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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yun Jul 01. 2023

2부. 섬의 기억_고양이의 꿈 1

몰타 Malta



>고양이의 꿈 1< 


 몰타 Malta  



무명 2가 떠나고 고양이는 꿈을 꿨다. 커피를 마셔도 잠만 잘 온다. 


몰타라는 나라에 대저택에 살고 있다. 꿈속에서도 앞발에 묻은 커피 얼룩은 그대로다. 흡사 오래된 성처럼 보이는 하얀 저택은 지중해 햇살 아래 무척이나 아름다운 외관을 자랑한다. 무엇 하나 허투루 배치된 것이 없는 정원 한가운데는 좌우대칭이 완벽한 대리석 분수가 끝도 없이 물을 뿜어댄다. 

그런데 어찌 된 영문인지 고양이는 그 밖을 좀처럼 나가볼 수 없다. 밖과 다르게 어두침침한 실내에서 주인이 올 때까지 그저 머문다. 따지고 보면 특별히 부족한 건 없고 혼자 노는 것이 어렵지는 않은데 밖으로 나가고 싶다. 지중해가 궁금하다.  

주인은 온화하고 다정한 편이라 집을 뛰쳐나가는 생각을 하는 것 자체가 어쩐지 좀 미안하다. 고운 하얀 털이 잔뜩 더러워져 돌아올 생각을 하면 그만 머리가 어지러워진다. 




어느 날부터인가 검은 고양이 한 마리가 정원을 어슬렁거리고 있다. 문 앞에 웅크리고 앉아 그 모습을 멍하니 보는 게 일과가 되었다. 검은 녀석은 분수대 위로 펄쩍 뛰어올라 함부로 물을 만지고 잔디에 온몸을 굴려 논다. 원체 검은 아이라 더 더러워질 걱정은 안 해도 되겠다. 햇살 아래 벌렁 누운 녀석이 동족처럼 느껴지지 않는다. 무엇보다 자신은 사람의 글자를 읽을 줄 아는 고양이 아닌가. 그런 섬세함을 알 수 없는 검은 녀석은 그저 세상 물정 모르고 뛰어다닐 뿐이다. 

하루는 검은 녀석이 문 앞까지 왔다. 문을 사이에 두고 빤히 쳐다보더니 종이 하나를 문틈으로 밀어 넣었다. 놀라서 몇 발자국 뒤로 물러섰다. 살랑이는 나뭇잎처럼 떨어졌다. 흰 고양이가 있는 세계로.


흰 종이 위에 검은 것, 세상에... 


글자였다. 


그는 글을 쓸 줄 안다. 머리를 쿵 맞은 것처럼 온 세상이 흔들리는 느낌이다.      




밖은 위험한 곳이라고. 넌 여기가 아니면 살 수 없다고 내게 말했지. 하지만 난 두려움을 이기고 새로운 문을 열었고 더 큰 아름다운 세상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어. 그래 나는 네가 말한 대로 쌩쌩 달리는 차에 로드킬을 당할지도 몰라. 그런데 그건 바깥세상의 아주 일부분이었어. 로드킬은 내게 벌어질 수 있는 수만 가지의 일들 중에 가장 최악의 상황일 뿐인 거지. 낮이면 집에서 느끼던 것과 비교도 할 수 없는 무한한 양의 햇살이 나를 향해 쏟아져. 새가 지저귀고, 나무들이 여기저기 빼곡하게 들어선 예쁜 공원에는 우리를 위한 집들도 곳곳에 설치되어 있어. 너희가 가장 선한 사람이라 내게 주입했지만 세상에는 자신의 소유물이 아닌 것에도 정을 베푸는 사람도 있더라고. 무엇보다 좋은 건 지중해를 매일 볼 수 있어. 눈부시게 아름다운 푸른빛 바다가 너그러운 햇살 아래 반짝이는 장관을 언제나 맘만 먹으면 볼 수 있는 나는 세상에서 제일 운이 좋은 고양이야. 불안정함을 선택한 나는 더 큰 자유를 얻었지. 

여전히 좁은 창문을 통해서만 밖을 바라보고 있는 그들은 두려움에 떨며 말하지. 밖은 무서운 곳이라고. 이 안전한 곳에서 우리는 얼마나 축복받은 존재인지 모른다고. 그리고 나가보려는 마음을 아예 접어버리지.      












+소설 속에 모든 사진은 제가 어디선가 찍었던 사진만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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