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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 틈 사이로도 꽃은 피어난다

하이개그가 주는 안온함

by 안개별


남편의 병원 생활이 두 달째 계속되고 있다. 블랙 아이스를 보지 못하고 뛰어가다 넘어져 한쪽 다리가 완전히 부러져 버렸다. 오토바이 사고를 당했느냐는 말을 들을 만큼 상태가 나빴다. 철심을 박는 수술을 했지만 맞출 수 없는 많은 뼈 조각들을 버려야 했다. 빈 공간들 사이 뼈가 자라나고 붙어야 하기에 언제부터 걸을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뭐든 혼자 잘해왔다고 생각했었는데, 혼자가 아니었다는 사실을 뒤늦게야 깨닫는다. 남편의 커다란 그늘 아래 내가 놓여 있었다는 걸, 늘 마음으로 아내를 지지해주고 있었다는 걸. 든 자리는 몰라도 난 자리는 안다는 옛 조상들의 말이 떠올랐다.


남편의 부재는 나를 가장으로 만들었다. 홍반장마냥 여기저기 불려 다녀야 했다. 아이들은 언제나 나를 찾았고 함께 살고 있는 친정엄마 또한 그러했다. 남편 뒷바라지에 온 가족을 챙겨야 했고 회사에서의 내 역할 또한 신경 쓰지 않을 수 없었다. 살기가 참 퍽퍽했다. 아무리 냉수를 들이켜 보아도 가슴팍에 무언가 걸려 도통 내려가질 않았다. 돌덩이라도 들어앉은 기분이었다. 매일이 그러했다.



지난 주말 첫째 아이의 학교 숙제가 있어 오랜만에 외출 계획을 세웠다. 교과서에 나온 나들이 장소 중 한 곳을 방문하는 것이 그녀의 숙제였다. 아이는 산에 올라가고 싶다고 했다. 높은 산은 아니었지만 인적이 드문, 알려지지 않은 산이었다. 아이 둘을 데리고 혼자 산에 올라갔다 내려오는 것이 괜스레 두렵게 느껴졌다. 혹여 좋지 못한 일이라도 생길까 봐. 뉴스에 나오는 그런 일들이 내 앞에 닥칠 수도 있다는 불안감이었다. 남편이 없으니 아이 숙제 하나 하는데도 이런 깊은 고민이 필요하구나. 자꾸만 나의 삶에 그늘이 드리워졌다.



결국 집 근처에 있는 서원에 다녀오기로 했다. 이곳 역시도 한적한 장소에 있었지만 아파트 단지 바로 옆에 위치해 있어 괜찮을 것 같았다. 주차장에 차를 대고 서원으로 걷는 도중 저 멀리에 있는 편의점이 보였다. 깜빡하고 물을 챙겨 오지 않았는데 다행이다 싶었다. 편의점에 들어간 아이들은 어린이 음료를, 나는 생수 한 병을 골랐다. 계산대로 향하며 첫째가 불었다.


"엄마 근데 말차가 뭐야?"


첫째의 검지손가락 끝에는 말차딸기 쿠키가 놓여 있었다. 속으로 ' 별 걸 다 섞네.'라고 생각한 순간 계산대에서 사장님이 대답했다.


"말차? 그거 말이 먹는 차잖아. 하하하."


일순 공기가 싸해졌다. 말차가 말이 먹는 차라니. 대체 저게 무슨 말인가 싶었다. 아니 말인가 방군가 싶었다. 그리고 잠시의 정적 뒤 빵 터져버렸다. 사장님의 호탕한 웃음소리에 그만 전염되어 버렸다. 우린 함께 껄껄거리며 웃었다. 눈물이 쏙 빠지는지도 모르고.


일명 아재개그. 사장님의 하이개그가 나를 웃겼다. 지금 생각해 보니 그런 개그에 웃었다는 게 조금 자존심은 상하긴 하지만 진심으로 웃겨서 웃었다. 편의점을 나서며 마음이 따스해졌다. 차갑던 공기가 안온하게 내 심장을 감싸안는 기분이었다. 얼음장 같던 심장이 뭉근히 달아올랐다.



얼마 전 집들이를 갔다가 우연히 발견한 작은 꽃 하나가 생각났다. 단지 내 돌계단을 만들어 놨는데 그 틈 사이 이름 모를 꽃이 활짝 피어 있었다. 마치 " 나 여기 있어요."하고 말하는 것 같았다. 척박한 그 환경에서 어떻게든 살아남아 결국 꽃을 피워냈다. 작은 풀꽃에서 거대한 경외감이 느껴졌다.


돌 틈 사이로도 꽃은 피어난다. 절대 살아남을 수 없을 줄 알았는데 어떻게든 방법을 찾고 꽃을 피워낸다. 사람도 그렇다. 살고자 하는 의지만 있다면 길은 분명 열릴 것이다. 비록 그 길이 지름길이 아닐지라도 이따금씩 하하호호 웃고 떠들며 행복을 느낄 수 있다면 그 길은 옳다고, 제법 잘 살아가고 있는 거라고 그렇게 말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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