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LET us 일탈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곽현 Feb 09. 2022

일탈 하나.

공복에 10km 뛰기+걷기

안 하던 짓 하기 1

>>공복에 10km 뛰기+걷기




제주의 겨울 아침, 그 전날 비까지 온 습하고 우중충한 날, 나는 웬일인지 마구 뛰고 싶었다. 정확하게는 그 전날 밤 그렇게 생각했다. 그러나 눈을 뜬 그 아침, 커튼을 젖히고 본 어두컴컴한 음습함은 웬일로 생각해낸 그것이 말도 안 되는 의욕처럼 느껴졌고 그래 뭣하러 그리 일찍 일어났니. 다시 눕자. 하는 마음에 도달하려고 했다. 창문을 여니 집 앞에 외로이 서 있는 야자나무 한 그루가 더 처량하게 휘청이며 자 보아라 바람이 오늘 이 정도야 감당할 수 있겠어하는 거 같았다. 심지어 전날 밤 먹었던 것들이 소화가 제대로 안 된 탓인지 속도 답답해서 일어나서 으레 들이킨 커피에도 위는 음식을 받아들일 의욕마저 없었다.

전날 밤 오랜만에 내게 전화한 친구는 일 년 전이랑 거의 복사한 듯 비슷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는데 대화는 대략 이렇게 시작한다. '맨날 똑같지 뭐, 별거 있니.' 며칠 전 다른 분께도 들은 말이었는데. 그 밤에 전화를 끊자마자 순간 막 뛰고 싶어졌다. 내가 막 뛴다고 그들의 속이 시원해지는 건 아니지만 뛰고 싶었다.     

여하간 종합적으로 별로인  상태에서 나는 사려니 숲길을 떠올렸다. 만만한  나냐고 사려니가 뭐라 해도  말이 없을 만큼 나는 오르락 내리락이 거의 없는 평탄하 길을 걷고 싶을   길이 가장 먼저 생각난다. 그래 즉흥적으로 생각난 김에 걸어보자고, 먹을 의욕 없으면 그래  됐어하고 백팩에 물만 챙겨서 나섰다.  


그렇게 나선들 그 아침에 뛰어볼 생각은 당최 없었는데(밥도 안 먹고 뭘 뛰기까지 하겠어 했음) 나는 결론적으로 뛰었다. 물론 10km를 다 뛴 건 아니고 한 삼 킬로 정도 뛰었고 나머지를 걸었다. 공복으로.

보통 때 같으면 적당히 걷다가 돌아왔을 텐데 앞으로 가도 뒤로 가도 딱 절반쯤에 도달했을 때부터는 선택의 여지가 없으니 걸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 사람도 없고 그렇담 한번 뛰어볼까 했던 것이었다. 그 길로 내달리기 시작, 의외로 오래 뛰었다. 기분이 무척 좋았고 심지어 실실 웃으며 뛰었다. (누가 보면 정신 나간 줄 알았을 듯)

밥을 안 먹고 이 정도로 에너지를 쓰다니 하면서.. 괜히 비실거리려는 건 내 몸이 아니라 내 마음이 하는 말 같았다.



밥 먹는데 뭘 보냐.



무얼 느꼈나.


1.  나는 내 몸을 언제나 과소평가하였구나. 나는 생각보다 튼튼하구나.

안 먹고 뛰면 나 곧 쓰러질지 몰라하는 말도 안 되는 내 몸에 대한 저평가...

내 몸이 가진 에너지의 max를 완전히 파악하지 못하고 있구나...

얼마나 뛰면 쓰러질까? 궁금;;


2. 위에 음식이 완전히 없는 상태에 대한 두려움이 있었다?

파이팅이 필요할수록 항상 위를 더 꽉꽉 채우려는 습성이 있었나 보아...

소화도 못 시키면서...


3. 공복에 뛰면 기분이 좋아진다.

어느 순간 다다다 뛰다가 하늘로 솟구칠 듯 신이 났다... 공복에 나오는 호르몬의 작용인가 봄?


4. 배 끝까지 숨이 깊게 들어가는 것 같다. 이른 아침 공기가 이런 맑음인지 오랜만에 느낌. 아. 달다.  


5. 가다가 마주친 노루는 내가 움직이면 멈추고 멈추면 움직인다.


6. 무라카미 하루키의 태엽 감는 새에 나오는 새같이 우는 새가 있구나. 깍깍 거리는 까마귀들 사이에 끼기긱 하는 소리를 내는 존재에 그 소설이 떠올랐음. 작가가 상상해서 쓴 게 아니구나 했음


7. 몸을 움직이니 의외로 선명한 생각들이 들어온다.

갑자기 이거 하고 싶어. 저거 하고 싶어. 하는 아이디어들이 떠올랐다.

정신이 복잡할 땐 몸을 움직여야겠다.




+ 일탈 매거진에 글 업데이트하실 분들은 형식 제한 없으니 간단하게 쓰셔도 돼요.

'나 이런 거 해봤는데 몸과 마음에 이런 것들이 느껴지더라.' 이게 요지예요. 제가 워낙 주절거리는 거 좋아해서 서론이 길 수가 있답니다. 각자 프리스타일로.


++ 어쩌다 쓰셔도 되니 매거진 편하게 이용해 주세요. 쓰고 싶을 때 쓰지만 같이 발행하는 사람들 있으면 더 써질 것 같아요. 기록의 효과도 있고요. 하다가 어떤 형식이나 흐름이 생기면 다른 것들을 생각해 볼게요.


+++ 소박한 일탈, 창의적 일탈 다 좋습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일탈을 권장합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