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과는 중요하지 않아
아이는 올해 여덟 살이 되었고, 생애 첫 앞머리를 잘랐다. 그동안 아이는 내게 앞머리를 자르고 싶다는 뉘앙스를 몇 번이고 풍겨왔으나, 나는 아이의 예쁜 이마가 앞머리로 가려지는 게 아깝다는 생각에,
"너는 이마가 정말 예뻐서, 앞머리 없는 게 훨씬 예뻐"라고 말해주며 아이를 타일렀다.
"엄마, 앞머리가 있으면 불편하겠지?"
뜬금없이 앞머리를 화두로 던지는 아이. 요즘 아이는 이렇게 알게 모르게 '앞머리'를 화두로 던졌다가 이내 다른 이야기로 넘어가곤 했다. 아이는 또래 친구들이 앞머리를 자르고 오면 그것이 내심 부러웠던 것이다. 아이가 나에게 대놓고 이야기한 것은 아니지만, 에둘러 이야기하는 것이 '해보지 않은 것에 대한 호기심과 부러움'이었다. 그 순간 '아차'싶었다. 내가 놓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내 마음을 스치고 지나갔다.
아이들 입장에서는 앞머리를 자르고 그 결과물이 예쁘냐는 것이 아니다. 그저 내가 해보지 않은 것에 대한 궁금함, 내 친구들이 하고 있는 것에 대한 동경일 뿐이지, 그 결과가 정말 내게 잘 어울리고 예쁘냐는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른의 시각에서 나는 '결과'를 생각했던 것이다.
아이는 결과를 내다보며 걱정하지 않는다. 그저 아이는 본인의 감정에 충실하고, 그 과정에서 즐거우면 만족할 줄 안다. 머리를 잘라본 적 없는 내가 집에서 잘라주다 보니, 예상보다 훨씬 짧게 잘린 앞머리를 보면서도, "마음에 들어. 너무 예뻐"를 연발하는 아이.
그런 아이를 보며 우리는 어른이 되면서 과정보다는 결과에 집착하고, 결과에 대한 걱정으로 과정을 즐길 수 없는 사람이 되었다는 것을 다시금 느꼈다. 어쩌면 결과보다 과정에서 내가 느끼는 행복이 더 값질 텐데, 우리는 어른이 되며 과정에서 얻는 행복을 결과에 대한 걱정과 불안에 잠식당해 버린다.
'결과에 대한 걱정으로 과정의 행복을 바라보지 못하는 것은, 우리가 어른이 되면서 겪는 자연스러운 과정인 걸까'생각해 보게 되는 오늘이다.
부디 더 오래간 아이가 결과에 대한 걱정과 불안으로 현재의 행복을 잃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저 '지금 이 순간' 내 마음의 목소리에 귀 기울일 수 있는 사람이 되기를. 남의 시선을 염려하기보다는, 정말 내가 하고 싶은 선택을 할 수 있는 용기 있는 사람이 되기를. 아이의 용기를 지켜주기 위해선, 내가 먼저 아이의 시선에서 아이의 마음을 이해해 주고 응원해줘야 한다. 잊지 말자. 오늘의 이 마음을.
부모로서 부족한 나의 모습을 발견할 때마다 스스로 자책하게 되는 건 어쩔 수 없다. 하지만 그럼에도, 나는 나를 응원한다. 나는 나의 잘못이 무엇인지 깨달을 수 있고, 아이와 눈높이를 맞추기 위해 노력하는 엄마니까. 비록 엉성하지만 한 발 한 발 성장하려 노력하는 엄마니까, 그래도 내일은 더 나은 엄마이자 어른이 될 거라고 스스로를 응원한다.
아이를 재운 밤, 부족한 내 모습에 스스로 자책하며 홀로 눈물을 닦아내는 엄마들에게 응원을 보낸다. 우리는 삼십여 년의(혹은 더 짧게, 더 길게) 세월을 살아오며 삶에 지칠 대로 지쳐 아이의 시선을 잃은 지 오래이기 때문에, 아이의 시선을 온전하게 이해하기 위해선 노력이 필요하고 시행착오를 겪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부족한 나의 모습을 발견하고 너무 오래는 자책하지 않기를. 반성 뒤에 조금씩 성장해 가면 되니까, 그러면 분명 내일은 오늘보다 조금 더 나은 엄마가 되어있을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