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어디쯤에선가

뜻밖에 찾아든 모바일 청첩장

by 안개꽃





오늘 아침 오랜만에 친구 N에게 연락이 왔다. N은 나에겐 몇 없는 남자 사람 친구다. 사실 결혼을 하고선 이성의 친구들과 자연스레 거리가 생기며 멀어졌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그냥 그것이 이성의 친구인 배우자에 대한 예의라듯이.

그런데 갑작스러운 친구의 연락에 반가울 겨를도 없이, 친구가 다음 주에 결혼을 한다고 얘기를 하는 것이 아닌가. 다음 주에 결혼식이 있다며 꼭 보러 오라는 친구의 말이, 어딘지 조금 섭섭했다고 하면 내가 속 좁은 사람인 걸까. 당장 다음 주 예식인데 1주일 전에 연락을 해오니 정말 오라는 것인지 아닌지 헷갈리는 나의 마음에, 내가 이젠 복잡한 어른이 되어버린 걸까 싶기도 했다. 적어도 1달 전쯤 내게 미리 연락을 해줬더라면 좋았을 텐데 하고 아쉬움이 남았지만 그건 이미 어쩔 수 없는 터.


그리곤 내가 결혼할 때 다른 친구에게 이런 속상한 마음이 들게 행동하지는 않았는지 되돌아보았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친구가 많지 않은 나는 친구들을 직접 만나 청첩장을 주고 이야기를 전했다. 초대를 받는 입장에서도 모바일 청첩장보다는 만나서 얼굴을 보고 청첩장을 받는 것이, 더 의미 있게 다가온다. 내가 구식인 사람이라 그런 걸 수도 있겠지만, 어딘지 모바일로 건네진 청첩장은 정이 없게 느껴지니까.

친구의 모바일 청첩장 속 결혼사진을 보며, 결혼을 앞두고 있던 내가 떠올랐다.
내가 과연 결혼해서 잘 살 수 있을까 싶은 두려움 반, 지금의 남편과 평생을 함께 할 수 있다는 기쁨 반으로 뒤엉킨 2달 간의 시간. 사실 결혼을 하고 살아간다는 것은, 연애의 연장선이 아니라 아주아주 별개의 새로운 길이 열리는 것 같다고 생각한다. (물론 이 사실을 안 건, 결혼을 하고 나서라는 것이 함정이지만) 연애에서 잘 맞는다고 결혼해서 잘 맞는다는 보장은 또 없는 것이다. 나와 남편이 그랬으니까.

결혼하고 약 4년간 죽자고 싸워도 보고 울어도 보고 힘든 시간을 보내고, 최근에서야 서로에 대한 인정이 이루어졌다. 나란 사람에 대한 이해, 남편이란 사람에 대한 이해. 서로에 대해 일련의 이해가 이루어지고 나서야 우리의 전쟁은 멈출 수 있었다. 물론 살아가면서 또 싸우고 울 일들이 생기겠지만, 내가 될 수 없는 배우자에 대한 이해에서부터 결혼 생활은 다시 시작된다. 살다 보면 서로 닮아간다고들 하지만 그렇게 되려면 얼마나 더 투쟁하고 울어야 하는가. 나를 닮아 변화할 남편 혹은 아내에 대한 기대보다는, 그에 대해 순수하게 이해를 하고 존중하는 편이 나를 위해서도 더 나은 선택이라는 것을 뒤늦게서야 알았다.

결혼할 당시 결혼에 대해 아는 것이 거의 없던 나는, 사실 주변에 결혼한 친구들조차 거의 없었다. 아무것도 모른 채 시집을 가, 몸소 깨지기도 하고 줘 터지는 심정을 느껴가며 깨달은 것이다. 연애와 결혼은 본질적으로 너무나 달라서, 연애를 한 기간이 혹은 연애 때의 궁합이 나의 결혼 생활을 보장해줄 순 없다는 것.

결혼을 하고부터 바로, 결혼으로 발생하는 새로운 가족(가풍), 배우자와 나의 경제관, 육아에 대한 가치관 등등이 현실적으로 다가온다. 예를 들면, 나는 결혼을 하고 자유분방한 우리 집과는 다르게 친척들과의 모임이나 주변 친지들의 눈을 의식해야 하는 시댁의 가풍이 처음에 참 적응이 안되었다. 그래서 시댁 행사에만 가면 가시방석이 되었는데, 또 그런 나의 모습이 어머님 눈에는 탐탁지 않아 다른 집 며느리들과 비교되기 일쑤였다. 그런 일들이 여러 번 반복되다 보니, 그것이 남편과의 갈등으로까지 번져갔다.


‘너는 왜 이렇게 시댁이라고 하면 무조건 어려워하느냐.’라고 이야기하며 섭섭해하는 남편.
‘오빠는 왜 이렇게 내 편이 되어주지를 못하냐. 내가 비교당할 때 한 번이라도 내 편이 되어줄 순 없나.’라고 항변하며 점점 더 남편마저 미워져 가는 나.

서로 다른 분위기에서 자라 온 두 사람이 만나 살아간다는 것은, 본질적으로 다른 사람임을 받아들이고 이해하는 것에서부터 출발한다. 부모님에게 싫은 소리 한마디 하지 못하는 남편에게 참 많이도 섭섭했었는데, 이젠 그와 내가 자라온 환경의 차이가 있음을 이해하며 그를 바라본다. 물론 속상한 순간이 한 번씩 찾아오지 않는다고 하면 거짓말이지만, 적어도 이젠 그를 내편으로 평생 믿어도 될지 여부를 의심하진 않는다. 이젠 나를 위해 방패가 되어줄 남편의 모습을 기대하지 않으니 실망도 하지 않는다고 해야 할까. 남편의 입장에서도 나에게 분명 그런 부분이 있을 터.

결혼을 하는 친구들을 만나면 진심으로 결혼을 축하하면서도, 늘 마음 한편에선 ‘조금 더 천천히 하는 게 좋을 게 결혼이야.’라고 이야기하곤 한다. 그만큼 연애보다 훨씬 더 많은 이해의 순간을 마주하니까. 나의 가치관과 조금 다른 상황과 손을 맞잡아야 하기도 하니까. 그럼에도 결혼을 하고 가정을 꾸리는 것 자체를 부정하고 싶지는 않다.


만약 내가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지 않았더라면, 아마도 나의 생각의 지평이 조금 더 넓어질 수 없었을 거라는 확신이 있으니까. 결혼을 하고 나란 사람을 내면적으로 채워간 부분에 대해서 오롯이 인정하니까.

당신이 결혼을 하게 된다면, 나 자신을 모두 포기하며 상대와 맞추려 하지도 말고, 상대의 색깔을 무시한 채 나와 같아지기를 바라지도 않기를. 결혼은 한 개인과 개인이 만나, 제3의 색깔을 덧입어 가는 과정쯤이라고 얘기할 수 있을테니까. 그 누구의 색깔로도 변할 수 없는 것이 어쩌면, 우리니까.


답이 없이 느껴지는 결혼생활에 지쳐있을 누군가에게. 힘든 결혼생활이 당신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사실이 조금은 위로가 되었기를. 지금도 숱하게 많은 이들이 결혼생활에서 시행착오를 겪어가고 있음을. 그렇게 결혼 어디쯤에선가.






우리의 꽃밭에는 색색의 꽃을 키우고 있으니까. 결혼 어디쯤에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