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에게 매달려 6

by 브리

# 그들, 만나다

예전에 루오는 엄마에게 물었던 적이 있다.


“엄마, 이모는 왜 멀리가서 오지 않아? 엄마가 보고 싶지 않대?”

“글쎄다. 물어보지 않아서 나도 모르겠어. 하지만 엄마를 싫어하는 건 아닐 거야.”

“그걸 어떻게 알아?”

“이모는 자기 자신을 참 사랑했어. 그런데 자기랑 똑같이 생긴 나를 싫어할 리가 있겠어?”


그건 세상의 법칙이라는 듯 엄마의 대답은 당당했다. 엄마의 목소리는 확신에 차 있어 한 치의 빈틈도 없었다. 어렸던 루오는 그 확신의 출처가 궁금했다. 엄마는 덧붙였다. '너는 쌍둥이가 아니라서 잘 모를 거야.' 그런데 지금, 수민을 보는 순간 엄마의 말이 맞다는 걸 꺠달았다. 나를 사랑한다면 나와 똑같은 너도 사랑하는 게 당연한 일이었다. 나르키소스가 호수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사랑했던 것처럼 나와 똑같은 존재가 있다면 그건 필생의 사랑이 될 것이다. 그래서 지금 루오는 느닷없이 나타난 수민에게 온 마음이 뺏겨버렸다.


루오는 가느다란 수민의 손목을 꽉 쥐고 놓지 않았다. 응급실 불빛 아래 창백한 얼굴로 서 있던 여자. 자신과 거의 똑같이 생긴 여자. 명원의 말대로 목이 가늘지만 어깨가 반듯해서 묘하게 중성적인 느낌을 주는 여자였다. 루오는 거울을 보는 기분으로 수민을 들여다봤다. 눈이 마주쳤다. 루오는 자신과 똑같은 기분을 상대도 느끼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처음엔 경이, 그 다음엔 호기심.


“누구세요?”


금방 낮아진 목소리가 허스키했다. 루오는 싱긋 웃으며 마스크를 좀 더 내렸다 수민과 비슷한 길이로 다듬어진 머리카락, 수민과 똑같은 위치에 살짝 들어간 보조개. 수민은 홀린 듯 루오를 바라봤고 루오는 웃음이 터져나오려는 걸 참았다.


“안녕. 나는 루오야. 이루오. 나 기억나?”


수민을 찾으러 가야겠다고 결심한 순간부터 연석과 함께 이 병원으로 찾아오기까지 루오는 도파민으로 두근거렸다. 롤러코스터를 타기 직전 느끼는 공포 같기도 했고 큰 연말 무대를 앞둔 긴장감 같기도 했다. 아니면 전설속에 나오는 환상의 동물을 직접 보는 것 같은 흥분일 수도 있다. 수민은 엄마의 이야기속에만 존재하는 사람이었으니까. 뭐가 됐든 간에 수민의 손목을 잡고 있는 지금은 너무 즐거웠다.


“사촌 맞지? 우리?”

“후르 힛타데 두 미 그 해르? (스웨덴어로 내가 여기 있는 거 어떻게 알았어?)”

“어? 뭐라고?”

“나 여기 있는 거 어떻게 찾았어요?”

“그건....”


응급실에서 한 무리의 사람이 나왔다. 루오는 얼굴을 가리느라 수민을 어둠 쪽으로 조금 밀었다. 옆에서 안절부절 둘을 지켜보던 연석이 끼어들었다.


“차로 얼른 돌아가자. 이러다가 사람들 몰릴까 겁난다. 빨리.”


맞는 말이다. 루오는 주위를 둘러보고 망부석처럼 서 있는 수민을 가볍게 당겼다. 수민이 왼쪽 발을 끌며 따라왔다. 루오의 시선이 수민의 발로 향했다. 수민은 발목에 흰 붕대를 둘둘 감고 신발을 대충 껴서 신고 있다. 아! 맞다. 다쳤지? 아래부터 위로 쭉 훑어보자 이마와 두피 경계 쪽에 피딱지도 보인다. 루오는 수민의 어깨에서 가방을 벗겨 연석에게 넘겼다. 그리고 수민을 들쳐 안았다.


“야!”


놀랬지만 반응은 크지 않았다. 수민은 이제 놀랄 힘이 없었다. 수민은 자신의 두 발이 땅에서 떨어지자 본능적으로 루오의 옷을 잡아당겼다. 평소와는 다르게 어설펐다. 안 그래도 어지럽던 참이다. 갑자기 눈 앞에 나타난 나와 닮은 사람. 오늘 벌어진 모든 일의 원인. 어렴풋한 내 사촌. 속이 비어서 그런가? 머리 상처는 별 거 아니랬는데. 그나저나 정말 닮았다. 얼굴이 드러났을 때는 수호인줄 알고 반가워 끌어안을 뻔했다. 아씨. 집 떠나서 별 일을 다 겪으니 이런 감정도 든다. 루오라는 걸 깨달았을 때는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수호의 신용카드를 쓰지 않고도 발목을 치료할 길이 생겼다. 정말 오래간만에 보지만 친적인데 모른 척 하지는 않겠지? 사촌이라는 남자가 굉장히 해살거리고 상냥하게 보여서 의외이긴 했다. 무뚝뚝하거나 냉정한쪽은 아니니 어떻게든 도와주겠지. 이 나라에서 꽤 유명한 거 같으니까 수민을 데려다 팔거나 아니면 난도질을 하진 않을 것도 같고. 머릿속에 생각이 허리케인급으로 휘몰아치는데 제일 중요한 질문을 뺴먹었다.


“어디로 가는 거? 이모는?”


엄마랑 똑같은 얼굴을 보면 안심이 될 것같다. 루오는 수민을 고쳐 안으며 대답했다.


“일단 치료를 마저 끝내야지.”


널찍한 밴 운전석에 올라 연석은 백미러로 뒷좌석에 앉은 한 쌍의 남녀를 주시했다. 루오가 다친 부위를 조심해서 수민의 다리를 안쪽으로 옮겨주는 모습이 다정했다. 정말 너무 닮은 두 사람이다. 처음 봤을때는 너무 놀래서 소리를 지를뻔했다. 오늘 사건이 눈덩이처럼 커져서 결국 아는 기자에게 확인 전화가 왔을 때 이런 결론에 다다를지 몰랐다. 사촌이라니. 진짜 사촌이라니.


회사는 어떻게든 일을 축소시켜야 했다. 그 와중에 루오는 열정적으로 사촌을 데려와야 한다고 주장했다. 어느 병원으로 갔는지는 금방 알 수 있었다. 이미 기자들 사이에 병원 이름이 오고 갔으니까. 루오네 부모님께 연락을 드리고 병원비와 보상에 대해 말해야 하는게 맞는데 루오가 막았다. 일단 자기가 먼저 만나 보겠다나? 이제 겨우 스무살짜리 남자를 믿긴 어렵지만 그쪽 집안 일이라 나설수도 없다. 그래서 오늘 밤은 일단 다른 병원으로 옮기기로 했다. 이런 상황을 잘 이해해주고 소문을 내지 않을 병원이 있었다.


연석은 강북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다시 백미러를 보니 이번에는 루오가 수민의 다친 머리를 보느라 머리카락을 조심스럽게 넘기고 있다. 어쩐지 거슬린다. 루오는 원래 다정한 녀석이고 다정이 자나쳐 문제가 되는 사람이다. 아무 의미 없이 보고 웃어도 상대는 애정으로 착각하게 만드는 따스함이 기본으로 장착되어 있다. 그 때문에 그룹 내에서 가장 어리지만 열애설은 제일 많았다. 그에 비해 똑같이 생겼지만 수민은 야무져보였다. 겉모습은 아이돌이었다. 루오랑 닮았으니 당연하다. 수민은 거기서 좀 더 선이 예쁘고 보드라웠다. 티끌 하나 없는 매끈한 피부와 훌쩍 큰 키가 모델을 하면 딱이었다. 엔터테이먼트 종사자로서 탐나는 외형이다. 그리고 몇 마디 안해봤지만 이런 상황에서 울지 않고 그리 놀라지도 않는 건 담대하다는 증거다. 그것도 마음에 들었다. 지금 이 상황이 아니었다면 명함을 건넸을 게 분명하다.


그러나 지금은 예감이 안 좋다. 루오를 14살때부터 봐 왔다. 연습생 생활 2년후 직접 데뷔시켰고 가족보다 더 가까이 함께 했다. 루오는 누구에게도 얽매이지 않아서 모두에게 다정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그 동안 루오의 마음을 움켜쥔 건 아무것도 없었다.


“형, 얼마나 걸려요?”

“20분? 저기, 수민씨. 식사는 했어요? 배 안고파요?”

“맞다. 수민아. 한국에 와서 뭐뭐 먹었어? 한국에 맛있는 거 많은데.”


수민이 작고 또렷한 목소리로 “샌드위치”라고 대답하자 루오가 탄식을 했다. 연기가 아니라 진짜 안타까워 하는 눈치였다. 정작 수민은 별 생각이 없어 보였는데 말이다.


“형. 명원이 형네 병원에서 배달 시켜도 되죠?”

“지금 시간이 거의 11시인데 병원 측에 실례이지 않을까?”

“우리 특실 쓸 꺼 아니에요?”

“그렇긴 한데.”

“배달시키고 1층에서 받으면 되지. 내가 받으러 갔다 올게요. 허기지면 잠 못 자서 안돼. 수민아, 우리 짜장면 시켜 먹을까? 한국은 한밤중에도 배달 다 돼. 너 짜장면 먹고 싶지?”


야밤에 짜장면. 아이돌 금기 식품 중 하나인 짜장면을 야밤에... 그걸 먹으면 운동시간이 늘어나는데... 운동하는 걸 싫어하는 녀석이... 연석의 머리가 지끈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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