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부. 섬의 기억_무명 6

Big Island 하와이 (2)

by Iris K HYUN




무명(無名) 6

Big Island 하와이



어느덧 목적지다. 무명 6은 더 듣고 싶다. 잠시 생각해 봤다. 노인의 눈이 고양이에게 전달해야 하는 그 눈이 아닐까 하고. 아쉽게도 시간이 허락하지 않았다. 여기까지 오는 동안 한 번도 멈춘 적 없던 차가 브레이크를 끝까지 밟았다.


젊은이 모험을 해요. 그것만큼 삶을 짜릿하게 하는 게 어딨소. 그게 당신의 이야기가 될 거요.


노인은 차를 돌려 같은 길을 가며 무명 6을 향해 손을 크게 흔들었다.


무명 6은 노인의 질주하는 트럭에 탄 덕분에 정글 속에서 열린 음악회에 무사히 참여할 수 있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음악회였다. 새와 개구리, 풀벌레 소리를 배경으로 하나하나의 악기와 사람의 소리가 가장 적절한 시간에 나타나고 사라졌다. 처음부터 정해진 건 없었지만 정해져 있는 것처럼 자연스러웠다.


새소리를 귀 기울여 듣던 자가 있었소. 그 사람은 오만가지 새소리를 악보에 정교하게 그려냈어. 악기로 연주할 수 있는 형태로 표현해 보려고 했지. 그는 새소리와 그 지역 특유의 정취마저 담은 '새의 카탈로그'를 58년에 완성했다오.


이곳으로 오는 길에 노인은 화산 이야기 중간에 뜬금없이 올리비에 메시앙이라는 작곡가를 떠올렸다. 맥락이 좀처럼 없는 그의 발화에 익숙해질 것 같진 않지만 매번 빨려들었다. 이야기가 만드는 특유의 분위기가 있었다.


삐---------웅......삐..........웅..... 삐.....삑...삐......삑...........삑이삑

꼬띠꼬띠.......꼽꼽...꼬띠꼬띠.... 꼽꼽.. 추웁추웁 추우--------------------


새소리가 들릴 때마다 노인이 입으로 내던 이상한 소리들이 떠올라서 웃음이 났다. 그러다 생각했다. 수많은 소리 중 자신이 의미 있게 듣는 것들에 대해.


가공되고 의미가 부여되기 이전에도 모든 건 이미 존재했어.


노인이 말했다.






각기 다른 공간에서 온 사람들은 저마다 자신의 매트에 누워 같은 시간을 듣는다.


북을 치는 사람의 에너지가 가슴을 울리고 금속 악기가 서로 부딪치는 간지러움이 온몸을 지난다. 누구의 기억인지 모를 것들이 바닷가의 모래 그림처럼 만들어지고 사라지길 반복한다. 숨이 뱃속 깊이까지 들어갔다 나온다. 사람의 목소리가 안면부를 가득 울려 머리 위로 관통하듯 지난다.


가슴에 용암처럼 뜨거운 기운이 계속 피어오른다. 그게 목으로 몸 바깥으로 방향 없이 퍼져나가는 느낌, 소리가 분명 밖에서 들리고 있는데 안에서 밖으로 나가는 에너지가 더 크게 느껴지는 것이 신기하다. 보이지 않는 용암을 그리던 노인처럼 누워서 뜨거운 물결을 허공에 휘적였다. 외부에서 들리는 모든 소리가 무명 6의 가슴에서 피어오르는 무언가와 뒤섞여 눈물이 흐른다. 아주 뜨겁다.


무명 6의 바로 옆자리에는 백발의 긴 머리를 곱게 땋아 붉은 히비스커스 꽃핀으로 묶은 여인이 있었다. 무명 6의 할머니의 나이쯤 되어 보이는 그녀는 아주 작은 체구여서 그녀의 미니 하프가 되려 커 보였다. 모든 악기가 지나가고 나면 언제나 그녀의 소리가 다정하게 말을 걸었다.


기억이 있어도 없어도 괜찮아. 괜찮은 정도가 아니야. 완벽해.


자신을 기억할 필요도 없는 순간이 기뻤다. 어떤 간절함으로 고양이를 찾아갔는지조차 잊었다.

숨만 잘 쉬고 있는 이 순간이 완벽했다. 존재해야 하는 어떤 이유도 필요가 없다.


감사합니다.


달리 더 특별한 말을 찾을 수가 없다.







인적 없는 도로변에 다시 서 있다. 이제는 컴컴하기까지 하다. 아주 드물게 한두 대의 차량이 도무지 잡을 수 없는 속도로 지났다. 아마도 그들은 무명 6의 존재를 인식할 수 없었을 거다. 밤하늘에 보이지도 않는 작은 점이 된 것 같다. 두려운데 자유롭다. 노인의 그 기억처럼. 뜨거운 화산과 그보다 더 뜨거운 음악이 가슴으로 흘렀던 느낌이 남았다. 문득 무명 6은 자신의 존재가 그렇지 않을까 생각해 봤다. 뜨거운 말들, 자신이 정말 하고 싶은 이야기가 가슴속에서 꿈틀거린다.


히피 한 무리가 지나간 지도 꽤 되었다. 약에 취한 건지 모두 초점 없는 눈빛이었다. 무명 6은 어쩌면 그때 도움을 청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구글맵에 뜬 막차라고 표시된 그 버스는 이미 지나가 버린 듯했다.

여긴 우버도 닿지 않는 곳이라고. 이제 정신 좀 차리지.

누군지 모르는 목소리가 무명 6을 불안하게 했다. 화산이 흘렀던 가슴은 갑자기 초조함으로 불규칙적으로 뛰었다. 어떤 이도 이곳까지 그녀를 데리러 오리라 기대할 수 없는 상황이다. 오도 가도 못하는 상태. 갇힌 느낌.

별안간 찾아온 이건 배경만 다를 뿐이었다.


굉장히 익숙한 거잖아. 무명 6은 또 그렇게 중얼거렸다.











+다음 편에 이어집니다.


+소설 속에 모든 사진은 제가 어디선가 찍었던 것만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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