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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yun Feb 17. 2022

일탈 둘.

말 타기(빠른 속도 내기)

안 하던 짓 하기 2

>>말 타기(빠른 속도 내기)




<서론>

서울에서 며칠을 보내고 다시 제주로 돌아왔다. 돌아오자마자 아주 오랜만에 만난 언니는 서울에서 휴가로 제주에 왔다. 갑자기 내가 원래 어디에 속해 있던 건지 약간 헷갈리면서 여행지에서 만난 듯 언니와 재미나게 수다를 떨었다. 학교 선생님인 언니는 보수적인 환경에서 자랐고, 또 비슷한 환경에서 일하고 있으나 삶의 활력을 스스로 찾아 이것저것 해본 것들이 너무도 많은데 그 덕에 이야기는 참 풍성했다. 언니가 관심 있어서 배운 것들, 여행을 통한 경험은 선생님이라는 사회적 역할, 직업의 테두리에서 언니가 더 발산하지 못하는 감정들을 꺼내 주기도 하고 그녀의 매력을 만들어주는 생기가 되는 것도 같다. 기회가 된다면 더 듣고 싶었다! 언니의 브라질, 아르헨티나 에피소드를 듣다가 나의 쿠바로 넘어갔는데 난 언니한테 말 탄 에피소드를 그렇게도 신나게 이야기했다. 음. 그러고 보니 난 쿠바에서 많은 일탈(평소 안 하던 짓)을 한 듯한데 그중 하나가 되겠다. 아드레날린이 치솟던 말 타기 체험!



<본론>

쿠바 아바나에서 돈을 털린 후 절망적 심정으로 트리니다드로 온 난 당시 참 좋은 쿠바 가족을 만났다. 레오와 야미 부부. 사실 그들이랑 나랑 몇 살 차이도 안 났는데 거의 자식 보살피듯 나를 챙겨주었다. 그들이 하는 카사에 머물면서 기운을 충전하고 있을 무렵 하루는 말을 타기로 했다. 대학 시절 프랑스 시골에서 어설프게나마 말을 타 본 경험이 있긴 했지만 그땐 가는지 서 있는지 모를 정도로 천-천히 살랑살랑 산길을 산책했었다. 몽골 초원을 막 내달리지는 못하더라도 좀 달려보고 싶은 생각은 있었지만 속도를 내는 것에 대한 두려움은 말이 약간만 다른 패턴의 움직임을 보여도 날 공포스럽게 만들었다. 그 기억이 떠올랐지만 내가 초보인줄 아는데 알아서 잘해주시겠지 하며 믿고 레오 모자까지 빌려 쓰고 씐나게 나섰다.


그 코스는 한 시간 반 정도 말을 타고 가서 중간에 커피 농장, 사탕수수 농장도 들르고 계곡 호수에서 수영도 하고 같은 길을 말을 타고 돌아오는 코스였다. 그날 그 업체에서 나온 남자는 쿠바 사람답게 보자마자 온갖 오글거리는 칭찬을 쏟아부으며 참으로 스윗하게 한 시간 반 코스를 잘 인도해 주었다. (구라일지언정 내가 되게 치명적으로 아름다운 여자가 된 것 같은 느낌을 갖게 해 준다.ㅎ) 말이 냅다 뛰지 못하게 계속 워워하며 잘 잡아주니 속도가 날 일도 없고 얼굴에 닿는 바람에 시원함이라고는 찾을 수 없을 지경으로 덥고 땀이 줄줄 흐른다.

그런데 그 분위기가 반전된 것은 점심 식사 때이다. 점심 식사가 분명 포함된 금액이라고 해서 사전에 지불했는데 점심때 또 돈을 내라는 것이다. 보통 때 같으면 그냥 속은 셈 치고 낼 만도 하나 그날은 너무 괘씸하게 생각되었고 정확하게 따질 건 따져야겠다고 생각했다. 결국 난 돈을 다 내지도 않고 팁도 주지 않았고 그 덕에? 돌아오는 길을 색다르게 올 수 있었다. 그렇게 냅다 달려보고 싶은 소원을 이룬 것이다. 화가 난 남자는 그냥 내달렸고 내 말도 같이 내달렸는데 이러다 떨어지는 거 아니야 싶은 순간이 있었으나 다행히 죽지 않고 그 분노의 질주를 함께 했다. 물론 제대로 배우지 않은 상태에서 위험천만한 일이겠으나 쿠바였기에 가능하지 않았나;; 생각한다. 어느 순간 장대비까지 내려서 눈을 제대로 뜰 수 없었고 골반도 다리도 떨어져 나갈듯 아픈데 멈추면 나를 버리고 갈 거 같아서-.- 죽자 사자 매달려 있었다. 너무도 무서운 가운데 해방감이 느껴지는 묘한 시점이 있었는데 말이 이대로 나를 던져 버릴 것 같지는 않아. 하는 믿음? 같은 것이 올라왔다. 갈 때 한 시간 반 걸린 길을 그 절반도 안 걸려 도착했던 것 같다.

여하간 난 죽지 않았다. 그 후유증으로 며칠 누워있었으나 앓아누워서도 참 재밌었다 생각했다. -.-



일탈로 느낀 것, 나의 통찰<<


1. 나의 몸은 아무 일도 없는 안정 상태를 편하게 느끼나 안 그런 상태에 대한 궁금증이 있다. 속도를 내는 것이 두려우면서도 어찌 되나 보고 싶은 마음이 있다.  


2. 인간은 본능적으로 자신의 생존에 위협을 받는 상황을 피하려고 하나 그것을 역행하는 경험을 하고 싶은 욕구가 있다면 왜 일까. 생각해 보았다.


3. 두려움에도 불구하고 경험해 본 결과 아드레날린이 솟구칠 때는 말과 세상이 나와 붙어있다는 묘한 느낌이 들었다?


4. 안 떨어지려고 애쓸 때는 말과 세상이 무서웠는데 에라 모르겠다의 심정이 되었을 때는 그 상황에 대한 적극적 받아들임, 거기에서 파생하는 이상한 믿음? 같은 것이 올라왔다.


5. 만약 내가 여기서 죽는다면 나는 무엇이 억울할까. 뭘 못해봐서 후회할까. 그 난리통에도 뭐 이런 생각들을 진지하게 해 봤다.

   

6. 그 쿠바 남자의 달달함은 참 비즈니스였구나. 아


7. 언젠가 몽골 초원을 말을 타고 달려보고 싶다. 마음은 거의 뮬란이었는데. 쓰읍.





+ 일탈 매거진은 앞으로의 일탈, 과거의 일탈, 비현실적이지만 하고 싶은 일탈 모두를 다룹니다. 제 무의식에 꺼내지 못했던 일탈들도 천천히 시도해나갈 예정입니다.


++ 누구에게나 열려 있으니 해당 매거진에 글을 같이 발행하실 분은 이야기해 주세요. 다른 분들이 생각하는 일탈 너무도 궁금하여요. ^^

 


https://youtu.be/PgVSbU4Eqk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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