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사람의 말에 우리 휘둘리지 말아요
오늘의 글은 안희연 작가님의 산문집을 읽다가 시작되었다. 좋은 글은 나에게 영감을 주고, 내 삶을 돌아보게 하는 참으로 소중한 존재다.
코알라에게는 코알라의 잔이 있고,
나무늘보에게는 나무늘보의 잔이 있고,
나에게는 나에게 어울리는 잔이 있다는 것.
그것이 운명의 한계라고 오인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우리 모두가 잔의 외형이나 크기로 인해 차별당하거나 파괴당하지 않도록
서로가 서로의 규모를 존중하면서 살 수 있는 세상을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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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희연 [단어의 집]에서
학창 시절의 나는, 학교 창문 밖 너머에 존재하는 어떤 세상에 대해 꿈꾸기를 좋아했던 학생이었다. 그 시절엔 미처 몰랐지만 나란 아이는 꽤나 사색적인 아이였던 것 같다. 내 안으로 깊이 침전되는 것을 좋아했고, 나란 사람의 본질에 대해 고민하며 숱하게 나의 미래에 여행을 다녀오고. 내면을 비집고 들어가 앉아 살펴보는 행위는 즐거웠고, 답답한 학교 생활에서 내가 덜 지칠 수 있게 해 주었던 숨구멍 같은 존재였다. 이렇게 쓰고 보니 예나 지금이나, 나는 나란 사람에 대한 관심이 참 많은 사람인 듯하다.
십 대 때의 나는 서른이 되면 정신적으로나 물리적으로 자리를 잡고 안정을 이뤘을 줄 알았다. 덧붙이자면 내가 꿈꿔왔던 그 길을 걸어가고 있을 줄 알았다. 스무 살 남짓했을 때도 물론 마찬가지. 스물다섯 때도 그러했다. 하지만 나는 스물여덟에 그 길에서 아무런 성취도 이루지 못한 채 결혼을 했다. 결혼을 할 당시에 결혼이 내 고단한 머리를 뉘일 수 있는 일종의 도피처나 휴식처라는 생각 없이 결혼을 했다면 그것은 거짓말일 것이다. 그간의 지친 내 마음을 기대고 싶었던 마음이 컸다. 하지만 이런 내 생각을 아주 비웃기라도 하듯, 결혼은 절대 인생의 고단함을 해결해 줄 도피처나 휴식처가 되어주지 못했다.
나는 제대로 자리를 잡지 못했음에도, 나와 결혼을 하지 않으면 죽을 것 같다던 남편의 성화에 못 이겨 결혼을 하였지만, 시어머님 입장에선 그게 참으로 못마땅했던 터라 결혼생활 내내 형님과 비교당하기 일쑤였다. 아니면 본인의 아들이 외벌이로 힘들게 산다고 한탄 아닌 한탄을 하셨다. 그럴 때면 내 자신이 한없이 초라해졌고 나란 사람은 존재가치가 없는 것처럼 느껴졌다. 내가 선택한 이 길에 대해 그 누구도 원망할 수 없기에, 그 원망은 오롯이 나를 향했다. 자리를 채 잡기도 전에 결혼을 선택한 나에 대한 원망을 가슴 한편에 품은 채 살아가야 했다.
돈벌이를 하지 않아 모진 이야기를 들었기에, 집안일과 육아는 오롯이 내가 해내야 하는 일이라고 은연중에 생각하게 되었다. 그래서 고된 집안일도 육아도 온전히 혼자 해왔다. 그것은 마땅히 내가 해야 할 일이이라고, 스스로도 생각하게 된 것처럼. 그렇다 보니 육아나 집안일을 나 홀로 하는 것에 대한 불만은 크지 않았다. 하지만 상처받는 말들을 듣고 반발했던 처음을 지나고 점점 시간이 흐르면서, 나조차도 나를 그렇게 인식하게 되는 과정이 싫었다. 이대로 더 많은 시간이 흐른다면 정말 나조차 나의 빛나는 장점은 까마득히 잊은 채, 이 세상에 어떤 필요도 없는 사람처럼 느낄 것 같으니까.
우리는 누구나 존재 가치가 있고, 그 만의 장점을 지니고 있다. 나의 존재 가치를 더 의미 있게, 장점을 더욱 빛나게 봐주는 사람이 있고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다. 우리는 때로 다른 이의 가시 돋친 말에 매몰되어 나의 빛을 잃어가기도 한다. 그럴 때, 당신에게 이야기해주고 싶다.
"이 세상에 당신만의 존재 가치는 분명 존재해요. 남들이 갖지 못한 당신의 장점 또한 분명 있구요. 다른 사람의 말에 우리 휘둘리지 말아요. 가시 돋친 말에 우리의 빛을 잃는다면 그건 너무 억울한 일이잖아요. 나 자신을 사랑하며 아껴주며 살아도 부족한 시간 속에서, 나를 원망하거나 자책하게 하는 사람과는 거리를 두세요. 우리의 인생은 소중하고, 빛나기에 충분합니다. 나 자신보다 나를 잘 아는 사람은 이 세상에 없어요. 힘든 이 세상에서 나를 믿고 꽃 한 송이 피워낼 수 있다면, 인생은 그걸로 충분한 걸요."
명절이 코앞으로 다가오고, 많은 이들이 다른 사람의 말에 상처받을까 겁을 먹고 두려워하고 있다. 결혼을 한 사람들은 날 선 시댁 식구들의 말에, 결혼 전인 사람들은 '언제 결혼하냐로 시작해서 나이에 대한 압박에 대한 이야기'를 '너를 위해 하는 이야기야'로 마무리 짓는 친척들의 말에, 흔들리거나 상처받고 싶지 않은 사람들의 이야기는 인터넷 커뮤니티에 빼곡하다.
누구도 나란 사람을 단정 짓지 못하도록, 내 마음을 휘젓지 못하도록, 나를 사랑하는 주문을 잔뜩 외워두고 가자. 나는 나로서 의미 있게 존재하고, 나의 모습을 유지할 때 가장 아름답다는 것을. 만약 끊임없이 남을 판단하고 규정하려 하는 사람이 있다면, 부디 그 사람의 말에 상처받지 않고 그 사람을 멀리하였으면. 나의 영혼을 좀 먹어가면서 유지해야 할 관계란 존재하지 않으니까.
나는 다시 세상 밖으로 나가려 한다. 오랜 시간 집에서 아이만 키우다 다시 세상 밖으로 나가려니 두려움부터 앞서는 게 사실이다. 과연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있을까 하는 두려움에 두 발이 얼어붙은 느낌이다. 하지만 이 두려움을 이겨내고 한 발자국을 뗄 수 있다면, 느리지만 두 발자국 세 발자국 나아갈 수 있으리라. 나 자신을 조금 더 믿어보려 한다. 아이를 키워 본 적 없는 내가 8년이란 시간 동안 열심히 아이를 키워냈으니, 비록 해보지 않았던 일들이지만 지금 다시 시작할 수 있으리라고.
학창 시절의 나는, 과연 나에게 어울리는 길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끊임없는 상념에 사로잡히곤 했었는데, 이 질문의 끝이 삼십 대 중반까지도 나지 않을 줄이야. 이리도 방황이 길 줄은 예상도 못했다. 어쩌면 40대, 50대, 60대에도 이 고민은 계속될지도 모른다. 내가 숨 쉬는 한 방황은 계속될 것만 같다. 새로운 것을 추구하고 다양한 것을 시도해보고 싶은 나의 욕망이, 나이를 먹는다 한들 사라질는지.
앞으로 남은 생에서도 난 이 고민을 더욱 치열하게 하고, 나를 알아가려 한다. 나를 알아가는 과정은 숨이 다하는 날까지 해도 부족할 것만 같으니까. 남들의 섣부른 판단에 휩쓸려 나를 규정짓지 않기를. 오롯이 내가 나를 알아가야 하고 나를 세워가야 하는 것임을 잊지 않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