 태풍은 모든 걸 다 앗아갔지만 그럼에도 우린 살아가야 했다. 다만 세상의 무서움을 제법 알아버린 탓에  발 한 발 내딛는 게 두려울까, 어려울까 걱정이 서렸기에 내가 그의 길 앞잡이가 되어주고자 했다.


그를 다독임과 동시에 내 마음도 살펴주는 것 또한 잊지 않았다. 아이들은 엄마를 거울삼아 배우고 따를 터였다. 그들의 우주이자 전부인 내가 무너지면 안 됐기에 마음에 품고 있던 응어리들을 꺼내어 글 속에 녹여 보았다. 오랫동안 들여다보지 않았던 탓에 꽤 단단해져 있었고, 제법 움츠러들어 있었다. 앙금처럼 명치에 쫀득하게 박혀있던 그것들이 눈 녹듯 녹아내리기 시작했다. 묵직한 돌덩이들이 올라선 듯 짓눌려 아프던 어깨도 점점 가벼워져만 갔다. 쓰다 보니 그러했다. 글을 쓰기 시작하면 비로소 내가 살아있음을 느낄 수가 있었다. 머릿속으로만 그리던 생각을 꺼내고 이를 문자로 다시 만들어내는 시간은 하루 24시간 중 내 눈이 가장 반짝이며 머리가 제일 맑아지는 때라는 건 절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아마 이곳에서 글을 쓰는 브런치 작가님들 모두가 나와 같은 마음이지 않을까.


쓰다 보니 내 글이 책이라는 출간물로 세상 밖으로 나올 준비를 하게 되었고, 계속 또 쓰다 보니 예상치 못한 상이라는 걸 받을 수 있었다. 에세이 공모전에서 처음 수상이라는 걸 해 봤다. 자라나는 꿈나무가 아니어도 수상을 할 수 있고, 그 틈에 내가 끼어들 공간도 존재한다는 걸 이제야 알았다. 대상을 목표로 글을 썼던 건 아니었기에 장려상에 머물렀음에도 기쁜 마음을 감출 수가 없었다. "그럭저럭 괜찮았어. 봐 줄만은 해. 조금만 더 노력하면 좋아질 것 같아."라고 마치 상장이 말을 하는 것 같았고, 쓰기에 더 열정을 쏟아도 된다며 나를 북돋아주는 듯 보였다. 12월의 월간지와 함께 찾아온 상장은 성실하게 일 년을 잘 살아온 나 자신에 대한 보답이자 특급 칭찬이었다. 지금의 경험이 지치지 않고 계속 정진할 수 있는 쓰기를 위한 원동력이 되어줄 거라 굳게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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