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에게 매달려 4

by 브리

#루오 만나러 가다


루오는 연습실 계단에 앉아 엄마와 통화 중이었다.


”엄마.“

”어머. 루오야. 밥은 먹었어?“


맨날 물어보는 밥 이야기는 빨리 넘기고 얼른 본론으로 들어갔다.


”엄마, 이모한테 아들 하나 딸 하나 있다고 그랬나?“

”갑자기 이모는 왜?“

”그냥. 생각나서. 내가 다섯 살 때 스웨덴으로 갔다며. 맞지?“

”응. 수호랑 수민이. 둘이 진짜 예뻤어. 거기에 너까지 껴서 셋이 있으면 한 가족이냐고 오해도 많이 받았는데.“

”우리가 그렇게 닮았어?“

”수호야 너보다 다섯 살 위니까 그땐 벌써 초등학생이어서 소년티가 났지. 그런데 수민이는 너랑 똑같이 생겼었어. 쌍둥이 같았거든. 어느 날은 약속도 안 했는데 언니도 나도 너희 옷을 똑같이 입힌 거야. 텔레파시가 통한 건지. 그날 중국집에 갔는데 보는 사람마다 눈을 못 떼더라. 둘이 나란히 앉아 있으니까 쌍둥이 인형 같았어.“


엄마는 꿈속을 거니는 것처럼 몽롱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날 찍었다는 사진을 루오도 집에서 본 적이 있다. 이모가 스웨덴으로 떠나기 전 마지막으로 만난 자리였다. 사진을 찍은 사람은 아빠로 사진 속에는 똑같이 생긴 이모와 엄마, 그리고 똑같이 생긴 수호와 수민, 루오가 있었다.


”우리가 그렇게 닮은 건....“

”알잖아. 네 아빠랑 수민이네 아빠도 일란성 쌍둥이니까. 우린 겹 사돈지간이잖아.“


루오는 잘 알고 있었다. 엄마는 스웨덴으로 가 돌아오지 않는 자매를 늘 그리워하며 이런 이야기 저런 이야기를 했으니까. 그리고 그 옆에서 아빠는 난처한 얼굴로 웃었다.


”그런데 그런 거 갑자기 왜 묻니?“

”엄마, 이모랑 연락한 적 있어요?“

”없어. 네 이모가 스웨덴으로 갈 때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거라고 다짐하고 갔어. 한국 쪽으로는 침도 안 뱉을 거라고 그랬는걸. 언니는 워낙 성격이 칼 같아서 한번 아니면 진짜 아니야.“


그 이야기도 대충은 안다. 루오가 태어났을 무렵 이모부, 그러니까 수민의 아버지는 일본에 출장 갔다가 거기서 만난 여자와 사랑에 빠졌다. 이모부는 한국까지 그 여자를 데리고 왔고 이모를 뒷목 잡고 쓰러지게 했다. 이혼 과정은 지지부진하게 길었다. 그 과정에서 분위기가 험악한 부부를 대신해서 자주 만나던 루오네 엄마와 아빠가 그만 사랑에 빠졌다. 이모네 부부가 이혼하는 동시에 루오네 부모님은 결혼했다. 이혼도 이혼이었지만 이 결혼이 이모를 한국을 떠나게 했을 것이다. 세상에 남편과 이혼을 했는데 그 남자와 다시 사돈 간이 되는 일을 누가 견딜 수 있을까?


”혹시 방송에서 이 이야기 쓰는 거 아니지? 그러면 절대 안 되는 거 알지? 나는 괜찮지만 네 아빠가 싫어할 거야. 그리고 네 이모? 난리가 날걸.“


사람들이 들으면 달려들 이야기는 맞다. 루오는 입맛이 썼다. 엄마는 자신의 이야기를 위대한 러브스토리로 여기지만 이모 입장에선 재앙이었다. 그리고 아빠 말에 따르자면 원래도 이모는 엄마와 쌍둥이인 걸 그리 좋아하지 않았다고 했다. 아빠도 이모 이야기를 편안해하지 않았다.


”네 이모한테 딱 한 번 연락한 적 있는데, 그때 기억나지? 수민이네 아빠 돌아가셨을 때. 그때가 3년만인가? 4년만인가? 아무튼, 그런데 아무 말도 안 하고 듣고 있다가 법적인 문제가 있는지 물어보고 없다고 하니까 바로 끊었어. 수호랑 수민이한테 제 아빠 돌아가신 건 말하긴 했는지 몰라.“


루오는 대충 다른 화제로 넘기고 대화를 마무리했다. 엄마는 밥 잘 챙겨 먹으라고 신신당부를 하고 전화를 끊었다. 어두운 계단에 앉아서 루오는 생각에 잠겼다. 엄마한테 말할까 했지만 SNS속 그 애가 그 애인지 정확하지 않았고 한국에 온 게 맞다면 그쪽에서 먼저 엄마에게 연락할 것 같았다. 어쨌거나 일란성 쌍둥이 부모를 둔 수민과 자신은 유전학적으로 거의 똑같고 닮았을 것이 분명했다. 문득 루오는 수민을 보고 싶었다. 기억 속 그 애의 얼굴이 희미하다. 나이가 들고 나서 옛날 앨범을 찾아본 일은 없다. 엄마 말에 따르자면 지금 내 얼굴이랑 비슷하겠지? 루오는 아까 핸드폰 속에서 본 사진을 떠올렸다. 좀 더 찬찬히 볼걸. 스웨덴에 살고 있다니 유럽에 투어를 가면 어떻게 한번 볼 수 있지 않을까?



루오가 연습실로 돌아가려는데 핸드폰이 울렸다. 확인하니 도명이었다. 그는 타 아이돌 그룹 동갑내기 친구였다. 보통 게임을 하자고 연락이 오는데 전화를 받자마자 대뜸 ”괜찮냐?“ 하고 물었다.


”뭐야? 당연히 괜찮지.“

”너 다쳤다며?“

”내가?“

”너 지금 병원 아니야? 강남에서 팬들한테 쫓기다가 넘어져서 119타고 병원으로 실려 갔다면서?“

”... 너 그거 어떻게 알았어?“

”커뮤니티에 시간 순서대로 정리해서 올라왔어. 지금 댓글 난리야. 사생팬들이 아이돌 잡았다고 뒤집어졌어. 너희 회사에서 아무 말도 안 해? 너 괜찮은 거 맞아?“

”야. 일단 끊어.“


루오는 황급하게 연습실 문을 열고 매니저 연석을 찾았다. 그는 여기에 없었다. 멤버들은 핸드폰을 보고 있다가 루오가 들어오자 반색하며 손짓을 했다.


”야. 이리 와 봐, 지금 난리 났어. 아까 거기서 사건이...“

”형! 나 몸이 좀 안 좋아서 그러는데 먼저 들어가도 돼요?“


루오는 연습실 벽에 붙어있는 장식장으로 걸어가 벗어 둔 반지와 목걸이를 다시 걸었다. 과자를 먹고 있던 혁민이 루오를 바라봤다. 조금 전까지 멀쩡했는데 무슨 소리란 말인가. 몸이 안 좋다니?


”이루오. 스탑! 너 먼저 가서 뭐 하려고 그래?“

”몸이 안 좋으니까 병원 가야겠지?“

”갑자기?“

”응. 갑자기.“

”... 야. 너 하지 마.“


루오에게 시선을 떼지 않고 있던 혁민이 목소리를 높였다. 그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아차렸기 때문이다. 지금은 루오와 상관없는, 팬들의 착각이 불러온 사고이지만 루오가 가면 회사도 나서야 한다. 때로는 모른 척하는 게 일을 정리하는 방법이기도 하다. 다른 멤버들도 다 동의하는 듯 입을 꾹 다물었다. 그러나 루오는 연습실 구석에 벗어둔 웃옷을 주워 입었다.


”진짜예요. 나 배가 아프다니까.“

”웃기는 소리.“

”씨. 아프다는데 안 믿고!“

”조금 전까지 멀쩡했는데?“

”신경성. 스트레스받으면 배 아픈 거 몰라요? 나 지금 스트레스받아서 그래요. 아까 먹었던 치킨이 안 좋았나 봐. 병원 가서 수액 하나 맞고 올게요.“

”그냥 손 따면 돼.“

”밖에 나가면 널린 게 병원인데 그런 비과학적인 방법을 쓸 필요가 있나.“


혁민과 루오의 치열한 공방을 지켜보던 명원이 둘 사이로 끼어들었다.


”그러지 말고 솔직하게 말해봐. 병원 가서 뭐 하려고?“


혁민이 어깨를 으쓱했다.


”뭘 물어? 아까 그 사진 속 걔 찾으러 가려는 거지. 병원에 실려 갔다며.“

”그러니까 왜 찾으러 가려는 거냐고?“


루오는 입술을 움찔거렸다. 말을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멤버들은 모두 루오의 입만 바라보았다. 마침내 결심한 듯 루오가 고개를 번쩍 들었다.


”있잖아. 그러니까....“

”루오야!“


갑자기 문이 벌컥 열리고 연석이 들어왔다. 한 손에는 핸드폰을 들고 다른 한 손으로 루오에게 손짓을 해 보였다. 루오는 막 나오려던 말을 꾹 누르고 연석에게로 달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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