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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곽현 Mar 02. 2022

일탈 넷.

적극적 숨 쉬기

일탈 4.

적극적 숨 쉬기, 온몸으로 호흡하기




지난주부터 내가 좀 적극적으로, 정성 들여서 하고 있는 것 중 하나가 숨 쉬기다.

맨날 쉬는 숨이 뭐 그리 색다른 것이냐고 하겠지만 숨을 쉬면서 내 몸이 어떤 느낌을 갖는지, 그 반응을 세밀하게 본 적은 없었다.

그간 여기저기서 호흡에 대해 주워들은 건 많은데 난 어쩌면 호흡이 주는 평화?를 좀 작위적으로 느꼈던 것 같다.

왜 그런고 하니 나는 숨을 쉬는 행위에 '당연히 찾아와야만 하는' 고요함을 이미 상정하고 그 흐름에 나를 자주 밀어 넣으려고 했다. 내가 이토록 경건하게 숨을 쉬고 있으니 부디 '평화를 주옵소서'를 강력하게 주문처럼 외치는 마음의 상태에 나를 동기화시키려고 했다고 할까. 그래서 외면적으로 동기화는 되었을지언정 문밖을 나서면(-다른 환경으로 가면-) 짜증이 벌컥 나기도 한다는 거다. (말짱 도루묵)


폐포를 실제로 좌악 펼치면 엄청나게 큰 면적을 가지고 있다고 그렇게 배웠던 거 같은데 나의 폐는 얼마나 외부 공기와 잘 만나고 있는 것인지 모르겠지만 평소 난 내가 숨이 그리 길지(깊지) 않다고 생각했다. 하다못해 학창 시절 실기 때문에 배운 플룻도 숨이 짧아가지고 힘드네 어쩌네 죽는소릴 했다. 어차피 할 거면서 숨 탓을 했다. 나는 정말 숨을 깊게 쉴 수 없는 것이었나.


자기 전에 아주 편하게 누워서 들어오는 대로 나가는 대로 자연스러운 호흡을 해보았다.  

평화를 굳이 바라지도 않고 감정을 점잖게 다스려야지 하는 생각도 내려놓고 그냥 몸에서 뭐라고 하는지만 잘 느껴보자라는 취지의 호흡을 거듭한 결과 다른 것들이 느껴졌다.



무얼 느꼈나<<

 


1. '숨을 더 쉬고 싶어. 더 쉬어도 괜찮아.'  


숨이 자연스럽게 들어오고 나가게 내버려 두는 호흡을 한참 하다가 이런 생각이 확 올라왔다.

몸이 아프거나 감정적으로 힘들 때 숨을 생각해보면 가슴이 쪼그라든 숨 쉬기를 하고 있었다. 과거 스트레스를 받으며 일할 때 나는 그런 숨을 쉬고 있다는 것조차 의식하지 못했다. 너무 싫은 상황에선 난 어쩌면 숨을 멈춘 것이 아닐까 싶게 숨을 안 쉬는 듯 쉬고 있었다.

나는 감정의 진폭이 큰 사람이나 통제시켜서 얻는 이익이 컸기에 나름 사회생활에서 잘 조절하고 살았다. 그러나 적극적으로 숨을 쉴수록 내 내면에서는 감정을 더 쓰고 싶어. 그걸 더 느껴서 쏟을 수 있는 일을 하고 싶어.라고 말하고 있었다.  



2. 나의 감정이 모두 소중하다. 설령 안 좋다고 여겨지는 감정조차.


- 호흡을 하는데 평화는커녕 온갖 짜증과 화가 올라오는 날이 있었다. 호흡을 할수록 그 정도가 갈수록 심해졌다. 난 평화를 원하는데 이것들은 뭐지, 너무 불쾌하고 싫은 거다. 벌떡 일어나고 싶었으나 일단 그대로 호흡을 이어가다 보니 어떤 기억이 왔다.


- 짜증과 화에 딸려서 알 수 없는 거대한 불안감이 훅-왔는데 신기하게도 이 감정은 너무 아무 일이 없이 평온하던 어린 시절의 한 단상들과 오버랩이 되었다. 외면적으로 모든 것이 완벽하게 갖춰진 그 안에서 나는 어떤 어려움도 없이 잘 있는데.. 눈을 뜬 그 아침이 팔다리가 잘려 나간 것처럼 무기력한 것이다. 다 갖춰져 있건만 난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 같은 기분. 답답함. 갑자기 숨이 잘 안 쉬어지는 것 같았다. 거기서 놀랍게도 난 평화를 원하는 게 아니라 자극을 원하고 있었다. 나를 움직이게 할.


- 대학원 첫 학기에 무기력했던 강의실 공기가 연달아 떠올랐다. 나의 가장 첫 발제이기도 했던 스칸디나비아 국가의 사회복지모델을 보면서 왠지 나 여기 살면 너무 아무 일이 없어서 아플 거 같다는 생각이 드는 거다. 사회보장체계가 합리적으로 잘 갖줘진, 여성의 정치참여, 복지마저 우수한 그 사회에서 갑자기 화가 잔뜩 난 미친 여자애가 떠올랐다. 삶의 의미를 못 찾고 정처 없이 헤매는.


- 그러다 문득 내가 싫어했던 극적인 감정들이 어쩌면 나를 살도록 밀었다는 느낌이 들었다. 내 삶에서 안전을 보장받지 못하더라도 내가 좋아서 한 것들에서 느낀 나의 감정들, 내가 감당 못할 거라며 두려움에 떨면서 했던 시도, 거기서 받은 온갖 감정의 롤러코스터, 그것이 나를 살렸구나. 그런 생각들이 드니 내 감정이 소중해졌다. 그것이 없으면 난 새로운 경험들을 할 수 없었을 거고 글을 쓰고 나만의 의미를 찾는 일에 의지를 내지 못했을 거다. 그러니 버릴 감정 하나 없네. 윽


3. 갑자기 노래가 부르고 싶었다. 숨 쉬다가 벌떡 일어나 앉아 몇 소절 불러봤다. -.- 즉흥적으로 하고 싶은 것들이 연달아 막 떠올랐다. 


4. 피가 반짝반짝하면서 몸 끝까지 구석구석 잘 도는 느낌이다. 가슴이 할딱이는 게 아니라 몸 전체가 맘을 놓고 숨을 쉰다. 내가 살아있음을, 내가 손을 뻗어 움켜쥘 수 있는 것들을 느끼고 감사했다.


이상 적극적  쉬기 체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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