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계절
책을 읽을 겸 집을 나와 카페로 나서는 길. 추운 겨울이 지나고 꽃 피는 봄이 내 손 끝에 찾아왔던 게 엊그제 같은데, 문득 코 끝에 초여름 냄새가 스쳤다. 그 계절의 냄새에 놀라 하늘을 향해 고개를 들었고 내 눈에 들어온, 녹음. 초여름의 푸르름.
어쩌면 나는 1년간 이 푸르름을 기다리며 사는 건지도 모르겠다. 내가 눈이 부시게 푸르른 이 계절을 기다리듯, 누군가는 흐드러진 벚꽃의 계절을, 누군가는 빨강 노랑으로 물든 세상의 계절을, 누군가는 새하얀 눈꽃으로 뒤덮인 계절을 기다릴지도.
그 계절의 의미는, 우리 각자의 마음속에 뿌리내린 추억들 혹은 감정들이기에 어떤 계절이 더 좋다고 쉽게 얘기할 수 없다. 내게 초여름의 푸르름은, 10대의 희망이었고 20대의 사랑이었고 30대의 시작이었다. 자주 종종, 나는 초여름이 찾아올 때면, 들뜬 가슴이 설레는 통에 약간의 불면증이 찾아오곤 했다. 물론, 올해도 어김없이.
열여덟 살의 그 계절.
늘 학교가 답답하다고 여기면서도, 아침 8시부터 저녁 10시까지 학교에 있어야 했던 그 시절의 나는, 교실 창문 밖에 있는 세상을 내다보기를 좋아했다.
창문 너머의 세상을 물끄러미 내다보는 것이 어쩌면 그 시절 내게 가장 위로가 되었던 일이라고 이야길 한다면, 그 시절의 내가 너무 시시한 걸까. 그 시절의 나는 창문 너머에 보이는 고속도로를 빠르게 지나는 차들을 보며, 나도 보이지 않는 저 어딘가의 세상으로 떠나보는 상상을 하곤 했다. 그리고 창문 너머의 울창한 녹음을 보며, 눈이 부시게 아름다운 나의 20대를 꿈꿔보기도 했다. 꽃이 피고 지는 것보다 녹음의 푸르름이 더 오래간 찬란하게 느껴져, 그 푸르름이 내게는 희망으로 다가왔던 것 같다.
누군가는 모두가 겪는 당연한 고등학생의 삶이라고 얘기할 수도 있겠지만, 그 과정에서 느끼는 힘듦은 모두 다른 거니까. 우리가 느끼는 그 시절의 삶의 무게도, 위로가 되어주는 일도 결국 다 다른 거니까.
그래서 나는 내 아이가 인생의 고비고비에서 힘듦을 얘기할 때, 결코 코웃음 치며 쉽게 얘기하지 않을 작정이다. 나는 지나왔기에 쉬워 보이는 그녀의 삶의 무게를 감히 쉽게 얘기할 권리가 내게는 없으니까.
스물다섯 살의 그 계절.
어쩌면 내게 첫 연애는 아닐지라도, 사랑이 혹은 이별이 두려워 꽤 오래간 연애를 하지 않았기에, 스물다섯 초여름 막 연애를 시작하려 했을 때. 이 시절의 마음의 잔향이 참 오랫동안 남았다. 사실 연애를 오래 쉰 탓에, 나는 이성을 만나고 싶다는 마음 또한 없었다. 그저 불투명한 나의 미래에 대한 고민만이 머릿속에 가득했다. 그러던 내게 갑작스럽게 찾아온 만남이었다.
정확히 말하면 그를 처음 만났을 때 그는 절대 내 스타일이 아니라, 우리가 사귀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그런데 그가 보인 진심과 정성에, 내 마음에 걸어둔 빗장이 풀리다 못해 그렇게 빨리 그에게 마음을 열어버릴 줄이야. 그 감정을 알아차렸을 때가, 지금 딱 이 계절이었다. 온 세상이 초여름의 싱그러운 냄새로 가득하고, 녹음으로 눈부신.
물론 지금 내 옆에 있는 남편이, 25살의 그는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계절이 되면 어김없이 그때 그 시절이 떠오른다. 정확히 말하면 그가 떠오르고 그리운 게 아니라, 새롭게 시작한 사랑이 준 설렘을 온몸으로 꽉 껴안던 그때의 내가 그립다. 앞뒤 재지 않고 계산하지 않고, 오롯이 그 감정에 충실했던 25살의 푸르름. 어쩌면 나의 인생에서 이토록 눈부신 순간이 또 있을까. 그 시절의 나는 사랑이라는 감정으로 그렇게 반짝거렸다.
서른 살의 그 계절.
아이를 낳고 한동안은 내 인생이 끝난 것만 같은 감정에, 자다가도 문득 서글픔이 몰려왔다. 지금 생각하면 산후우울증 비슷한 어떤 감정이 나도 모른 채 지나갔던 게 아닐까. 내가 그 감정을 정확히 몰랐고 뭐라고 입 밖으로 표현하지 못했을 뿐.
스물아홉에 엄마가 되었을 때, 왠지 엄마로서의 내 삶만 남아버린 것만 같았다. 과연 내가 어떤 새로운 도전을 할 수 있을까. 그저 아이의 엄마로 아이가 잘 자라도록 보육하는 것이, 내게 주어진 삶이 아닐까 하고. 물론 아이를 잘 키우는 것만큼 의미 있는 일도 없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안다. 그럼에도 불현듯 헛헛한 마음이 찾아올 때면, 눈이 매워져 혼났다. 누군가에게 이런 얘기를 한다면 엄살 피운단 소리를 들을까, 복에 겨운 소리를 한다고 핀잔을 들을까 싶어 혼자 눈물을 훔쳐내곤 했다.
그렇게 아이의 첫 돌이 지나고 나는 서른이 되었다. 1년간 전혀 없던 내 시간에 대한 보답으로 혹은 서른의 인생에 새로운 활력을 갖기 위해 유럽 여행을 준비했다. 그때가 바로, 지금 이 계절이었다. 온 세상이 푸르름으로 물든 그때, 열여덟 소녀처럼 나는 다시 희망을 보았다. 나란 사람으로 살 수 있는 삶이 끝난 게 아니라, 서른에 다시 시작하고 있다는 것을. 나는 여전히 젊고 충분히 빛나는 청춘이라는 것을.
초여름은 내게 희망이고 사랑이고 시작이다. 이 계절의 푸르름은 내가 살아갈 삶의 동력이 되어준다. 지금 당신의 마음에 피어난 계절은 언제일까.
별 거 아닌 듯, 어김없이 우리에게 찾아오는 그 계절 속에서, 우리는 뜻하지 않게 위로를 만나기도 한다.
완전한 봄도 여름도 아닌 계절에서. 오늘도, 어쩌다 사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