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g Island 하와이 (1)
무명(無名) 6
Big Island 하와이
방송가 놈들이 구름 떼처럼 모여들었어. 화산이 드디어 폭발한 거지.
검버섯이 얼굴의 절반 이상을 덮은 주름진 노인의 목소리는 쩌렁쩌렁했다. 목소리 때문인지 언뜻 바라본 눈빛에 활력이 넘쳤다. 숱이 적은 가늘고 긴 흰머리를 얼기설기 대강 땋은 모습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목소리였다. 운전대를 잡은 손이 가끔 공중에 그림을 그리듯 크게 이리저리 움직였다. 마치 화산이 눈앞에서 폭발하기라도 하는 듯 한껏 격앙된 어조는 무명 6의 가슴마저 두근거리게 했다.
나는 알았다오. 이미 취재진이 오기도 전에. 그들이 예상하는 것보다 훨씬 더 큰 규모일 거란걸. 땅이 우리에게 신호를 보내고 있었거든.
그는 별안간 목소리를 낮췄다.
그때 난 나무들 사이에 누워 땅의 소리를 듣고 있었어. 세상의 모든 걸 다 집어삼킬 용암의 기운을 똑똑히 느꼈다오. 보이지 않아도 보였지. 새들도 이미 예고를 했어. 어떤 변주도 없이 한결같이 울어대는 작은 개구리들마저 소리가 달라지더군.
이야기 전개에 맞추는 것일까. 차의 속도는 점차 빨라졌다. 정글처럼 이리저리 방향 없이 우거진 나무 사이를 미끄러지듯 내달리는데 마치 차량 뒤로 거대한 마그마가 흘러내리는 느낌이었다. 텅 빈 도로에서 이토록 심장이 쫄깃하도록 달리는 경우는 처음이었다. 그는 긴장한 무명 6을 보며 껄껄껄 웃었다.
모두 대피하고 나서도 나는 이곳을 떠나지 않았소. 미치지 않고서야 거기 남을 수 없지.
광인 狂人.
무명 6은 이야기를 전하는 그의 모습을 보며 한 단어를 떠올렸다.
불과 십 분 전에 그의 트럭에 올라탔다. 이 지역에 고립된 지 한 시간 여만에 만난 사람이었다.
처음 만난 이에게 이토록 신나게 자신의 이야기를 풀 수 있다니. 혼을 담았다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닐 거다. 정말 혼이 나간 것 같은 그 표정을 본다면 이야기에 쏟는 에너지가 얼마나 거대한지, 화산을 보지 않아도 짐작하겠다.
그의 무용담이 진실인지는 알기 어렵지만 이전에 여기서 화산이 실제 폭발했다고 하니 그럴 법도 한 이야기였다. 차도 없이 빅 아일랜드를 탐험하겠다고 작정한 무명 6도 이곳 사람들에게는 어쩌면 광인일지도.
사람이 거기 숨어 있을 거라고 누구도 예상할 수 없었을 거요. 살아 꿈틀거리는 붉은 기운을 나는 똑똑히 느꼈다오. 죽음의 기운도 함께 느꼈지. 죽음이 바로 앞까지 온 기분, 거기서 두려움이 극한으로 치닫는데........ 펑.... 하고 내 안에서 뭔가가 터졌소. 화산보다 먼저 터진 거야.
그가 입으로 낸 ‘펑’ 소리에 무명 6은 몸이 들썩이도록 끔쩍 놀랐고 노인은 껄껄껄 웃으며 자신의 흩어진 흰머리 몇 가닥을 기운차게 뒤로 넘겼다.
혼자 죽으면 속이 편했을 건데 그러지는 못했소. 방송국 놈 중에 취재에 미친 양반이 잠복해 있다가 나를 만났지. 젊은 양반은 살려야 했기에 함께 뛰기 시작했어. 여기서 평생을 산 내가 이곳 지리는 누구보다 잘 아니까. 그 양반 처음 패기는 어디 가고 두려움에 떨고 있었어. 멀쩡한 다리가 움직이지 않는다고 하더군. 재가 되기 싫으면 냅다 뛰라고 했소. 다시 뛰라고 해도 그보다 빨리 뛸 수는 없었을 거요. 참 대단한 질주였소.
노인은 몹시 흐뭇한 얼굴이었다. 어떤 자부심마저 느껴졌다. 입가에 고인 침을 닦으며 차의 속도를 줄였다.
화산을 취재한 어느 기사에도 그날의 뒷이야기는 없소. 화산을 가장 가까이 마지막까지 느낀 자들의 질주. 시간이 있다면 내가 이 어설픈 기자 양반과 그곳을 빠져나온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소. 장담하건대 이런 이야기는 어디서도 들을 수 없을게요.
+다음 편에 이어집니다.
+소설 속에 모든 사진은 제가 어디선가 찍었던 사진만 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