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 메이트가 있다는 것
내가 지치지 않을 수 있는 이유
첫째를 낳고 3개월 만에 회사에 복직했다. 아이를 봐줄 사람이 있었고 나는 젊었기에 다시 열심히 돈을 벌기로 했다.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한다고 했으니 돈을 받고서 하는 고생을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집 말고 다른 곳에 내 책상과 컴퓨터가 있다는 것에, 엄마가 된 이후의 나도 유용하게 쓰일 수 있다는 것에 감사했다. 회사에 출근하기 전 태어난 지 3개월밖에 되지 않은 아이와 하루 온종일 시간을 보내야 하는 친정엄마를 위해 사운드 북이 수십 권 들어 있는 전집 한 질을 샀다. 첫째에게 책이 일상이 된 건 자연스러운 결과일지도 모르겠다. 생후 3개월 무렵부터 스토리 북을 주야장천 듣기 시작했으니 말이다. 시간이 지나고 첫째는 한글을 가르친 적이 없었음에도 생후 32개월부터 한글을 제법 또박또박 읽기 시작했다. 한글에 관해서는 또래들보다 월등히 빠른 성장 속도를 보였다. 다양한 책을 집에 들이고 도서관에 다니는 것이 너무도 당연했다. 배움 폭발의 시기, 그녀의 독서에 대한 흥미에 불을 지피고 갈증을 해소해 주는 게 나의 역할이라고 생각했다. 폭넓고도 깊은 지식을 가진 남편과는 달리 난 그렇지가 못했기에 나란히 앉아 같이 읽었다. 각자의 머릿속 빈 공간들을 하나둘 채워나갔다. 그렇게 우린 매일 조금씩 성장해 나갔다. 전집들을 어마어마하게도 사다 보니 무거워진 머리와는 달리 통장은 자꾸만 가벼워져 갔다. 게다가 집 정리도 어려워지기 시작했다. 돼지우리에 난잡하게 어질러진 똥오줌 마냥 각기 다른 사이즈의 책들이 어지럽게도 널브러져 있었다. 정리에 대한 강박으로 평생을 살아왔기에 그걸 매일 봐야 하는 마음도, 매일 하는 청소로 인한 몸도 편치 못했다. 그때 중고 서적이 그 대안이 되어주었다. 정가보다 훨씬 저렴하게 구입할 수 있었고, 다 본 책들을 당근에 내놓으며 중고 전집 구매 비용을 충당할 수 있었다. 첫째의 키가 커지는 만큼 머리도 빠르게 커져만 갔다. 중고 구매마저도 비용이 부담되는 시점이 찾아온 것이다. 그 시점부터 우린 도서관으로 출근 도장을 찍기 시작했다. 책 읽는 속도가 빠른 데다 편식 없이 모든 장르의 책을 꺼내 보았기에 그녀에게 도서관은 딱 맞는 옷과도 같았다. 한 번 도서관을 들어가면 3~4시간은 기본이었다. 매주 다니던 그곳은 마치 우리 집처럼 편안하게 느껴졌다.
그랬기에 우리에게 생각을 정리하고 글로 쓰는 건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어린이 소설이나 동화의 경우 작가의 생각에 우리의 상상을 보태 뒷 이야기를 추가로 만들어 내거나 결말을 바꿔보기도 했다. 또한 동시를 읽고 같은 주제로 또 다른 시를 쓰거나, 좋은 노래 가사를 필사하며 그 안에 담긴 작사가의 감정을 공감하고 곱씹는 시간을 갖기도 했다. 함께하는 그 작업들이 즐거웠고 그 시간들이 참으로 소중했다. 그런 과정들이 쌓이고 쌓여 세상 밖으로 나의 글을 내놓을 용기가 생겼다. 그래서 어설프지만 마음을 꺼내어 문자로 그려낼 수 있었다. 노트북 앞의 손가락들은 마치 물 만난 물고기 마냥 자유롭게 유영하는 듯 보였고 그 손가락 끝엔 행복이 제법 묻어 있었다.
쓰다 보니 욕심이 생겼다. 공통의 관심사를 가진 사람들과 함께 책을 읽고 글을 쓰고 소통하는 글 모임에도 가입을 하여 스스로를 더 발전시키고도 싶었다. 무엇보다 혼자 쓰는 게 가끔은 외롭게 느껴지기도 했던 이유다. 하지만 시간적 여유가 없었기에 그런 모임의 일원이 되는 것조차 쉽게 결정할 수 없었다. 자주 모임을 빠지거나 탈퇴해야 하는 사정이 생길 수 있었기에 참여 여부의 지속성에 의심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발만 담그고 금세 빠져나가는 그런 가벼운 모습은 보이고 싶지 않았다. 결국 마음속에 담아 두는 것 만으로 끝이 났다.
결국 내가 택한 방법은 가까운 곳에서 글쓰기 메이트를 찾는 것이었다. 나처럼 쓰기를 좋아하는 첫째 아이가 나의 첫 메이트가 되어주었다. 올해 초에는 아이에게 읽고 쓰는 법을 가르쳤다면 중반부터는 각자 글을 쓰고 피드백을 주고받았다. 인원이 적어 제대로 된 합평을 하려면 5살 둘째가 빨리 커야 한다. 그가 쑥쑥 자라나길 바랄 뿐이다. 그렇게 우린 마음이 내키는 대로 글을 끄적이기 시작했고 완성이 되면 설레는 마음으로 상대에게 보여줬다. 그리고 긴장되는 마음으로 돌아올 직설적 평가를 기다렸다.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었다. 첫째는 아직 피어나지 않은 꽃봉오리 마냥 입을 오므린 채 쭈뼛거렸다. 어렵다고 했다. 마음으로는 이해했고 알겠는데 막상 그걸 언어로 표현하려니 구체적으로 어떻게 정리를 해서 말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했다. 가이드가 필요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주제, 소재, 캐릭터, 스토리 구성 등이 어떤지를 객관식으로 하나씩 질문하기 시작했다. 스토리 구성은 좋으나 소재의 참신함이 부족하다는 평을 받았다. 캐릭터의 이름도 너무 올드하다고 했다. 노만 쥐어줬더니 제대로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던 첫째에게 닻을 달아준 격이었다. 봇물 터지듯 쏟아지는 그녀의 논평에 어질 할 때도 있었지만 겸허히 받아들이기로 했다. 그렇게 우린 함께 고민의 단계를 거치며 보다 나은 글을 완성시키고자 노력했다. 비록 엄마인 나는 아이의 글에 직설을 퍼붓지는 못했지만 말이다.
그녀와 나는 천생연분이 아닐까 싶다. 우린 달성하고자 하는 목표가 같고, 같은 취미를 가지고 있다. 바로 글을 쓰고 작가로서 데뷔하는 것 말이다. 마음을 쓰는 일에 행복을 크게 느끼고 그 글이 누군가에게 읽힌 뒤 마음을 정리하는데 도움이 될 수 있다니 이 얼마나 멋진 일이 아니겠는가. 가끔은 체력이 바닥 나는 날들도 있다. 그런 날들이 계속되면 모든 걸 다 놓아버리고 싶기도 하다. 그럼에도 지치지 않고 좋아하는 일을 계속할 수 있는 건 나에게는 글쓰기 메이트가 있기 때문이 아닐까. 서로에게 꽤 괜찮은 조력자가 되어 주고 솔직한 감상과 비평을 통해 스스로를 발전시켜 가는 우리는 모녀 관계 그 이상이 아닐까. 무언가를 오래, 끈기 있게 지속하고자 한다면 함께 달려줄 수 있는 메이트를 찾기를 바란다. 함께하며 마주한 엄청난 시너지 효과에 깜짝 놀라게 되는 그런 날이 생각보다 빠르게 찾아올 거라 확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