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부. 섬의 기억_무명 3

Puerto Escondido 푸에르토 에스콘디도 (1)

by Iris K HYUN

무명(無名) 3

Puerto Escondido 푸에르토 에스콘디도




살려주세요.



무명 3은 정신이 까마득해졌다. 발이 바닥에 닿지 않는다. 스노클링 장비는 무용지물이 되어 버렸고 숨을 쉴 수 없는 공포에 완전히 잠식당했다. 물을 연거푸 마셨고 경직된 몸은 의미 없는 움직임을 반복했다. 자신이 물에 뜰 수 있다는 개념은 완전히 상실했고 죽을지도 모른다는 공포에 몸부림쳤다.


무명 3이 몇 해 전 고요한 홍해 해변에서 겪은 일이다. 두려움에 빠진 사람이라면 이렇게 파도 한 점 없이 잔잔한 곳에서도 얼마든지 죽을 수 있다는 걸 알았다. 지금 이곳 멕시코의 한 해변에서 해가 넘어가는 장면을 바라보다 그때 기억이 스쳤다. 바다가 몸에 닿자 죽음을 선연히 마주한 그때의 감정이 찾아온 거다. 앞서 고양이를 찾은 이들과는 다른 전개였다. 누군가를 만나 눈을 관찰하기도 전에 물이 먼저 기억을 건드렸다. 고양이가 예상할 수 없는 방식으로 무명 3은 기억을 되짚고 있다.



며칠이 지나고 해변을 다시 찾았을 때 무명 3은 설레는 마음을 가진 사람들 사이에 있었다. 새끼 거북이를 방생하려고 모인 사람들이다. 인간의 손을 타는 것조차 조심스러운 여린 생명체를 바다로 보내는 것, 여기 모인 사람들의 미션이다. 조그마한 나무바가지에 담긴 새끼 거북을 본다. 어찌 이리도 작을까. 어떤 세상이 기다리고 있을지 지금은 도무지 상상할 수 없을 아이에게 거대한 바다가 괜찮을까. 살아남을 수 있을까. 걱정이 된다.


선택의 여지가 없다. 바다는 그들의 세상이다. 태어났으니 그 세상을 경험하러 가야 한다.

더 이상 나갈 수 없는 줄을 경계로 사람들은 거북이를 내려놓는다. 알에서 부화하기까지 보호해 줄 수 있었지만 이제 그들에게 해줄 수 있는 건 없다. 여정을 응원하고 축복하는 것 말고는.


열심히 꼬물꼬물 가는 그들을 보자니 어쩐지 애잔하다. 물에 닿기까지도 한 세월 같다. 그들의 걸음으로 보는 그 길은 아주 멀게 느껴진다. 마음 같아선 손으로 확 집어서 물에 어서 닿게 해주고 싶다.

도중에 작은 장애물에도 쉽게 몸이 뒤집힌다. 들이치는 파도에 나동그라지기도 한다. 눈앞에서 새의 먹이가 되는 아이도 있다. 속상한 마음에 모래를 가득 움켜쥐고 새를 향해 던져 보는 사람도 있지만 소용이 없다. 살아서 삶으로 나가는 것보다 죽을 확률이 더 높은 게임에 속수무책으로 놓아둔 사람들은 속절없이 발만 구른다.


어서 가. 넌 할 수 있어.


뒤집혔던 한 아이가 파도를 세차게 맞더니 다시 방향을 잡는다. 양발로 모래를 헤치며 씩씩하게 나간다. 그 걸음걸음 하나가 이렇게도 뭉클한 것인지.

물가에 닿기까지 그 길이 필요하다는 걸 알면서도 힘들었다. 그들의 힘을 믿어주는 그 과정은 손으로 덥석 잡아서 물 위에 내려주는 것보다 어쩌면 훨씬 힘든 일이다.

탄생과 죽음이 공존하는 것 같은 그곳에서 무명 3은 환청처럼 어떤 목소리를 들었다.


태어나기 위해서는 죽어야 해.









며칠 내내 몸 상태가 썩 좋지 않았다. 이렇게 푹푹 찌는 더위에 으슬으슬한 기운이 드는 것이 이상하다. 급격한 날씨 변화에도 아프지 않고 용케 잘 버텼는데 드디어 탈이 나는 것인지. 고양이를 만나서 기억을 찾겠다고 한 것부터가 애초에 잘 못 된 것인지도 모른다. 기억이 돌아올수록 몸이 아프다. 무명 3은 한참을 뒤척이다가 겨우 잠이 들었다. 그리고 꿈을 꾸었다.



아주 컴컴한 길을 걷고 있다.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암흑과도 같은 그 길에는 같이 걷고 있는 이가 있다. 안 보여도 누군지는 느낌으로 알 수 있다. 돌아가신 엄마, 엄마가 함께 걷고 있다. 어차피 보인다고 해도 내가 워낙 어렸을 때 돌아가셔서 느낌으로만 존재하는 그 기억에 오히려 방해가 될 뿐이다. 그런데 엄마는 나를 못 알아보는 건지 아주 남처럼 내게 어떤 말도 하지 않는다. 우리는 그렇게 한참을 말없이 걷는다.

낙엽을 밟고 있는 것인지 걸을 때마다 발밑에서 서걱서걱 그런 비슷한 소리가 난다. 걷고는 있지만 제자리걸음을 하는 것처럼 내가 움직이고 있다는 생각이 전혀 들지 않을 정도로 같은 어둠 속에 존재한다. 스산한 바람이 불어온다. 온몸이 서늘하다 못해 여간 추운 것이 아니다. 이상하다. 이곳은 멕시코가 아닌가? 갑자기 왜 이렇게 춥지? 바람막이로 걸친 겉옷의 지퍼를 목까지 올렸다.



걷다 보니 어렴풋하게 무언가 앞을 막아선 형체가 보인다. 철골로 된 길고 커다란 문이다. 너무 거대해서 위압감이 느껴질 정도다. 버려진 오래된 성이나 대저택으로 연결되는 통로 같기도 하다. 과연 열릴까 하는 마음으로 문을 슬며시 밀었다. 그런데 보기에도 무거워서 좀처럼 움직일 것 같지 않던 큰 문이 마치 깃털이 날리듯 너무나 쉽게 스-윽 열리는 것이 아닌가. 망설임 없이 그 안으로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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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편에 이어집니다.


+소설 속에 모든 사진은 제가 어디선가 찍었던 사진만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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