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걸 스스로 제대로 볼 수 있다면
세상에 태어나서 결핍이 하나도 없는 사람이 있을까? 만약 그런 사람이 있다면, 애석하게도 그 상태를 뛰어넘는 획기적인 발전은 그의 인생에서 경험하긴 어려울 거다. 지금의 삶이 너무도 만족스러운데 굳이 뭐 더 발전을 해 할 테니까.
그런데 가만 보면 겉으로 와 저 이는 대체 뭐가 부족해. 하는 사람도 그 사람 만의 결핍은 있다. 우리는 무조건 금수저면 살맛 날듯 이야기하는데 그 환경이 그 사람에게 모든 걸 준 건 아니다. 나는 남들이 다 부러워하는 사람에게서(흔히 말하는 조건에 비추어볼 때) 타는 듯한 인정욕과 사랑에 대한 끊임없는 갈구를 보기도 한다.
결핍에는 여러 종류가 있겠지만 내가 가장 잘 보이는 타인의 결핍은 '나 괜찮은데?' 하는 사람에게서 느껴지는 결핍이다.(내가 과거 주로 그랬기 때문에 잘 보이는 것 같다) 정말 괜찮다면 참 좋겠으나 감정적으로 안 괜찮은데 괜찮다고... 하거나 나 이 정도 인생이면 꽤나 멋지지 않아라고 자꾸 알리려고 애쓰는 사람. 이런 사람에게서 느껴지는 결핍은 뭔가 굉장히 오랫동안 눌린 감정의 억압이 동반되는 것이라 자신이 스스로 인정하지 않는 이상 좀처럼 밖으로 나쁜 증상?이 나타나는 법도 없다. 좋게 말하면 티가 잘 안난다. (혹여 신체적 증상으로 드러나고 있다면 괜찮은 척하지 마세요. 안 괜찮은 건 안 괜찮은 거다. 약으로 덮으려고 하지 말고 그 감정이 마음이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들여다보면 좋겠다. 보기 싫은 그 감정 상태에 답이 있을 수도 있으니) 가끔 우리는 자신이 그 스트레스 상태가 내 몸과 마음이 괜찮은 상태라고.. 내가 충분히 이겨낼 수 있는 상태라고.. 그렇게 합리화하기도 한다. 진짜 감정적으로 난 아무런 문제가 없으니 그런 지저분한 이야기는 집어치우렴 하는 거다. 바빠 죽겠는데 뭐 그렇게 세심하게 감정까지 돌보며 살 일이냐고 한다. 우리는 참으로 자신에게 가혹한 짓을 하는지 모르게 가혹한 짓을 한다. 저도 모르게 쌓인 부정적 감정, 억누른 감정은 언젠가 몸의 증상으로 드러나기 마련이다. 우리는 진짜 어딘가 제대로 고장 나야 그제사 들여다본다. 그도 증상이 있는 부위지 정작 켜켜이 쌓인 감정, 무의식을 들여다보는 건 아니다. 맨날 같이 좋은 의사, 약을 찾아다니는데 정작 자신이 그 의식을 바라보고 놔줄 생각은 안 해본다.
나의 경우, 나의 감정적 억압(과거 나를 아는 사람들이 보면 뭐 그리 특별한 것이 있다고 니가..이럴수도 있음)이 발가벗겨져서 요즘 수면 위로 둥둥 뜨면서... 아우씨 나 이렇게 눌린 게 많은 인간이었어. 다시 나를 조망하고 있다. 끊임없이 조망한다. 네버엔딩이야ㅎㅎ
물리적으로 버림을 받은 것과 같이 아주 깊은 트라우마가 될 만한 상처도 한 인간에게 사랑에 대한 신뢰, 믿음을 형성하기 어렵게 만들지만, 우리가 인식하지도 못하는 '조건적인 사랑' 역시 사랑의 결핍을 주는 것이라고 느낀다. 놀라운 건 이게 아주 세련되고 교묘한 방식이라 스스로도 알아채기 어렵다는데 문제가 있다.
너는 애초에 물 먹을 자격이 없어. 하는 것만큼 너가 이렇게 하면 마르지 않는 오아시스를 '내가' 제공할게 하는 것은 말하자면 더 애가 타게 목마른 경험을 제공한다는 거다. 물을 마시지만 어딘가 모르게 갈증이 난다. 물론 직접적으로 '이렇게란' 조건을 걸지 않기에 사랑을 주는 사람, 받는 사람 모두 인식하지도 못한 채 서로의 사랑 속에 숨겨진 결핍을 보지 못한다. 가랑비에 옷 젖듯이. 부모 자식 간이 대표적인데 세상에서 처음 만나는 그들에게서 우리는 정말 결핍 없는 사랑, 조건 없는 사랑을 배운 것일까. 그런 사랑을 주고 있는가. 그 온전함은 사실 내가 나에게 줄 수 있는 것이다. 타인이 아무리 줘도 내가 나에게 줄 수 없는 그 공허함은 채울 수가 없다.
그런데 난 그 결핍과 실패라고 여길 삶의 고통이 그 사람에게 절대 독이 아니라고.. 느낀다. 뭐가 됐든 남들이 어머 그것 참 안 됐네요.. 할 만한 것들 말이다. 그걸 잘 이겨내고 나온다면, 그 사람은 좁게는 주변인에게 넓게는 세상에 무언가를 줄 수 있는 사람이 되기 때문이다. 자신의 경험을 근육으로 만든 사람은 그 근육이 없거나 어찌 쓰는 지 몰라서 비슷하게 고통을 받는 사람에게 무언가를 줄 수 있다. 그리고 그 근육은 워낙 독특하게 그 사람에 맞게 새겨져서 남들이 하루 이틀 운동한다고 가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런 경험을 가진 사람, 삶의 지혜를 가진 사람은 그 존재에 그저 감사하게 된다. 오늘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그 얼굴들을 떠올려 보는데 갑자기 또 감격의 울컥.(이놈의 울컥도 병이다ㅎ) 어둠을 지나온 사람이 말하는 빛은 그래서 납득이 된다.
나는 페이지마다 하늘의 푸르름이 스며든 책만을 좋아합니다. 죽음의 어두움을 이미 경험한 푸름 말이에요. 나의 문장이 미소 짓고 있다면, 바로 이러한 어둠에서 나왔기 때문입니다. 나는 나를 한없이 끌어당기는 우울에서 벗어나려고 발버둥 치며 살아왔습니다. 많은 대가를 치르고 나서야 이 미소를 얻었어요. 당신의 주머니에서 떨어진 금화와 같은 이 하늘의 푸르름을 나는 글을 쓰며 당신에게 돌려드리고 있답니다.
크리스티앙 보뱅, 환희의 인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