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짝반짝 빛나는
때로는 아이와 대화를 하며 뜻하지 않게 삶을 배울 때가 있다. 어떤 이들과의 대화보다 아이와의 대화에서 인생의 진리가 더 명확하게 보이기도 한다. 그건 아마도 꾸밈없는 아이의 순수함에, 어른이 되어 우리가 놓치고 있는 진실이 보이는 것은 아닐는지.
얼마 전, 아이가 내 얼굴을 빤히 들여다보았다. 정말이지 내 얼굴이 종이라면 뚫어질 정도로 한참을 바라보다가 아이가 성큼 다가와 서로의 얼굴이 코앞에 닿을 거리가 되었다. 그리고 아이는 나를 한참 더 쳐다보다가,
“엄마, 왜 엄마 눈 속에 제가 있죠? 엄마 눈에 내가 살고 있어요.”
순간 아이의 말이 무슨 말이지 싶었지만 금세 아이의 말을 이해하고 나니, 남겨진 아이의 말이 따뜻해서 내 입가에 웃음이 천천히 번져갔다.
“엄마가 너를 사랑해서. 너무너무 사랑해서 네가 엄마 눈에 박혀버렸나 봐. 엄마 마음속에도 눈 속에도 네가 살고 있어.”
“그럼 내 눈에는 엄마가 살아요?”
“그럼. 네 눈에는 지금 엄마가 박혀있는 걸.”
“엄마 눈에 내가 계속 살았으면 좋겠다. 나는 엄마를 너무너무 사랑하는데.”
아이와 이렇게 달달한 대화를 하고 서로 뽀뽀를 나눴다. 아이는 이따금 내게 뽀뽀세례를 하곤 한다. 이마 눈 코 입 볼에 아이가 차례차례 뽀뽀를 해줄 때면 나는 온 세상을 다 가진 기분이 되곤 한다. 내가 아이에게 주는 사랑보다 아이가 내게 주는 사랑이 더 크게 느껴지는 건, 아마도 이런 황홀한 기분 탓이겠지. 아이가 자라서 내게 언제까지 뽀뽀를 해줄지는 몰라도, 지금 이 순간 애틋한 사랑의 감정을 내게 느끼게 해 준다면 그걸로 족하다. 아니 과분하다.
아이의 입에서 나온, 눈 속에 사는 사람. 사랑해서 눈 속에 살고 있는 사람. 그 말이 너무너무 애틋하고 예뻐서 한동안 귓가에서 맴도는 느낌이었다. 우리가 누군가를 사랑하면 그 사람을 눈에도 담고 마음에도 담는 법. 설령 헤어진다 해도 마음속 혹은 눈동자 뒤편에 감춰두고 이따금 꺼내 보는 이가 있기도 하니까.
우리가 사랑하면서 가장 많은 시간을 할애해야 하는 것은 아마도, 서로의 눈동자를 오래오래 마주 보는 것이 아닐까.
이렇게 말하는 것은 참 쉽고 듣기에도 쉬운데, 이 쉽다고 느껴지는 일이 막상 연애를 하고 결혼을 하고 살아갈 때는 쉽지가 않다. 물론 연애 초기에는 서로가 세상의 전부인 것처럼 한시도 눈을 떼지 않고 마주 보며 대화를 나눈다. 그러다 얼마간 시간이 지나면 연인은 만나서도 각자 휴대폰으로 SNS를 보거나 메신저를 주고받는 행위를 하느라, 서로의 눈을 오래간 바라 볼 여유가 없어진다. 그렇게 그의 혹은 그녀의 눈에 내가 잘 살고 있는지 바라 볼 틈이 사라져 버린다.
예전 연애에서 나는 말이 아닌 그의 눈에서 내가 더 이상 살고 있지 않음을 보았고, 그렇게 이별을 직감하던 순간도 있었다. 사랑을 하며 가장 솔직하게 드러나 도저히 숨길 수 없는 건, 바로 이 눈빛이 아닐까. 상대를 미치도록 사랑할 때, 우리는 흔히 눈에서 꿀이 뚝뚝 떨어진다고들 한다. 반대로 사랑이 차갑게 식어버리면 그의 눈빛 또한 차갑게 식어버리고, 그의 눈동자에 더는 내가 없음을 볼 수 있다.
그래서 가능하다면, 당신이 오래오래 상대의 눈을 바라보며 대화를 하고 애틋한 사랑을 이어나가길 바란다. 서로의 눈을 마주하며 지금 당신 앞에 있는 그를 아낌없이 담아두기를. 그러다 헤어져 그와 다시 만날 수 없더라도 눈동자 저편에 남아버린 사랑은, 그대로 또 의미가 있을 테니.
저 멀리 있는 휴대폰 세상을 들여다보느라 정작 내 눈 앞의 소중한 사람을 담아두지 못하는 것이 퍽 아쉽다고 느껴지는 요즘. 그런 의미에선지, 때로는 아날로그 감성이 그립기도 하다. 이렇게 얘기를 하고 있지만 그렇다고 내가 나이를 많이 먹은 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친구들과 손편지를 나누고, 연인 사이에 메신저보다는 만나서 대화를 나누던 그때 그 시절이 그리운 순간이 문득문득 고개를 드니까.
이 글을 읽고 단 한 사람이라도 오늘의 만남을 소중히 여기고, 그의 눈에 사랑하는 이를 오래간 담아둔다면, 그걸로 감사하다. 내 눈 앞에 있는 사람을 진심을 다해 오롯이 담아둔다는 것은, 담아둘 수 있다는 것은 어쩌면 축복일지도 모른다. 우리의 마음이 아직 조금은 순수하고 건강한 축복.
조금은 순수하게, 조금은 따뜻하게 그렇게 하루를 채워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