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하지 않는 것과 싫어하는 것의 차이

괜찮아, 취향과 코드가 다를 뿐이야

by 안개꽃





유치원을 다녀온 아이는 유치원에서 있었던 일들을 쪼르르 나열하며 재잘거리느라 언제나 정신이 없다. 엄마에게 하고 싶은 말을 혹여나 잊을까 옷을 채 갈아입기도 전에 입이 쉬지를 않고 움직인다. 그런 아이의 모습을 보며 나도 어릴 적엔 이렇게 수다스러웠을까 기억을 더듬어본다.


오늘도 어김없이 아이는 하원 후 조잘조잘 이야기를 한다.

"엄마! 요즘 우리 반 여자친구들한텐 아이브가 인기가 제일 많고, 그다음은 뉴진스야. 그런데 남자 친구들은 아이브가 싫대."

"응? 좋아하지 않을 수는 있지만, 굳이 싫어할 필요가 있나?"

"이유는 나도 몰라. 남자애들은 BTS 좋아해."

"음.. 아이브를 싫어하는 게 아니라, 안 좋아하는 거 아닐까?"

"싫어하는 거랑 안 좋아하는 거랑 다른 거야? 차이가 뭐야?"


아이의 질문에, 좋아하지 않는 것과 싫어하는 것의 차이를 생각해 보았다. 아이의 눈높이에서 어떻게 설명해야 좋을지 한참을 고민하다가, 아이가 편의점에 가면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곰젤리는 좋아하는 것, 아이가 먹기조차 거부하는 시금치는 싫어하는 것, 아이가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처럼 여기는 초콜릿은 좋아하지 않는 것이라고 설명해 주었다. 좋아하지 않는 것과 싫어하는 것에는 미묘한 차이가 존재하고, 그것을 구분해서 써야 한다고 덧붙여줬다. 아이는 알듯 말듯한 표정을 지으면서도, 앞으론 자기도 좋아하지 않는 것과 싫어하는 것을 구분 지어 잘 이야기해야겠다고 비장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비장한 표정을 한 아이를 보며, '어른이라고 해서 좋아하지 않는 것과 싫어하는 것의 미묘한 차이를 인지하며 살아갈까.' 속으로 물었다.


아이와의 대화는 그렇게 일단락이 되었는데, 아무래도 내 설명이 한참 부족했던 것 같아서 아이와 대화가 끝난 뒤에도 이 질문은 나를 따라다녔다. 잠자리에 들어 베개에 머리를 뉘이고 곰곰이 다시 생각해 보았다. 우리는 과연 좋아하지 않는 것과 싫어하는 것을 명확하게 인지하며 살아가는 걸까. 가끔은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싫어하는지도 헷갈리며 살아가는데, 좋아하지 않는 것과 싫어하는 것은 더욱 혼재되어 살아가는 게 아닐까 하고.


나는 고부갈등으로 결혼생활 내내 힘들었다. 시댁을 다녀온 뒤엔, 어머님 말이 가슴에 생채기를 남겨 한참을 아파하고 난 뒤에야 상처로 얼룩진 말들을 지워낼 수 있었다. 남편은 시댁을 다녀온 뒤에 힘들어하는 나를 보며 이야기했다. '당신은 다른 사람들보다 말에 예민하고 의미를 생각하는 사람이야. 우리 엄마는 아무런 의도 없이 한 얘기야. 악의 없이 한 말들인데, 마음에 담아두지 마.'


'그래. 내가 한때 드라마 작가를 꿈꾸며 살았던 사람이니까, 다른 사람들보다 단어 하나하나에 더 민감할 수 있지.' 그것조차 부인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다른 사람이 아플 수 있는 말을 하면서, '악의는 없었어'라고 한다면 그 말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나는 어머님의 아픈 말들에 발목을 붙잡힌 채 오도 가도 못하며 생각했었다. 어머님은 분명 나를 싫어하는 것이라고, 그러니 이토록 나를 아프게 하는 것이라고. 그러면 원망의 마음이 스멀스멀 올라와 나를 힘들게 했다. 하지만 좋아하지 않는 것과 싫어하는 것의 차이를 생각하다 보니, 어머님은 나를 싫어하는 게 아니라 좋아하지 않았을 뿐이었던 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내가 어머님께 받은 상처가 쌓이고 쌓이다 보니, 단지 나를 좋아하지 않았을 뿐인데 나를 싫어한다고까지 생각하며 그분의 말에 더 많은 상처를 받은 것은 아닐까.


누군가 내게 상처를 주고 힘들게 할 때면 우리는 늘 생각한다.

'저 사람은 나를 싫어하는 거야. 그런데 대체 왜 나를 싫어하는 거지? 나의 어떤 점이 그렇게 문제인 걸까?'


결국 싫어하는 이유를 내게서 찾으려 하고, 그걸 나의 문제로 끌어들인다. 그러면서 내게 진짜 어떤 문제라도 있는 것처럼, 나의 문제를 찾기 위해 기를 쓴다. 사실 문제 없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그런데 문제를 찾으려 바라보면 바라볼수록 나는 문제 있는 사람이 되고, 자존감은 바닥을 향해 간다.


자책하지 말자. 싫어하는 게 아니라 단지 좋아하지 않는 것일 뿐. 모두가 나를 좋아할 수 없기에, 나를 좋아하지 않을 수 있다. 내가 문제가 있어서가 아니라, 취향이나 코드가 달라서일 확률이 높다. 힘든 관계를 자신의 문제로 끌어들여, 스스로를 갉아먹지 않기를.


나도 더 이상 내게서 문제를 찾지 않으려 한다. 그분은 그저 나와 코드가 맞지 않아 나를 좋아하지 않았을 뿐이라고. 나는 있는 그대로 사랑받을 자격이 있는 사람이라고. 나를 사랑하기 위해 이렇게 또 하나 다짐을 해본다.






괜찮아, 취향과 코드가 다를 뿐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