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이 되는 순간

사랑과 닮은 구석이 있다

by 안개꽃





하루의 일과를 끝내고 침대에 기대어 앉았다. 그리곤 지인들의 sns 게시글에 좋아요를 누르며, 멀리 떨어져 지내고 있는 지인들의 안부를 묻는 것을 대신했다. 그러다 남산 위에서 바라본, 서울의 불빛이 가득 담긴 사진을 보았다. 어둠을 뚫고 나와 서로 뽐내기라도 하듯 반짝거리는 불빛들은 마치 별빛처럼 예뻤다.


남산에서 바라본 서울의 풍경이, 대학시절로 나를 데려가주었다. 나는 고등학교 때부터 막연하게 대학은 무조건 서울로 가야지 다짐했었다. 정확한 이유는 모르겠지만, 내가 태어나 자란 고향은 작게 느껴져 더 넓은 세상에 가서 살고 싶었던 것 같다. 부모님과 선생님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나는 지방 사대가 아닌 서울에 있는 대학교를 선택하고 용기 있게 상경했다. 하지만 서울에 가서 얼마 지나지 않아 현실의 어려움에 무릎이 쏟아지곤 했었다.


지방보다 비싼 방세와 생활 물가를 감당하기에는 내 용돈은 턱없이 부족했고, 저렴한 방을 찾아 여러 번의 이사가 필요했다. 좁디좁은 방 한 칸에 간단한 살림살이들을 넣으면, 내게 맘 편히 쉴 수 있는 공간은 허락되지 않았다. 그 시절 나와 친했던 대학 동기들은 집에서 통학을 하는 친구들이어서, 집으로 돌아가면 안락한 공간에서 쉴 수 있다는 사실이 참 부러웠다.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이 난다. TV에서만 보던 남산 케이블카를 타고 남산에 처음 올라갔던 날이다. 내가 좋아했던 드라마 '내 이름은 김삼순'에 남산 장면이 몇 차례 나왔었기 때문에, 서울에서 가장 가보고 싶었던 장소 중에 한 곳이 바로 남산이었다. 케이블카를 타고 올라가 바라본 서울의 풍경은 기대만큼이나 예뻤다. 해 질 녘 어슴푸레 하늘색이 바뀌는 순간엔, '고등학생 시절 내내 꿈꾸고 바라던 서울에 정말 왔구나'라는 생각에 가슴이 벅차오르는 기분이 들었다. 그러다 내 옆으로 어둠이 내려앉고 서울에 반짝이는 불빛들이 가득 채워지는 순간, 눈물이 툭툭 떨어졌다.


저렇게 허공을 채우고 있는 수많은 불빛 중에 내가 살 집이 없다는 사실이 슬펐고, 내가 선택해서 온 서울살이의 고단함이 나도 모르게 복받쳐 올라왔다. 별빛처럼 반짝이는 불빛들을 바라보며 그저 아름답다고만 생각할 수 있으면 좋을 텐데. 이제는 예쁘다는 생각보다 앞서 현실의 슬픔이 찾아오는 것을 보니, 나도 모르게 '어른'이 되었나 보다고 생각했다.


어쩌면 어른이 된다는 건, 아무런 예고 없이 느닷없이 찾아오는 사랑과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피하고 싶다고 피할 수도, 마주하고 싶다고 마주할 수 도 없는 것. 어른이 되는 시점은 나이에 상관없이 내가 어찌할 수 없음을 받아들이게 되는, 바로 그때인 것 같다.


어릴 때는 많은 선택권을 가진 어른이 하루라도 빨리 되고 싶었는데, 막상 '어른이 되었구나' 스스로 체감하는 순간은 그리 반갑지 않았다. 삶의 무게를 알게 되고, 현실의 고단함을 홀로 삭이고, 나란 인간의 나약함을 받아들이게 되는 순간이니까. 그렇게 우리는 동화를 더 이상 꿈꿀 수 없는 어른이 되어버린다.


그럼에도 어른들이 때로 울고 웃을 수 있는 그런 공간들이 많아지기를 바라본다. 목적만을 쫓고 결과만을 평가하는 사회가 아니라, 어른들도 힘들면 힘들다고 가끔은 응석 부릴 수 있는 사회가 되기를. 혼자 끙끙 앓다가 마음의 병이 깊어지지 않기를. 겉보기엔 완벽해 보여도 그 내면엔 누구나 삶의 부침이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기를. 우리는 어른이 되어도 마음 한 켠에 소녀(소년)를 늘 품고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 두기를.






어른이 되는 시점은, 내가 어찌할 수 없음을 받아들이게 되는, 바로 그 때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