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에게 매달려 7

by 브리

# 명원, 이상야릇해지다


명원의 본가는 노인 관절 전문 병원이다. 강북 어느 곳, 아버지가 원장, 엄마가 부원장, 그리고 사촌 누나가 수간호사인 가족 경영을 하는 중형병원으로 그 방면에서는 나름대로 이름이 있었다. 방금 명원은 사촌 누나인 혜랑에게서 전화를 받았다.


“얘. 루오랑 루오 사촌 막 병원에 들어왔어. 그런데 둘이 똑같이 생겼더라. 둘이 쌍둥이 아니니? 집안에 비밀은 없대? 그런 거 있잖아. 쌍둥이 낳아서 하나를 애 못 낳는 집에 키우라고 주고 이런 거. 너도 보면 깜짝 놀랄 거야. 루오 사촌은 완전 루오 여자 버전이야. 아니 사촌끼리 그렇게 닮을 수 있다는 게 믿어지지 않아. 우리도 좀 닮았으면 좋았을걸. 너랑 나는 완전 다르게 생겼는데.”


수다스러운 거부터가 명원과 혜랑은 달랐다. 명원은 흥분한 혜랑을 달랬다.


“누나. 사람들한테 소문 안 나게 해 줘. 알지? 다른 사람들, 특히 팬들이 병원에 갈 수도 있으니까 특실 쪽으로는 접근 못 하게 해주고.”

“당연하지. 우리 병원은 젊은 애들 오면 바로 눈에 띄어. 그리고 특실은 아예 층이 달라서 평소에는 아무도 안 들어가.”

“루오 사촌은 좀 어때?”

“아까 고모부가 내려와서 살펴봤는데 발목 쪽 근육이 놀라고 상처 입은 거 말고는 괜찮아. 당분간 깁스하고 있는 게 좋고. 내일 아침에 엑스레이 찍어보고 제대로 치료해야지.”

“루오는?”

“자고 갈 기세던데? 특실에 있는 보호자용 침대가 꽤 괜찮아.”


어디서나 쓰러져 잘 자는 루오이긴 하지만 지금 거기서 자는 건 좀 아니지 않나? 사촌이라 그래도 낯선 사람이나 마찬가지인데. 사진 찍히면 어쩌려고. 루오는 어린 만큼 사람을 쉽게 믿는다.


“넌 집에 안 오니? 할머니가 너 주라고 전라도에서 굴비 보냈어. 루오한테 들려 보낼까?”

“아니야. 내가 가지러 갈게.”


전화를 끊고 명원은 작업실에 틀어박혀 밤새 기타를 쳤다. 시간이 나면 다른 멤버들은 주로 게임을 하거나 잠을 자지만 명원은 기타를 갖고 놀았다. 원래 기타는 아버지의 취미였다. 아버지는 퇴근하면 집에 마련한 음악실에 숨어 기타를 치며 피로를 풀었다. 이 취미는 자연스럽게 명원에게로 이어졌다. 여섯 살 때 처음으로 여성용 기타를 잡은 이후 아버지는 손수 아들을 가르쳤고 명원도 곧잘 따라 했다.


아버지는 병원 직원들에게도 기타 모임을 만들어 활동을 장려했다. 기타 동아리는 점점 사람이 늘어 스무 명이 넘었고 그들은 연말에 병원 로비에서 작은 음악회를 열었다. 의자와 악보대만 갖다 놓은 간소한 무대였다. 그리고 이곳이 명원의 첫 번째 무대였다. 나비넥타이를 매고 의젓하게 앉아 작은 손으로 신나게 기타를 연주하는 작은 소년은 환자들의 박수를 받으며 희열을 느꼈다. 매년 빠지지 않고 꼬박꼬박 이 행사에 참여했다. 열 네 살 겨울, 혜랑이 그런 명원의 모습을 촬영해서 유튜브에 올린 영상을 우연히 연예계 관계자 눈에 띄었다. 그것이 아이돌 명원의 출발이었다.


춤을 연습하면서도 명원은 언제나 기타를 잊지 않았다. 이마를 찌푸리고 기타를 연주하는 아버지의 옆 모습은 욕망을 초월한 무아지경이 무엇인지 짐작하게 해주었다. 명원도 그 감각을 느껴보고 싶었다. 절대적인 몰입. 헌신. 그리고 열망. 아이돌 생활도 그 마음의 연장선에 있다. 지금은 전자기타 수업을 따로 듣는 중이다. 지금처럼 휴식기에는 기타에 좀 더 몰두해도 된다. 새벽빛이 어슴푸레 밝아올 무렵, 명원은 기타를 내려놓고 기지개를 켰다. 손목이 무겁다.


밖으로 나가니 언제 돌아온 건지 연석이 긴 소파에 누워 잠들어 있었다. 명원은 그를 깨우지 않으려 조용히 화장실로 들어갔다. 밤새 커피를 마셨더니 입안이 텁텁했다. 주머니에 넣어온 휴대용 양치 도구를 꺼내 맹렬히 치아를 닦기 시작했다. 폐 속에 새 공기를 집어넣자 정신이 맑아졌다. 이대로라면 집에 돌아가도 쉽게 잠들지 못한다. 다시 좀 더 기타를 칠까? 명원은 다시 작업실로 들어가다 그만 연석의 다리를 건드렸다. 연석이 갓 잡아 올린 가물치처럼 푸드덕하며 일어났다.


“형. 미안해요. 내가 실수로 부딪쳤어요”


연석은 손으로 얼굴을 쓸어내리며 고개를 저었다.


“아니야. 잘 됐어. 일어나야 하는 시간이야. 루오 데리러 가야 해.”


연석의 목이 꽉 잠겨 있었다. 명원은 안쓰럽게 그를 바라보다 정수기에서 물을 한잔 따라 주었다.


“루오는 병원에서 잤어요”

“응 어찌나 고집을 피우던지. 오래간만에 만난 사촌이 자기 때문에 다쳤잖아. 신경 쓰일 만하지. ”

“이렇게 일찍 데리러 가야 해요? 좀 더 자고 나중에 데리러 가요.”

“지금 가야 보는 사람도 없고 말도 안 나. 가야지. “


연석은 몹시 피곤해 보였다. 명원은 물끄러미 연석을 보다 말했다.


“형은 좀 쉬어요. 내가 갔다 올게요.”

“네가?”

“네. 집에서 할머니가 생선 부쳐줬다고 가져가래요. 루오 데리고 오는 길에 받아오면 딱 맞아요. 알죠? 우리 할머니 표 생선. 맛있는 거. 엄마 얼굴 본 지도 오래됐고. “

“내가 가서 받아올게.”

“우리 엄마 얼굴도 대신 보고 오려고요?”


연석이 푸 흐흐 웃었다. 명원은 믿을 수 있는 멤버였다. 문제가 될 행동은 아예 하지 않았고 상대방 입장도 생각하고 말했다. 말하자면 루오랑은 완전 달랐다. 교육 잘 받은 양반가 도련님 같은 사람이 명원이었다. 아이돌을 하기엔 너무 점잖아서 데뷔시킬 때 마지막까지 고민했던 멤버기도 했다. 그런 성격 때문에 위로 형이 셋이나 있음에도 명원이 리더가 되었다. 그리고 그건 탁월한 선택이었다. 제일 맏이인 혁민이 기강을 잡고 명원은 전체를 아우르는 모양새가 팀을 잘 굴러가게 했다.


연석은 신뢰 그 자체인 명원을 안 믿을 이유가 없었다. 그는 허락의 말 대신 “차는? 가져왔어?” 하고 물었다. 명원이 주머니에서 차 키를 꺼내 보였다.


시간은 새벽 5시를 넘어가고 있었다. 어둠이 옅어져 푸른빛으로 변했다. 부모님 병원이 보이자 명원은 루오에게 전화를 걸었다. 통화대기 신호가 한참 이어지더니 음성 메시지 함으로 넘어갔다. 아직 자는 모양이다. 병실이 어딘지는 안다. 특실은 딱 하나니까. 주차장에 차를 대며 명원은 다시 전화를 걸었다. 여전히 응답이 없다. 출발하기 전 부모님과 통화를 했다. 부모님은 늘 이 시간대에 일어난다. 명원이 집에 들르겠다고 하자 엄마는 너무 좋아하며 아침밥을 준비해 놓겠다고 하셨다. 루오도 데리고 와서 같이 먹으라고 말씀하셨는데. 전화를 받아야 데리고 가든지 말든지 하지. 명원은 병원 로비에서 한 번 더 전화하고는 그냥 포기했다. 그리고 엘리베이터를 탔다.


특실은 8층에 있다. 1층부터 3층까지는 진료과들이 있고 4층부터 7층까지 병실이다. 그리고 8층에는 특실 하나뿐이다. 한 층을 반으로 나누어 병실과 부대시설로 배치되어 있다. 절반을 병실로 쓰는 호사를 누릴 수 있는 만큼 아무나 입원하지는 않는다. 병실 안에는 보호자 실도 따로 있고 침구와 가구도 최고급이다. 나머지 절반은 특실 환자들을 위한 면접실과 다과실이다. 명원이 알기로는 주로 나이가 많은 국회의원들이나 기업인들이 입원하고 쉬다 간다. 루오 사촌의 경우는 정말 특별대우다.


저벅저벅. 복도를 걸어가는 명원의 발소리가 울렸다. 병실 앞에는 환자의 이름표가 붙어 있다.


에린 수민 안델슨


명원은 속으로 이름을 따라 읽었다. 좋아. 루오 사촌에서 에린 수민 안델슨이 되었네. 에린 수민 안델슨씨가 자고 있을 이 병실에서 어떻게 루오를 끌어내지? 명원은 점점 밝아지는 창밖을 보며 조급함을 느꼈다. 미안하지만 노크를 하고 들어가 루오를 빨리 끌어내오는 게 정답일지도 모른다. 실례이긴 하지만 여긴 병원이고 수시로 간호사가 드나드는 개방 공간이기도 하다. 그렇게 결심한 명원이 노크를 하려고 손을 들었는데, 때마침 문이 드르륵 열렸다. 동시에 습기를 품은 따뜻한 공기가 명원을 덮었다. 그리고 비누 냄새.


명원의 시야에 반들반들한 코가 보였다. 쌍꺼풀이 진 커다란 눈과 이마 위에 흩어진 젖은 머리카락도. 물방울 하나가 귀와 볼 사이를 지나 아래로 굴러떨어졌다. 루오? 아니다. 눈앞의 사람은 루오의 얼굴을 한 루오가 아닌 사람. 루오라면 지금 이 시각에 볼이 저렇게 매끈할 리가 없다. 루오는 남자고 수염이 나니까. 그리고 루오라면 이렇게 낯선 눈으로 명원을 보지 않는다. 그래도 루오랑 너무 닮았다. 명원은 머릿속이 혼란스러워져 자기도 모르게 손가락 하나를 들어 상대의 볼에 갖다 대었다. 부드럽고 따뜻한 피부가 느껴진다. 더불어 상대의 눈이 커다래진 것도 보였다.


“에린 수민 안델슨 씨?”


명원이 중얼거렸다. 상대가 경계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명원은 손가락으로 수민의 볼을 문질렀다. 거칠지 않다. 역시 루오가 아니다. 어디서 다다다 뛰어오는 소리가 들려오더니 벼락같이 똑같은 얼굴이 하나 더 불쑥 나타났다.


“형! 지금 뭐 하는 짓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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