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부. 섬의 기억_무명 6

Big Island 하와이 (6)

by Iris K HYUN




무명(無名) 6

Big Island 하와이




화려하지는 않지만 먹음직스러워 보여야 한다고 생각해요. 식욕을 돋울 수 있는. 가장 본연의 기능을 할 수 있어야 하는 거죠.



푸른 눈이 말했다.


양파 말인가요?


무명 6은 수신기 역할을 하는 초록 머리 양파를 바라본다.


뭐든 우리의 이야기요.


푸른 눈은 웃는다. 양파도 웃는다. 굶주린 영혼들이 다 함께 웃는다.




엔젤이라고 부를게요.


전혀 과하지 않다. 의외로 오글거리지도 않는다. 그녀는 어둠 속에서 홀연히 나타나 무명 6을 구하지 않았던가. 떡 벌어진 여자의 어깨를 보면 대천사 칭호를 부여해도 무리가 없을 거다.

사실 그것만이 이유는 아니다. 원래 이름을 부르기 어려운 나름의 사정도 있다. 마치 그건 난생처음 듣는 다른 세상의 소리 같아서 아무리 귀를 열어도 입으로 나올 수 없다. 무명 6의 조음기관으로는 세상 끝날 때까지 결코 편해질 수 없는 것이었다.



알아요. 어려운 거. 의미가 좋으면 뭘 해요. 부르기가 어려운데.



그녀의 부모님은 부르기 쉬우셨을까. 막상 지어놓고 보니 저런, 부르기 쉽지 않군. 하셨을 수도 있다.



운전대를 잡은 그녀의 손에 어딘가 모르게 기운이 느껴진다.



당신이 찾았기 때문에 가능했던 거예요. 천사도 부르는 사람이 있어야 나타나는 거 아니겠어요.



여자는 아주 호탕하게 웃었다. 화산을 목격한 노인처럼.



깜깜한 밤, 홀로 남겨진 불안과 고통, 나는 그걸 알아요. 아주 잘 알지요. 그런데 그 어두움 사이에도 어렴풋하게 가끔 빛이 들어오잖아요. 비가 내린다고 영원하던가요. 빛이 얼마나 좋은 지도 그래서 알지요. 비가 한참 오고 나면요. 오늘 당신을 만나서 푸른 물감을 먹고 길을 이렇게나 재밌게 달릴지 짐작이나 했겠어요.



차가 신호에 걸렸을 때 여자는 남은 푸른색을 마저 다 마셨다. 한 번도 상상해 본 적 없는 천사의 모습이었다. 천사는 말한다.



이 순간 자신을 감동시킬 수 있는 무언가를 할 수 있다면 그거면 충분해요.










고양이의 질문을 할 타이밍이다. 무명 6이 질문지라고 받은 종이에는 아무것도 적혀있지 않다. 앞사람들한테 진을 다 뺀 건가 이토록 성의가 없다니. 그렇다고 무얼 질문할지 모르는 바는 아니다.



당신은 누구인가요?

글을 쓰는 사람이에요. 이야기를 만듭니다.



당신의 존재의 이유는 무언가요?

제가 경험하고 느끼는 세상을 전달합니다. 저만의 방식으로요.



소원이 있나요?

사람들이 자신을 표현하면 좋겠어요. 진짜 하고 싶은 자신의 이야기요.

제 이야기도 들어주는 사람이 많으면 더 신날 거예요.



당신을 고통스럽게 하는 게 있나요?

사는 게 더 이상 아무 재미가 없다고 느낄 때요. 세상 다 산 노인네가 되는 거죠.



고통스럽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죠?

당연하지 않게 살아야죠. 아이처럼요. 다 감탄스럽습니다. 우리 존재 자체가요. 가끔 비를 맞아도 돼요. 대신 맞을 거면 제대로 아주 흠뻑 맞으세요. 비가 뭔지 알 수 있을 만큼 그렇게 흠뻑.



당신은 나를 어떤 사람으로 느끼나요?

감사할 줄 아는 사람이요. 내가 당신을 도왔다지만 도움도 당신이 받고자 했으니 온 겁니다. 기뻤어요. 당신을 만나서.



푸른 눈은 대답을 마치고 무명 6에게 같은 질문을 했다.



당신은 나를 어떤 사람으로 느끼나요?



풍요로운 사람이요. 무명 6이 대답했다.



그런데요. 이 차는 어디로 가나요?














나무 위 고양이는 노래를 부른다. 언젠가 새의 소리에 맞춰 떠오르는 느낌을 표현했는데 속이 그렇게 시원할 수가 없었다. 동족마저 외면할 만한 기이한 소리였으나 정작 본인은 신이 났다. 나의 구원은 나였어. 그 구절을 몇 번이고 반복해 부르며 나무 주변을 폴짝폴짝 뛰었다. 거대한 나무 전체가 온몸으로 바람과 대화한다.



자신이 깜깜한 밤일 때 누군가를 돕는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야. 하지만 깜깜함을 제대로 아는 사람만이 깜깜한 밤에 있는 사람을 볼 수 있어.




고양이는 무명 6이 잠에서 깨기 전에 서둘러 노트를 펴고는 문장 하나를 적었다.




당신의 존재는 세상에 들려줄 나의 목소리입니다.











+다음 편에 이어집니다.


+소설 속에 모든 사진은 제가 어디선가 찍었던 것만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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