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uerto Escondido 푸에르토 에스콘디도 (2)
무명(無名) 3
Puerto Escondido 푸에르토 에스콘디도
어두워서 잘 보이지는 않지만 저 멀리 어딘가에서 불빛이 새어 나오고 있다. 이제 희미하나마 주변 사물을 분간할 정도는 된다. 십자가가 여기저기에 드문드문 보이고 규모는 조금씩 다르지만 거의 일정한 크기의 돌들이 흩어져 있다. 자세히 보니 그것들은 모두 무덤이다. 그 행렬이 끝도 없이 이어져 있다. 아 세상에 여긴 공동묘지구나.
어디 있었나 싶었는데 엄마가 내 옆을 스쳐서 지나간다. 부르고 싶은데 목소리가 나오지 않는다. 엄마는 나를 지나쳐 빛이 새어 나오는 방향을 향해 말없이 걷는다. 그 걸음은 아주 단호하다. 나는 마음이 급해졌다. 하지만 몸은 어디 맞은 거 마냥 욱신거리고 숨이 가빠 와서 아무 데라도 주저앉고만 싶다. 머리는 걸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바쁜데 몸은 더 이상 걸을 수가 없다.
엄마- 엄마-
목소리는 밖으로 나오지 않고 입 안에서만 웅웅- 맴돈다. 따라갈 수 없는 지금의 상태가 답답하지만 난 갈 수 없을 것 같다. 결국 따라가길 포기했다. 근처에 이름 모를 어느 묘비 앞에 털썩 주저앉았다. 그 묘는 서양식 대리석으로 마감한 다른 무덤들과 달리 아주 오래된, 세월이 그대로 드러나는 이끼 낀 돌로 되어 있다. 놀라운 건 돌무덤 안이 텅 비어 있다는 거다. 몸이 겨우 들어갈 만한 아주 좁은 공간이다. 난 의아하게 생각하면서도 그곳으로 들어가 누웠다. 어쩌면 이렇게 아늑할 수 있을까. 이젠 추위도 느껴지지 않는다. 그 작은 공간은 마치 엄마의 자궁 같다. 태어나기 전의 아기처럼 옆으로 웅크렸다.
아 따뜻해.
거기서 나를 바라보는 또 다른 존재를 만났다. 아주 익숙한 눈, 검은 밤바다에 반짝이는 빛 같은 눈. 고양이의 질문지는 생각나지 않았다. 너무 익숙해서 보자마자 덥석 안아주고 싶은 그 눈에게 물었다.
당신은 누구인가요?
나는 당신의 어둠입니다.
당신의 존재의 이유는 무언가요?
당신이 존재하니까 존재합니다.
당신은 그러면 존재하지 않아도 된다는 건가요?
네, 아무래도 상관없습니다. 하지만 당신이 지금 나를 기억하는 한 존재할 수밖에 없습니다.
당신은 소원이 있나요?
나에게서 당신이 자유로워지면 좋겠습니다.
자유로워진다는 게 무슨 의미지요?
나를 완전히 안아주세요. 그럼 알 수 있을지도요. 여러 번 죽어도 다시 태어날 수 있으니까요.
당신은 나를 어떤 사람으로 느끼나요?
당신은 용기 있는 사람입니다. 죽음을 바로 볼 수 있지요. 그러니 삶이 무언지도 알겠군요.
흰 고양이가 슬그머니 나무에서 내려오더니 앞발로 무명 3을 툭툭 친다. 잠에서 깬 무명 3에게 바로 물었다. 눈을 보았냐는 질문은 건너뛰었다.
당신은 죽음을 기억하고 살겠습니까?
무명 3은 고개를 젓고 온통 밖으로 드러난 나무뿌리에 입을 맞추었다. 고양이는 그녀가 떠난 후 둥근달을 바라보았다. 아주 검은 바다에 난 길이 찬란하게 눈부시다. 노트를 펴고 문장을 적었다.
당신의 존재는 내가 살아야 하는 이유입니다.
+소설 속에 모든 사진은 제가 어디선가 찍었던 사진만 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